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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6.08.06 10:23수정 2026.08.06 10:23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일흔일곱이 되어 나는 새로운 이름 하나를 얻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이름일지 모른다. 그러나 내게는 긴 세월을 지나 늦게 찾아온 특별한 이름이다. 처음부터 글을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정년퇴직 후 아프리카 해외 봉사 활동을 다녀왔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강의를 하며 살아왔다. 이후 세계 곳곳을 배낭으로 여행하면서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만났다. 지나온 시간을 기록하고 싶다는 마음은 늘 있었지만, 내가 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나는 AI를 활용하고 있다. 어느 날 AI 제미나이가 내 글을 살펴보더니 말했다.
"선생님 이야기는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와 잘 맞을 것 같습니다. 한번 투고해 보세요."
그 말에 용기를 내 처음으로 <오마이뉴스>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오마이뉴스가 어떤 곳인지도 제대로 몰랐다. 아내와 함께했던 추억과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담아 수필처럼 써서 보냈다. 며칠 뒤 전화 한 통이 왔다. 지난 3월 10일, 날씨가 쌀쌀한 날이었다. 노인복지관에서 점심을 먹고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오던 길이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였다.
글쓰기 인생의 출발점
"<오마이뉴스>는 뉴스 매체라 과거의 이야기만 담기보다 지금과 연결되는 이야기를 쓰시면 좋습니다."
같은 이야기라도 투고하는 곳에 따라 글의 방향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처음이라 잘 몰랐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러자 담당자는 웃으며 말했다.
"처음 쓰시면 그럴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쓰면 되는지 알려주는 따뜻한 안내였다. 전화를 끊고 나니 속상하기보다 고마운 마음이 컸다. 공직생활을 해본 나는 안다. 바쁜 가운데 개인에게 전화를 걸어 글의 방향까지 알려주는 일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를. 그 전화 한 통이 내 글쓰기 인생의 출발점이 되었다.

▲ 시민기자가 되다.
AI생성 이미지
집에 들어오니 오후 두 시쯤이었다. 컴퓨터 앞에 앉았다. 모니터 옆에는 딸과 아들이 가족사진을 남기자며 찍어준 사진, 그리고 아내와 함께했던 사진이 놓여 있었다. 사진 속 아내를 바라보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원고를 고치기 시작했다. 열 손가락으로 타자를 치지만 시프트키를 잘못 눌러 오타가 자꾸 났다. 그래도 이상하게 즐거웠다. 쓰고, 읽고, 고치고, 다시 고쳤다. 다음 날도 종일 원고와 씨름했다. 그리고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마쳤다.
보내고 나니 후련했다.
며칠 뒤 채택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그런데 제목이 바뀌어 있었다. 글의 내용에 맞게 새 제목을 붙여주신 것이다. 사진 한 장 없이 보낸 글에는 직접 배낭 그림과 푸른 초원 그림까지 넣어주셨다. 내 글을 단순히 받아준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글이 되도록 함께 만들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기사가 '
이 약속을 지키려 아내의 기일마다 짐을 쌉니다'였다.
글은 더 많이 채우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것
두 번째 글도 채택되었다. '
정년퇴직 후, 8천 명의 독자를 만날 줄이야'였다. 내 이야기를 누군가 읽어준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고마웠다. 친구들은 말했다.
"얘들아! 일국이가 기자가 됐다."
그 말에 웃음이 났다. 평생 과학을 가르치던 내가, 일흔일곱 나이에 글을 쓰고 '시민기자'라는 이름을 듣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하지만 기쁨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그 뒤로 보낸 원고들은 좀처럼 채택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돌이켜보니 나는 새 글을 쓸 때마다 문장만 다듬고 있었다. 이 말을 저 말로 바꾸고, 토씨 하나를 고치면 좋은 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문장이 아니었다. 글의 중심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이 이야기도 넣고 싶고, 저 이야기도 넣고 싶었다. 한 편의 글 안에 내가 살아온 모든 이야기를 담으려 했다. 그러니 글은 자꾸 길을 잃었다.
그때야 알았다. 글은 더 많이 채우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것이었다. 한 편의 글에는 하나의 이야기만 담아야 했다. 한 편의 글에는 하나의 이야기만 담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 뒤부터 나는 글 쓰는 방식을 바꾸었다. 어깨를 다쳐 응급실 세 곳을 찾아다닌 이야기, 아내를 떠나보낸 뒤 중앙아시아 초원을 걸었던 이야기, 일흔일곱에 AI 공부를 시작한 이야기를 각각 하나의 글로 다시 써 내려갔다.
글은 조금씩 달라졌다. 그렇게 한 걸음씩 걸어온 끝에 지난 3월부터 지금까지 일곱 편의 글이 <오마이뉴스>에 실렸다. 그리고 일흔일곱. 내 이름 앞에 또 하나의 이름이 생겼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정일국.
늦게 얻은 이름. 그래서 더욱 오래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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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임 후 KOICA해외봉사활동. 현재는 봉사활동경험과 배낭여행 강연가로 활동 중입니다. 77세의 나이에도 배낭을 메고 세상으로 나가는 '백발의 보헤미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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