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등이 표시돼 있다. 코스피는 전장보다 301.88포인트(4.58%) 하락한 6,296.38에 장을 마쳤다. 코스닥지수는 전장보다 2.08포인트(0.26%) 오른 801.67에 거래를 마치며 5거래일 연속 상승세를 나타냈다.
연합뉴스
6월 고점에 반도체 ETF를 샀다. 그 뒤로 시장은 무너졌다. 국내 증시가 한 달 새 고점 대비 최대 40% 급락하면서, 개인투자자 중 레버리지 상품에 투자했다가 61% 이상의 손실을 봤다는 사례도 나왔다.
반면 금융자산 100억 원 이상 보유한 고액 자산가들의 하이닉스 평균수익률은 1241.6%, 삼성전자는 495.9%에 달했다. 쌀 때 사서 장기 보유한 덕분에 급락장에서도 패닉셀을 하지 않았고, 목표 수익률에 도달하면 매도하여 차익을 실현했다(매일경제, "포모 개미들 '사팔'했다가 울상… 부자들은 '익절' 원칙 지켰다", 8월 2일).
이 기사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이랬다. 저 사람들이야 잃어도 생존의 문제는 아니니까, 원칙을 지킬 여유가 있는 거 아닌가? 집을 두 채 가진 사람에게 목표수익만 챙기고 만족하라는 건 쉬운 셈법이다. 손실이 나도 사는 곳은 그대로다. 하지만 아직 집이 없는 사람에게, 이 투자는 여윳돈이 아니라 내 집 마련 그 자체다. 선을 긋는 게 힘든 게 아니라, 선을 그어도 삶이 그대로인 사람과 선을 긋는 순간 삶이 결정되는 사람이 애초에 다른 게임을 하고 있는 거다.
또 다른 개미인 나도 지금 손절도 익절도 못 하고 있다. 매일 계좌를 열어보며 되뇐다. 그때 왜 샀을까, 왜 진작 못 팔았을까. 우울했다. 아니, 정확히는 멜랑콜리했다.
라캉은 평생 '프로이트로 돌아가자'고 외쳤는데, 라캉의 정신적 스승 프로이트는 애도와 멜랑콜리를 이렇게 구분한다. 애도는 상실을 상실로 인정하고, 시간이 지나며 그 대상에게서 마음을 거둬 다시 다른 것을 사랑할 준비를 하는 과정이다. 반면 멜랑콜리는 그 대상을 놓아주지 못하고 자기 안으로 끌어들여 자아와 뒤섞어버린다(박상수, 「애도와 멜랑콜리 연구」, 2017). 그리고 라캉은 한 단계 더 들어가, 왜 어떤 상실은 애도가 아예 불가능해지는지를 물었다. 답은 내가 그 대상과 나를 떼어놓을 수 있었는가에 있었다.(맹정현, 「멜랑꼴리의 모호한 대상」, 「라깡과 현대정신분석」, 2011)
고액자산가들의 차익실현은 애도에 가깝다. 목표한 수익만큼 챙기고 나면, 이후 주가가 얼마나 더 오르든 그건 이제 내 것이 아니라고 정리한다. 대상(주식)을 미련 없이 떠나보낼 수 있으니, 다음 투자로 넘어갈 채비도 된다.
반면 급하게 들어갔다가 주식시장의 뜨거운 맛을 보고 급하게 나온 이들은 말한다. "내가 다시는 주식하나 봐라." 다른 대상을 사랑할(다른 종목을 담거나 분석할) 준비를 하지 못한다. "290층에서 사람 있어요"(하이닉스를 290만 원에 산 투자자들이 쓰는 자조적 표현) 같은 말은 애도가 아닌 멜랑콜리의 신호다. 290층이 곧 나의 가치가 되고, 그게 무너지는 순간 나의 가치도 무너지므로.
내가 6월에 산 반도체 ETF가 딱 그랬다. 나는 이 종목을 뒤늦게 따라샀다. 남들이 사니 샀고, 남들이 파니 판다. 그리고 남들이 사니 주가가 올랐고, 남들이 파니 주가가 떨어졌다. 여기서 '나'는 없다. 보다 정확히는 타인과 구분되어질 '주체'가 없다. 주체가 없으니 대상과 나의 분리가 안 되고, 대상을 애도할 자리조차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소액 개인 투자자인 나는 영원히 애도할 자격이 없는 것인가? 적어도 다음번엔 똑같은 멜랑콜리에는 빠지지 않을 순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같은 시기에 사서 똑같이 손실 중인 다른 종목에 대해 '애도' 할 준비를 해본다.
지수 커버드콜 상품이 왜 이래
지수 커버드콜 상품이 나의 애도 대상이다. 커버드콜은 주식을 보유한 채로 콜옵션(정해진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을 팔아 그 대가로 프리미엄을 챙기는 전략이다.
그런데 내가 산 커버드콜 상품은 일반적인 커버드콜과 달랐다. 매도하는 콜옵션 비중을 유연하게 조절해, 상승장에도 더 많이 동참할 수 있게 설계된 것이었다. 코스피 지수가 오를 땐 수익률도 급성장했다. 그런데 최근 코스피가 폭락하자 수익률도 똑같이 급강하했다. 개별종목보다도 낙폭이 컸다. 처음엔 커버드콜인데 왜 이래? 하며 사기라도 당한 것 같았지만, 이제야 대상을 직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애초에 유연성은 위로도 아래로도 늘어나는 것인데, 나는 이 유연성이 위로만 늘어나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나는 내가 좋은 쪽만 취했던, 반만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반만 앎을 알아차린 것, 그것 자체가 '나'를 직시한 첫 출발이다.

▲ 매미허물
언스플래쉬(Jody Confer)
매미가 허물을 잘 벗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불안정한 자세 때문이라고 한다. 매미는 나무줄기에 수직으로 매달려야 한다. 몸이 아래로 늘어지면서 생기는 무게, 즉 자신의 무게를 실어 껍질에서 빠져나오기 때문이다.
나는 남들이 오르니 따라 올랐고, 남들이 내려오니 따라 내려왔다. 내 자리를 내가 정하지 않았고, 내 무게도 내 것이 아니었으니, 허물이 벗겨질 리 없었다.
나는 아직 그 허물을 벗지 못했다. 다만, 이 글을 쓰며 나는 내가 매달린 위치를 그리고 내 무게의 가벼움도 알게 됐다. 그게 내 뒤늦은 애도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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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점에서 산 반도체 ETF, 매일 계좌 보며 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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