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룡산 정상 경기도 가평군과 강원도특별자치도에 걸쳐있는 높이 1147m의 석룡산 정상석
고도혜
지난 7월 12일 한여름, 경기도 가평과 강원도 철원 경계에 위치한 석룡산(해발 1147m)은 숨이 턱턱 막히는 폭염과 무성한 녹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전을 꼬박 바쳐 정상 부근에 도달한 기자를 포함한 일행은 땀을 씻어내며 하산길에 올랐다. 그러나 해발 1000m가 넘는 험준한 산세에서 비극은 가장 방심한 순간 찾아왔다.
정상에서 겨우 100여 미터 남짓 내려왔을 무렵, 일행 중 한 명이 갑작스러운 다리 통증을 호소하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폭염 속 누적된 피로가 부른 지독한 '다리 근육 경련'이었다. 긴급 조치를 취하고 지나가던 다른 산악인들의 고마운 손길을 빌려보았지만, 통증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깊은 산속에서 쏟아진 문자
남은 예상 하산 시간만 최소 3시간. 거친 암릉과 경사로를 몸을 가누지 못하는 환자와 내려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설상가상으로 산속의 시간은 평지보다 수배나 빠르게 흘렀다. 수풀 너머로 해가 기울자 숲은 순식간에 암흑으로 변했고, 휴대폰 안테나 칸 수마저 위태롭게 줄어들었다.
'이대로 산속에 갇히는 것은 아닐까.'
절망감과 극도의 긴장감이 기자를 포함한 일행 전체를 덮쳐올 즈음, 가까스로 잡힌 약한 신호로 119 상황실에 긴급 구조를 요청했다. 구조 요청을 하고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과연 이 희미한 신호가 무사히 연결됐을까. 산 위에서 기자가 체감한 것은 기약 없는 기다림이 주는 공포 뿐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기자의 휴대폰 진동이 연달아 울리기 시작했다. 화면에는 "119에서 긴급구조를 위해 귀하의 휴대전화 위치를 조회하였습니다"라는 알림 문자 메시지들이 연이어 찍혀 있었다. 우리가 보낸 단 한 번의 미약한 신호를 119 기지국과 GPS 위치 추적 시스템이 놓치지 않고 낚아챈 것이었다. 깊은 산속에서 쏟아진 그 문자는 그 어떤 시나 노래보다 뜨거운 안도감이자 감동으로 다가왔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우리가 발을 구르던 그 시각, 산 아래에서는 이미 우리의 정밀 좌표가 분석되어 가평소방서와 헬기구조팀이 일초의 지체도 없이 출동을 시작하고 있었다고 한다.

▲석룡산 조무락계곡 험난한 하산코스 삼팔교에서 출발해 방림고개와 조무락계곡을 거쳐 하산하는 코스
고도혜
얼마나 지났을까.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폭염 속에서, 무거운 구조 장비를 메고 숨을 헐떡이며 우리 앞에 거짓말처럼 나타난 이들이 있었다. 바로 가평소방서 산악구조 대원분들이었다.
취재 결과, 보통 등산객 기준 하산에만 3시간이 걸리는 그 거친 산길을, 대원들은 요구조자의 생명을 구하겠다는 집념 하나로 단 1시간 반 만에 뛰어 올라온 것이었다. 땀범벅이 된 채 도착하자마자 지친 우리 일행을 따뜻하게 안심 시켜 주던 대원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참았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깊은 존경과 감사를 보낸다
대원들은 숲 속에서 소방헬기가 정지 비행(호버링)할 수 있는 안전 지대를 신속히 확보한 뒤 환자를 조심스럽게 이동 시켰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특수대응단 헬기구조팀의 소방헬기가 석룡산 상공에 도착했다. 거친 산 바람 속에서도 대원들은 오차 없이 정교하게 환자를 헬기 위로 끌어올렸다.
환자는 무사히 병원으로 이송 되었고, 남겨진 기자를 포함한 일행들 역시 대원들의 세심한 안내와 배려 속에 어두운 산길을 안전하게 하산할 수 있었다. 그날 석룡산에서 기자가 직접 눈과 마음에 담은 것은, 휴대전화 화면에 찍힌 긴급 위치 조회 문자와 땀 범벅이 되어 나타난 119 대원들의 구원의 손길이었다.
그리고 하산 후 취재를 통해 비로소 알게 된 것은, 우리가 절망 속에서 떨고 있던 그 순간에도 세계 최고 수준의 'K소방'과 경기도의 정교한 재난 안전 시스템이 완벽히 작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절망 속에서 생명을 지켜낸 가평소방서 대원분들과 경기도소방재난본부 헬기구조팀의 숭고한 땀방울에, 기자이기 전에 한 명의 국민으로서 깊은 존경과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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