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오디세이>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이 영화는 원작의 비선형적 플롯을 살려, 두 개의 '정지된 시간'을 나란히 보여줍니다. 칼립소의 섬에 갇혀 기억을 잃은 채 부유 하는 오디세우스의 시간, 그리고 이타카에서 시아버지의 수의를 밤낮으로 짰다 풀기를 반복하는 페넬로페의 시간입니다.
이 고여 있던 시간은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죄를 마침내 마주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순간, 비로소 다시 흐르기 시작합니다. 지나간 모험 자체보다 그 사건을 되짚고 의미를 곱씹는 '기억과 성찰'의 구조는, 관객의 호흡을 천천히 이끌며 사색할 여유를 건네주었습니다.
오디세우스 역의 맷 데이먼은 승전의 영광에 취한 영웅이 아니라, 오랜 전장의 기억과 과오의 무게에 짓눌린 늙은 군인을 과묵하게 그려냈습니다. 화려한 대사 없이도 표정과 몸짓만으로 전해지는 그 강단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원작에는 없지만 베르길리우스의 전통에서 가져와 비중 있게 각색된 하인 '시논' 역의 연기도 눈에 띄었습니다. 거짓말과 약탈이라는 전쟁의 추악한 이면, 그리고 가장 슬픈 희생자의 얼굴을 서늘하게 보여주며 극 전체의 무게 중심을 잡아주었습니다.
젠데이아가 연기한 아테나 여신은 트로이 함락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여사제의 얼굴로 등장합니다. 이 설정 덕분에 아테나는 단순한 수호신이 아니라, 오디세우스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양심의 거울'로 다시 읽히게 됩니다.
낯선 이를 맞아들이는 법
이 영화에서 저의 마음을 가장 오래 붙든 것은 '크세니아(Xenia)', 이른바 '제우스의 법'이라 불리는 주제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이는 낯선 나그네나 이방인을 기꺼이 맞아 들이고 음식과 잠자리를 내어주는 환대의 윤리이자, 서로를 믿기 어려운 존재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게 해주는 가장 기본적인 약속이었습니다.
트로이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적의 목마를 성 안으로 들임으로써 이 법을 지켰지만, 오디세우스와 그리스군은 그 환대를 피비린내 나는 학살로 갚았습니다. 결과와 효율만을 중시하며 공존을 저버린 그 폭력은, 이타카에서 나그네를 함부로 대하는 구혼자들의 모습과 겹치며 지금 우리 사회를 향한 조용한 경고처럼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거지 몰골로 고향에 돌아와 무도한 자들을 단죄하고, 아내 페넬로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한 뒤 왕좌마저 내려놓습니다. 스스로를 낮추어 부하들의 억울함을 위로하고 무너진 법을 다시 세우는 이 마지막 장면은, 환대와 약속이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한 사람이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유일한 길임을 보여주었습니다.
극장을 나서며

▲ 영화 <오디세이>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삶에서 가장 참된 것은 만남이다"라는 마르틴 부버의 말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이번 영화는 저에게 제 안의 양심과 마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정성껏 빚어낸 필름의 질감과 선율, 그리고 배우들의 진심 어린 연기가 어우러진 이 시간은, 고난의 파도를 건너 마침내 자기 자신에게 돌아간 오디세우스처럼 저에게도 일상을 버텨낼 작은 용기를 남겨주었습니다.
오만함과 거짓을 벗고 온전한 인간으로 돌아온 그의 귀향처럼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타인을 향한 따뜻함을 잊지 않고, 스스로의 양심 앞에 정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대 세계를 정교하게 되살린 화면 속에서 발견한 인간에 대한 성찰. 오래도록 마음 한편에 은은하게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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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카 절벽 아래 '오디세이' 롱숏 장면에서 느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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