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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6.08.12 13:45수정 2026.08.12 13:45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도 또 하나의 동네카페가 위치 기반 중고거래 플랫폼에 임대 매물로 올라왔다. 올려 놓은 사진을 한 장씩 넘겨보다 '역시나' 하고 생각이 멈췄다.
'정말 내가 아는 그 곳이 맞네. 장사가 곧잘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제주 작은 바닷가 마을에 살다 보면 새 가게가 문을 여는 일만큼이나 문을 닫는 일도 자주 보게 된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몇 번씩 주인이 바뀐 자리가 있고, 얼마 전까지 사람들이 드나들던 가게가 조용히 사라지기도 한다.
조용히 사라지는 가게들
가게만 떠나는 것은 아니다. 사람도 제주를 떠나고 있다. 제주 총인구는 2023년 70만 명을 넘긴 뒤 다시 감소하기 시작했다(출처, 제주특별자치도 '2025년 제주특별자치도 인구정책 시행계획'). 2025년에는 제주를 떠난 사람이 들어온 사람보다 4천여 명 많았다(출처 국가데이터처 '2025년 호남·제주지역 국내인구이동 현황'). 한때 '제주살이'라는 말이 유행할 만큼 사람들이 들어오던 섬이었는데, 이제 제주를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낯설지 않다.
어느새 제주살이 10년 차, 나 역시 제주에 정착해 살아가는 이른바 '육지것들(제주에서 육지에서 건너온 외지인을 일컫는 말)' 중 한 명이다. 이제는 떠나는 사람들과 문 닫는 가게들을 보며 제주토박이들이 이주민들을 '육지것들'이라 표현하는 섭섭함에 대해 조금 공감이 가기도 한다. 정주면 떠나는 이별들이 너무나 아쉬우니까.
뜨거운 여름날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던 곳, 누군가와 만나기 위한 약속 장소가 되어주던 곳, 별일 없는 날에도 커피 한 잔을 핑계 삼아 들르던 공간들도 그렇게 하나둘 사라진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주로 들어왔다가 떠나게 될까. 얼마나 많은 가게가 문을 열고, 자리를 옮기고, 결국 문을 닫게 될까.
또 하나의 이별을 가까이 접할 때면 그 안에서 버텼을 사람들의 시간을 생각한다. 그러다 괜히 내가 일하는 거실도 한 바퀴 둘러본다. 지금의 거실은 1인 사업자인 나의 사무실이자 작업실이다. 오늘 할 일 목록을 다시 펼쳐보고, 괜히 흐트러진 자세도 한 번 고쳐 앉는다. 남의 일 같지 않아서일 것이다.
나 역시 제주에 와서 '사라지는 일터'를 여러 번 경험했다. 다니던 회사가 더 큰 육지 회사에 인수합병되면서 내가 일하던 팀이 사라졌고, 또 다른 직장에서는 회사가 아예 문을 닫았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나는 회사의 마지막 문을 닫고 퇴사했다.
퇴사와 폐업이 같은 날 일어나는 경험. 육지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는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래서 가게 하나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 조금 더 오래 바라보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경제가 어렵다는 말은 수도 없이 들어봤지만 "요즘 경제가 너무 좋다"는 말은 좀처럼 들어본 기억이 없다.
매년 경제는 더 어렵다고 하고, 여름은 더 뜨거워진다고 한다. 대체 나아지는 날이 오기는 하는 걸까. 좋아하는 일을 하며 먹고사는 삶은 여전히 로망으로만 남아야 하는 걸까. 그리고 가끔 조금 더 큰 질문을 하게 된다.
'이곳 제주는 역시 오래 살아남기에는 힘든 곳일까.'
나는 그게 아니라고 믿고 싶다. 작은 가게도, 혼자 일하는 사람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자기 자리를 오래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나 역시 살아가는 방식으로 증명해내고 싶다. 이런 생각들을 하는 요즘 내게 오래 '살아 남았으면' 하는 카페가 하나 있다.
러너를 환영하는 동네 카페
사실 나는 평소 카페를 즐겨 찾는 사람이 아니다. 집에도 커피가 있고 새로 생긴 카페를 일부러 찾아 다니지도 않는다. 한 번 갔던 카페를 다시 찾는 일도 드물다. 그런 내가 자꾸 찾아가는 동네카페가 생겼다. 집에서 가깝고, 규모도 작고, 딱히 조용하지도 않다. 이미 여러 번 가본 곳이라는 점까지 내가 평소 찾는 카페의 기준과는 하나도 맞지 않는다.
처음에는 사장님이 '러너'였기 때문에 좋아하게 됐다. 1년 반 전부터 달리기를 시작한 나는 이제 일주일에 여섯 번을 달릴 만큼 러닝을 좋아한다. 이곳에서는 달리기를 마친 사람들이 땀에 젖은 운동복 차림으로 자연스럽게 커피를 마신다. 사장님은 시원한 물을 내어주고, 오늘 러닝을 완료했다는 인증을 하면 커피도 할인해준다.

