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자기 발이 신기한 아이
오세나
갑자기 눈에 들어온 아이의 모습이 너무 예뻐서 한참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냥 행복했고, 갑자기 미래가 걱정되지도 않았습니다. 마냥 예쁘고 좋았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죠. 그 순간, 고통스럽게 고민했던 시간이 나를 살리는 질문이 되어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장애는 극복해야 하는 걸까?'
'행복을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아이가 나에게 온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 질문들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우리 부부는 치열하게 의견을 나누고, 생각을 모았습니다. 아이에 대한 걱정과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이고, 온 힘을 다해 서로를 잡아당겼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어떻게 살지?'에서 '어떻게 살고 싶지?'라는 질문에 도달했습니다. 결혼 전 남편이 성가실 정도로 나에게 물었던 질문이었죠. 그리고 그토록 생각나지 않았던 답이 아이를 진심으로 받아들인 순간 떠오릅니다. 이 아이, 나에게 답을 주러 왔나 보다.
방향은 정해졌다
"서로의 결대로 행복하게 살자."
제가 마침내 찾은 답입니다. 가지고 태어난 대로, 하지만 함께 각자의 행복을 만들어 가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급한 마음으로 아이의 발달 개선을 위해 찾아봤던 치료실, 병원 리스트를 대부분 닫았습니다. 재활 교육은 딱 필요한 만큼만 하고, 대신 만 세 돌에 맞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땅을 밟고, 물을 튕기고, 아이가 좋아하는 버스와 기차를 원 없이 탔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자고 먹고, 서로의 체온과 마음을 느끼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려고 노력했습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으니, 세상에 솔직하게 아이를 내어놓으려 했습니다. 최대한 담백하게 하려고 했으나 솔직히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했습니다. 자존심 상하고, 부끄러웠습니다. 뭐 그래도, 그냥 감당했습니다. 아이는 그저 그렇게 태어난 것뿐이니까요.
그 다음 우리 부부는 각자 자신을 잘 들여다보았습니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직시한 다음, 그 안에 아이와 가족의 삶을 녹여내는 선택을 하려고 애썼습니다. 남편은 직장을 그만두고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러 갔습니다.
나는 오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곳에서 일자리를 찾고, 남는 시간에는 보고 싶었던 책을 보고 강의를 맘껏 들었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각자의 삶을 확장했습니다. 아이 때문에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 덕분에 하고싶은 것을 미루지 않는 삶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늘 그랬듯이, 또 새로운 도전
어려움을 가진 아이를 세상에 좀 더 나서게 하는 건 부모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가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고 함께 살아가게 하는 것은 의지와 노력만으로 되진 않는 것 같습니다.
다들 각자의 삶을 치열하게, 내 몫을 감당하고 사느라 바쁘고 힘들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 타인의 무게까지 기꺼이 얹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은 당연한 건데, 웃으면서 다가간들 타인의 경계심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쉬이 무너질까요?
우리 아이가 겪은 이전의 삶도 그랬습니다. 그때는 참 서럽고 속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나라고 크게 달랐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지나 보니 그때의 경험이 우리를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한 것 같아 새삼 고맙기도 합니다.
삶의 형태를 바꾸고, 내려놓고, 도전하는 경험을 해 본 후 우리가 얻은 것은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무엇인지,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직면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예전 같으면 익숙함 때문에, 혹은 주변의 시선 때문에 했을 선택을 내려놓고 진정 원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이 약간은 생긴 것 같습니다.
우린 이러한 힘으로 아이의 첫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기회가 되는대로 학교 설명회를 찾아가고, 근처 집을 알아보고, 학교까지 가는 버스를 타봤습니다. 주말에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와 함께 와서 앞으로 살 동네 구경을 하고 갔습니다. 예전보다 불편해질 삶에 대한 걱정을 누르고,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새기는 과정이었죠.
그리고 찾은 첫 학교
"서로의 결대로 행복하게"라는 결심에서 시작된 삶의 흐름이 우리에게 선물한 학교는 고양자유학교입니다. '다름과 느림'이 지속되는 삶을 살아갈 우리 아이가 머물 수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삶의 방향에 대해 생각하길 멈추질 않는 피곤한 부부가 함께할 수 있는 학교를 찾았습니다.
삶을 가르치는 학교인 것 같아 좋았습니다. 살아가는 것을 배우고, 함께 살아갈 수 있고, 그 곳에서 한 자리 차지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학교가 아이의 '추억의 장'으로 남길 바랬습니다.
한 학기를 지나고 나니 추억을 먹고 사는 우리 아이에게 딱 맞는 그런 학교입니다. 천천히 반복되는 배움과 쉼이 있고, 그 안에 수많은 만남이 있습니다. 아이의 학교생활은 모든 교사의 별명과, 모든 형·누나·친구들의 이름, 모든 부모의 별명을 외우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아이의 삶에, 수많은 사람의 이름과 별명이 들어왔고 그와 연결되는 추억이 하나씩 생기는 중입니다. 그렇게 추억을 먹고 쑥쑥 자라고 있는 아이는 벅찬 얼굴로 교사를 보며 말합니다.
"나 학교가 너무 좋아."
그리고 해맑은 얼굴로 나를 보며 말합니다.
"엄마, 난 친구들을 사랑해."
그런 아이를 보며 마음속으로 이야기합니다.
"맘껏 좋아하고, 사랑하거라. 그리고 그 마음을 간직하렴. 그리고 살다가 힘든 날에 이 순간들을 떠올리면 돼. 세상에 너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함께 웃고 떠들고, 진심으로 배려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렴. 그럼 엄마·아빠가 없어도, 힘든 일이 생겨도 살아갈 힘이 생길 거란다, 사랑하는 나의 아가."
삶의 흐름이 우리를 또 어디로 이끌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채우고 있는 추억의 보따리가, 묵직하게 우리의 불안을 눌러 줍니다.

▲새로운 시작 새로운 시작, 할 수 있겠지?
오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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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자유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입니다. 대안 교육의 가치에 대해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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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장애 아이 돌본 내게, '그 아이'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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