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진 어린 단풍나무를 세워주다

훗날 몸의 균형을 잃고 쇠약해질 미래의 내 모습 겹쳐져

등록 2026.08.06 10:07수정 2026.08.0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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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산책로 입구에 서 있던 작은 단풍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거센 바람의 저항을 받은 데다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했는지 비스듬히 기울어져 곧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매일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저 나무를 세워주어야 할 텐데' 하는 생각만 마음에 품었을 뿐, 정작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채 발길을 돌리곤 했다.

얼마 전 나무와 나무 사이에 매어놓았던 나일론 끈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잘라 나무를 세우는 데 쓸까 고민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아내가 "누군가 무슨 이유나 필요가 있어서 묶어둔 것일 수도 있으니 훼손하지 말자"라며 말렸었다. 그런 끈이 오늘은 잘린 채 짧은 나일론 끈만이 나무에 묶인 채 남아 있었다. 순간 '아, 저것으로 단풍나무를 세우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바로 실행에 옮겼다.


기울어진 단풍나무에 나일론 끈을 매어 인근 나무에 연결해 세웠다. 끈이 조금만 더 길었다면 굵고 울창한 큰 나무에 묶어주었을 텐데, 길이가 짧아 쓰러진 나무보다 더 가냘파 보이는 옆의 어린나무에 묶을 수밖에 없었다.

대신 나무가 조금 더 힘을 받게 하기 위해 숲 속에 떨어져 있던 죽은 나뭇가지들을 가져다가 단풍나무 밑자락에 지주대로 받쳐주었다. 그러자 언제 쓰러질 듯 불안해 보였던 단풍나무는 중심을 잡고 제법 온전한 제 자태를 찾아갔다.

 숲길에 방치된 나일론 끈과 죽은 나뭇가지로 받쳐 세운 어린 단풍나무
숲길에 방치된 나일론 끈과 죽은 나뭇가지로 받쳐 세운 어린 단풍나무 김종섭
작업을 마치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나무를 바라보았다. 옆 나무에 묶인 나일론 끈과 바닥의 나뭇가지에 의지한 단풍나무는 비로소 다시 숲의 일원으로 당당히 돌아간 듯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젊은 시절의 나였다면 길가에 쓰러진 나무 한 그루쯤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60대에 들어선 지금, 비스듬히 기울어져 스스로 중심을 잡지 못하는 저 단풍나무의 모습에서 멀지 않은 미래의 내 모습이 보였다. 나이가 들어 몸의 균형을 잃어가고 쇠약해질 머지않은 날, 혼자 힘으로는 세월의 비바람을 견디기 힘겨워할 늙은 나의 초상이 그 나무 위에 겹쳐진 것이다.

숲 속에 우뚝 선 나무들도 완벽하게 홀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친 비바람이나 극심한 가뭄 앞에서는 쓰러지고 마는 법이다. 누군가를 지탱해 주는 존재가 꼭 거창하고 웅장할 필요는 없다. 조금은 부족하고 가냘픈 서로라 할지라도, 기꺼이 줄을 매어주고 작은 받침목이라도 되어줄 때 함께 비바람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다시 산책로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이마를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렸지만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늘 숲이 내어주는 그늘과 혜택을 누리기만 했던 산책길에서, 오늘은 나도 숲에 작은 선물 하나를 남기고 온 것 같아 마음이 한없이 넉넉해진다. 내일 아침 산책길에서 다시 만날 그 어린 단풍나무가 더 꼿꼿하고 푸른 초록빛을 내뿜고 있기를 기대해 본다.
#단풍나무 #산책길 #6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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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거주하며, 이민자의 삶과 일상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를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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