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행실도 '루백포호' 호환을 당한 아버지의 뼈와 살을 수습하여 장사를 지내고 3년 시묘살이한 고려효자 최루백의 삽화가 그려져 있다.
정재학
오륜행실도 <루백포호(婁伯捕虎)> 삽화를 보자. 삽화는 4개의 장면을 한 화면에 자연스럽게 전개되도록 구성하고 있다. 이야기는 하단부터 시작한다. 앉아 있는 루백이 산 쪽을 가리키며 상대방에게 무슨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장면이다. 사연은 이렇다. 고려 때 사람인 최루백은 15살 되던 때에 아버지가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호환을 당한 것이다.
두 번째는 도끼로 호랑이를 쳐서 잡는 장면이다. 고려사에는 "최루백이 도끼를 메고 범의 발자국을 밟아 가니 범은 벌써 배불리 먹고 누워 있었다. 루백이 바로 앞으로 나서서 '네가 내 아버지를 먹었으니 나도 마땅히 너를 잡아먹을 테다'라고 꾸짖으니 범은 꼬리를 치며 넙죽 엎드렸다"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세 번째 장면은 호랑이 배를 갈라 아버지의 뼈와 살을 수습하여 무덤을 세우고 장사를 지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여막을 짓고 3년 시묘살이를 하는데, 잠깐 졸고 있는 사이에 아버지가 꿈에 나타난다. 이때 읊었던 시가 고려사에 나온다.
"가시덤불 헤치고 효자 여막 도착하니, 넘치는 정이 느껴져 눈물 한없이 흐르네. 날마다 흙 지어다가 무덤 위에 덮나니, 알아줄 이는 명월과 청풍 뿐이로세. 살아생전 봉양하고 죽고 나선 지켜주니, 효도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고 누가 말했나."
호랑이 무덤에 내려오는 이야기
두 번째로 간 곳은 의로운 호랑이의 묘가 있다는 영월 의호총(義虎塚)이었다. 호환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호랑이는 공포의 존재였는데도, 전국 몇몇 곳에 호랑이 무덤이 실존한다. 이곳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마주한 것은 사연의 배경이 된 주천강이었다. 이곳에는 어떤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을까.
조선 숙종 때 영월에 효자 금사하(琴士夏)가 살고 있었다. 병든 어머니의 약을 구하려고 하는데 불행하게도 홍수로 강에 물이 불어나 건너지 못하고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통곡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 등을 태워 강을 건너 약을 구해 병을 치료했다고 한다. 이후 부모를 여의고 3년 시묘살이 하는데, 그 호랑이도 함께 묘를 지켜주었다는 것. 호랑이가 죽자 장례를 치르고 무덤을 만들어 의호총이라 이름 붙였다는 것이다.

▲의호총 의호총에는 묘비가 하나 세워져 있는데, 뒷면에는 순영중군의 분부로 세워져, 금사하가 국상을 당하여 호랑이와 같이 3년상을 마쳤고 3일 후에 호랑이가 죽었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다.
정재학
현재 초가로 만든 여막 옆으로 커다란 호랑이가 주천강을 바라보고 있고, 효자 금사하가 무덤을 향해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시묘살이 하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있는 의호총에 가보니 묘비가 하나 세워져 있었다.

▲의호총 조형물 조선 영월 효자 금사하와 의로운 호랑이의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정재학
비석 앞면에는 '의호총(義虎塚)'이라 적혀 있었다. 그 뒷면에는 "癸亥 七月 日因巡營分付立, 故琴虎士, 師夏康熙庚子天, 崩有虎終三日而死"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1743년 7월에 순영중군의 분부에 의하여 세웠으며, 고금처사 사하(師夏)라는 사람은 1720년에 국상을 당하여 호랑이와 같이 3년상을 마쳤는데 그 호랑이는 3일 후에 죽었다"는 내용이다.

▲창원유씨 4위 정려 천안에는 창원유씨 유언겸을 비롯하여 처, 자식, 손자까지 효자열녀문을 받은 정려가 있다.
정재학
마지막 찾아가 본 방문지는 천안의 유언겸 정려(旌閭)였다. 이곳은 충남 천안 동남구 풍세면 남관리 공수마을 어귀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특히 여기에는 유언겸 자신은 물론이고 처, 자식, 손자까지 3대가 대를 이어 효자·열녀문을 받은 보기 드문 정려였다. 그런데 여기 건물 내부 포벽 좌우로 대나무숲 속에서 포효하는 호랑이가 조각 되어 있는 게 아닌가.

▲유언겸 정려 호랑이 유언겸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여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하는데, 호랑이 한 쌍이 나타나 도둑을 막고 돌림병 환자의 접근을 막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정재학
아래는 '향토문화전자대전'의 '효자 유언겸을 지켜준 호랑이'를 참고해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유언겸이 여막을 짓고 시묘 살이를 하는데, 어느 날 저녁 호랑이 한 쌍이 나타나 눈에 불을 켜고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처음에는 두려웠으나 도둑을 막고 돌림병 환자의 접근을 막는 등 자신을 보호하려고 나타난 호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전염병을 퍼뜨리는 역귀는 기름 냄새를 맡고 온다는 속설이 있어 돌림병이 도는 시기에는 제사 음식을 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효성이 지극한 그는 꿋꿋이 제사를 지냈다. 이에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항의하자 호랑이가 나타나 여막 주위를 돌며 포효하니 놀라 모두 물러가고, 역병을 앓던 환자들도 병이 나았다."
가장 한국적인 호랑이 정신
명주사 고판화박물관의 <루백포호>는 효가 사람의 용기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영월 의호총은 호랑이도 의로움을 수호한다는 교훈을 전한다. 천안 유연겸 정려는 효를 실천한 삶이 공동체의 기준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호랑이 설화는 대개 욕심 많은 사람은 벌을 받고, 효자와 의인은 보호받는 내용이다. 호랑이는 선과 악을 구분하는 존재로 등장하며, 도덕의 수호자 역할을 맡고 있다. 한국의 호랑이는 공동체의 질서를 지키는 수호신이고, 의로운 사람을 돕는 정의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호랑이와 효는 결코 낯선 조합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가장 한국적인 호랑이 정신이라 할 수 있다.
호랑이는 효라는 가치를 지키는 가장 든든한 수호자였다. 'K-효'는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미래의 문화 자산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는 지금도 의로운 호랑이가 조용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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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학예연구사이자 20여 년 동안 문화유산을 연구하고 탐방해 온 문화유산 전문 크리에이터입니다. 김구 선생 탄생150년을 맞아 문화강국 프로젝트 일환, 2036년 전주하계올림픽 유치 및 국립한국호랑이박물관 건립 기원을 위해 기획한 연재로 "거룩한 장도-한국호랑이를 찾아서" 매주 금요일, 전국에 산재되어 있는 한국호랑이를 찾아 탐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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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존재였던 호랑이, 무덤까지 만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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