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등록 2026.08.06 10:55수정 2026.08.06 10:55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밤중에 잠에서 깨 뒤척이다가 책상 앞에 앉았다. 창밖으로 이우는 하현달이 새초롬하다. 한여름 밤의 고요 속에 이슬이 맺히는 뜨락에서는 벌레들의 낮은 속삭임이 어둠을 바느질한다. 낮 동안의 그 뜨겁던 열기는 간데없고, 기분 좋은 냉기가 창을 타고 방안으로 스민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시골은 열섬으로 덮인 도시와 달리 여름을 건너기가 한결 수월하다. 무성한 녹음과 시원한 자연풍이 있어 해만 지면 이내 상쾌해진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숨차게 달리며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을 생각하면, 이렇게 한가하게 시골의 운치를 누리는 것이 미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동안 쉼 없이 달려와 예순 중반에 비로소 누리는 작은 여유 아니겠는가.
그 모진 격동의 세월을 사선을 넘듯 살아온 우리 세대이지만, 돌아보면 보람도 있고 살 만한 가치도 충분했던 삶이다. 땔감으로 밥을 짓던 시절을 지나 석유난로와 연탄을 거쳐, 이제는 최첨단 압력밥솥을 쓰는 시대까지 왔으니, 원시에서 현대 문명으로 훌쩍 건너온 기분이다. 이토록 눈부시게 변화하는 세상을 보고 있노라면, 남은 삶 또한 기대와 설렘으로 부푼다.
폭염에 맥을 못 추는 텃밭
입추가 내일인데도 연일 40℃에 육박하는 더위는 그야말로 살인적이다. 전국적으로 온열질환자가 늘고 안타까운 사망 소식까지 이어지니, 더위가 어느새 무서운 살상 무기가 된 듯하다. 설상가상으로 가뭄까지 겹쳐 텃밭의 옥수수는 알을 채 영글지도 못한 채 말라가고 있다. 고추 역시 강렬한 불볕에 데쳐져 성장을 멈춘 채 빨갛게 비틀어진다. 그토록 소담스럽던 텃밭이 폭염 앞에 속수무책 무너지고 있다.

▲ 한낮 불볕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말라가는 옥수수와 텃밭 작물들
임경욱
무엇이 이토록 지구를 뜨겁게 달구는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폭염과 산불, 지진 등 가혹한 자연재해로 위기에 처해 있다. 해가 갈수록 위험수위는 높아가는데, 여전히 곳곳에서는 전쟁이 멈추지 않고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환경파괴를 서슴지 않는다. 아파하는 지구의 미래가 어둡고 암울하게만 느껴진다.
고령의 어르신들이 대부분인 시골 마을은 혹여 모를 온열 사고를 막기 위해 노심초사다. 낮 시간대에는 행정기관에서 수시로 마을을 돌며 가두방송으로 야외 농작업 자제를 당부한다. 하지만 평생을 부지런히 살아온 어르신들은 수확을 앞둔 농작물을 그냥 둘 수 없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돌 때 참깨를 거두고 고추를 따느라 여념이 없다.
다행히 마을마다 냉방 시설이 잘 갖춰진 회관이나 노인정에 무더위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마을 분들이 다 함께 모여 소박한 음식을 나누고 소소한 이웃 소식을 전한다. 나이가 들어가며 깊어지는 외로움을 서로 정담으로 삭히는 것이리라. 이렇게 촘촘한 행정력과 이웃 간의 정이 있어 시골 어르신들의 일상이 한층 평온해 보인다.
폭염과 가뭄에 사투를 벌이는 농부
거금도에서 농사를 짓는 친구와 통화를 해보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해 심은 양파 농사를 가격 폭락으로 망친 탓에, 손해를 조금이라도 보충하고자 올해는 후작으로 고추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독한 가뭄과 고온이 겹치다 보니 대책이 서지 않는 모양이다. 물을 끌어다 쓸 저수지마저 바짝 마르고, 벌겋게 타들어 가는 고추는 수확이 급한데도 제때 거두지 못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 텃밭에서 호박 잎이 숨을 죽이고 한낮 땡볕을 견뎌내고 있다.
임경욱
외국인 계절근로자들과 함께 애써 고추를 따도, 이를 말릴 건조기가 부족해 적기 수확마저 어려운 상황이란다. 그렇다고 고추 시세가 좋은 것도 아니다. 젊은 시절 함께 직장 생활을 했던 친구다. 일찍이 뜻한 바가 있어 사직서를 내고 시골로 내려와 흙을 일구며 살아왔다. 욕심 없이 자연에 묻혀 사는 것이 속 편하다고는 하지만, 해마다 짓는 농사가 제값을 받지 못해 고생만 하는 것 같아 볼 때마다 마음이 아려온다.
무엇 하나 녹록한 것이 없어 그의 삶이 늘 고단하고 신산하게만 느껴지지만, 정작 만나보면 친구는 언제나 태평스러운 표정이다. 소박한 시골살이와 소소한 소득에 만족하고, 동네 어르신들과 어울려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참 부럽다. 이제 와서 부귀영화를 누릴 것도 아닌데, 그렇게 순응하며 나이 들어가는 것이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보다 훨씬 많은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삶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마당 한구석, 무성하게 덩굴을 뻗쳐가던 호박도 한낮에는 큰 잎들의 숨을 죽인 채 어렵사리 불볕을 견뎌내고 있다. 해가 누그러지면 마을 들길을 산책 삼아 한 바퀴 돈다. 미친 듯한 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찍 모를 낸 조생종 벼는 벌써 고개를 숙여 이달 말쯤 수확이 가능할 만큼 알이 야무지게 영글었다. 입추가 지나면 머지않아 처서가 올 것이고, 아무리 기세등등한 더위라 한들 계절의 순리 앞에서는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인생은 물처럼, 바람처럼, 시(詩)처럼 / essayist, reader, traveler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