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시내를 행진하는 시민들 송전탑 반대를 외치며 대전 시내를 행진하는 시민들
환경운동연합
출발에 앞서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해남에서부터 함께 걸어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지역을 전기를 공급하는 희생지로 만드는 국가 에너지 정책을 바꾸기 위해 끝까지 함께 걸어달라"고 말했다. 그는 "송전탑 문제는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에너지 정책과 국토 이용 방식의 문제"라며 전국적인 연대를 호소했다.
문성호 대전충남녹색연합 공동대표도 행진단을 향해 "대전에서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서울까지 함께 걸으며 주민들의 목소리를 알리겠다"고 말했다.
30여 명의 참가자들은 유성구청을 출발해 한밭대로를 따라 서구청까지 1시간 30분가량 걸었다. 폭염 속에서도 걸음은 쉽게 흐트러지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내면서도 손에 든 깃발을 끝까지 내리지 않았다. 이들은 "송전탑 백지화", "주민 의견을 반영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도심을 걸었다.
행진단이 도착한 서구청에서는 전문학 서구청장과 대전송전탑백지화주민대책위원회, 전국대행진 참가자들이 간담회를 열었다. 주민들은 무엇보다 입지선정위원회의 대표성과 운영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주민들도 모르는 사이 위원이 선정된다"
서구청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주민들이 가장 먼저 꺼낸 것은 보상도 노선도 아니었다. 입지선정위원회를 누가 어떻게 구성하느냐였다.
김재용 대전송전탑백지화주민대책위원장은 "구청과 동 행정복지센터, 통장을 거치는 과정에서 주민들도 모르는 사이 입지선정위원이 선정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런 방식으로는 주민 대표성을 확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앞으로는 주민대책위가 추천하는 주민들이 폭넓게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전옥경 대전송전탑백지화주민대책위원장도 "우리 마을은 주택에서 불과 100m 떨어진 곳으로 송전선로가 지나갈 수도 있는 상황인데 주민들은 입지선정위원회에서 어떤 논의가 이뤄지는지조차 알지 못한다"며 "주민들이 생업을 포기하고 송전탑을 막으러 다니게 할 것이 아니라 대전시와 서구가 별도의 대응기구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주민들은 입지선정위원회가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운영되도록 서구청이 나서줄 것, 그리고 주민들의 반대 입장을 중앙정부와 한국전력에 공식적으로 전달해줄 것을 요청했다.
현재 대전에서는 모두 다섯 개의 송전선로가 검토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세 개 노선은 이미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서구는 가장 많은 노선이 검토되는 지역이다. 주민들은 지금이 노선 변경이나 사업 재검토를 요구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시기라고 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나서달라는 말이 반복된 이유다.
이에 대해 전문학 서구청장은 주민들의 문제의식에는 공감하면서도 지방자치단체가 국가사업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은 많지 않다는 취지로 답했다.
답변이 이어지는 동안 회의실 분위기는 무거워졌다. 주민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일부 주민들은 "주민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는 지방정부마저 권한이 많지 않다고 한다면 주민들은 어디에 호소해야 하느냐"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다만 전문학 구청장은 입지선정위원회 구성 과정에서 주민 의견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살펴보겠다고 답했다. 주민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지방정부가 주민들의 목소리를 중앙정부와 한국전력에 보다 적극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전송전탑백지화대책위원회는 이날 전문학 서구청장에게 주민들의 요구를 담은 입장문을 전달하고 공식적인 답변을 요청했다. 주민들의 문제 제기는 지방정부에만 머물지 않았다.

▲대전 서구청장과의 간담회 전문학 대전 서구청장과 주민들의 간담회
환경운동연합
송전탑이 문제가 아니다
주민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단지 송전탑 하나를 막으려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송전탑 하나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되묻기 위해서다. 정부는 기후위기를 이유로 에너지 전환을 말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대규모 반도체 산업단지와 메가프로젝트를 위해 전국에 초고압 송전망을 늘리고 있다. 전력 수요를 줄이는 대신 더 많이 만들어 더 멀리 보내는 방식이 기후위기 시대의 해법일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를 비롯한 대규모 산업단지는 막대한 전력과 용수를 필요로 한다. 그 부담은 수도권이 아닌 지방의 산과 들, 마을이 떠안고 있다. 송전선로는 지역 주민들의 삶을 가로질러 가슴에 구멍을 내고 있다. 발전소와 송전시설은 또 다른 환경 부담을 낳고 피해는 주민에게 전가된다. 기후위기를 해결한다는 명분은 사라지고 새로운 환경 갈등만 남는 셈이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력 소비를 줄이고 지역에서 생산한 에너지를 지역에서 사용하는 분산형 에너지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정책은 초고압 송전망을 계속 확충하는 중앙집중형 전력 시스템을 유지한 채 산업단지 개발만 앞당기고 있다. 에너지 전환은 발전원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전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구조 자체를 바꾸는 일이라는 점을 정부는 간과하고 있다.
대전에서 주민들이 외친 "송전탑을 멈춰 달라"는 요구는 결국 개발을 위한 희생을 더 이상 지역에 떠넘기지 말라는 목소리이기도 했다.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송전탑이 아니라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지역이 함께 지속가능성을 만들어가는 정책이라는 것이 주민들과 행진단의 공통된 주장이다.

▲송전탑 반대 전국 행진에 참여 중인 시민 송전탑 반대 전국 행진에 참여 중인 시민
환경운동연합
간담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다시 배낭을 멨다. 7일 행진은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다시 시작된다. 충남과 충북을 지나 경기와 서울까지, 8월 20일까지 걸음은 계속된다.
해남에서 여기까지, 질문은 매일 하나씩 늘었다. 줄어든 것은 아직 없다.

▲행진하는 이유 퍼포먼스를 위한 우산에 행진하는 이유를 적는 시민
환경운동연합
[연재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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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선로 5개 검토·3개... 주민들이 "입지선정위 대표성 없다" 말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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