▲오래도록 러너들에게 사랑받는 카페로 남았으면 좋겠다. 힘내어서 처음 마음으로 꾸준히 오래오래 여기 있어주면 좋겠는 우리동네 우리들의 카페.
김태리
그렇게 러너들이 하나둘 모이기 다녀가는 곳. 함께 달리고, 근처 용천수에서 몸을 식히고, 다시 카페에 모여 커피를 마시며 아침을 먹는다. 나는 달리지 않은 날에도 그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지난달부터는 이 카페와 조금 더 가까워졌다. 10년 동안 온라인마케팅 일을 해온 경험을 살려 카페의 SNS 운영을 도와주기로 한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은 거창하지 않다. 아침마다 사진 한 장을 찍고 날짜를 적은 뒤 "오늘도 활짝 열었습니다"라는 짧은 문장을 더해 SNS에 올린다.
혼자 빵을 굽고 커피를 내리고, 손님을 맞고 청소와 재고관리까지 해야 하는 사장님에게 SNS는 늘 가장 마지막 순서였다. 한동안 멈춰 있던 계정이 아쉬워 내가 먼저 도와드리겠다고 했다. 보수는 내가 좋아하는 커피 한 잔과 빵, 달걀프라이와 치즈가 곁들여진 모닝세트다.
돈으로 계산하면 큰 보상은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돈을 받고 하는 일보다 더 마음이 간다. SNS를 보고 찾아왔다는 손님이 있으면 괜히 기쁘고, 손님이 없는 날이면 걱정된다. 여행 중 우연히 들렀다가 3일 연속 찾아왔다는 손님이 남긴 긴 후기는 내 카페의 리뷰도 아닌데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공간을 아끼는 사람들의 마음
카페에는 나 같은 사람들이 또 있다. 아침 일찍 출근해 카페를 열고 구석구석을 닦는 아르바이트생이 있고, 출근 전 함께 달린 뒤 어김없이 모닝세트를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 일부러 길을 돌아 커피를 마시러 오는 단골이 있고, 누군가는 과일이며 간식을 한 아름 들고 찾아온다.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좋아하는 이 동네카페가 오래오래 문 닫지 않고 이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같은 마음. 맛있는 커피를 파는 카페도 많고 멋진 풍경을 가진 카페도 많다. 하지만 어떤 공간은 커피보다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의 마음 때문에 다시 찾게 된다. 내리는 사람의 진심과 마시는 사람의 고마움이 켜켜이 쌓인 커피는 당연하게도 조금 더 맛있다.

▲우리는 식구이다. 함께 달리고, 용천수에서 몸을 식히고, 또 함께 아침밥을 먹는 사이
김태리
가게 하나가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은 단지 가게 하나가 유지되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매일 아침 인사를 나누던 사람들이 계속 만날 수 있다는 것, 달리기를 마친 사람들이 편하게 앉아 땀을 식힐 곳이 남아 있다는 것, 동네를 걷다 별일 없이 들어가 커피 한 잔을 마실 자리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어쩌면 우리가 좋아하는 동네 가게 하나를 오래 지키는 데에도 그 공간을 아끼는 사람들의 마음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도 사장님은 문을 열고, 누군가는 커피를 사 마시고, 나는 카페가 열렸다는 소식을 SNS에 올린다.
그리고 늘 앉는 자리에 앉아 커피와 모닝세트를 먹으며 일을 한다.

▲동물들을, 러너들을, 아이들을 반겨주는 우리동네 카페 오래오래 이 자리에 이 마음으로 있었으면 좋겠다.
김태리
언젠가 지도 앱에서 이곳의 이름을 검색했을 때 '영업 종료'라는 네 글자를 만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 작은 가게도, 혼자 일하는 사람도, 이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도 자기 자리를 오래 지킬 수 있다는 것. 나는 그게 가능하다는 걸 믿고 싶다. 아니, 꼭 증명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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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글씨와 그림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
제주에서 달리고, 쓰고, 만들며 작은 일상을 기록합니다.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일을 하고 싶어 창업한 <그마음굿즈> 공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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