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6.08.07 11:14수정 2026.08.07 11:14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얼마 전 스마트폰 화면에 작은 알림 창이 떴다. 내가 올린 일상의 글이 <오마이뉴스> 기사의 한 등급인 '잉걸'로 채택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기사의 주제는 대단한 사회 비판이나 거창한 인생 철학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키우는 고양이 때문에 최근에 꽤 많이 웃었다는, 아주 작고 사소한 이야기였다(관련 기사 : 고양이와 남편 그리고 내가 벌이는 기상천외한 꼬리 잡기).
알림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벅찬 해방감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히 내가 쓴 기사가 세상에 닿았다는 기쁨을 넘어, '타인의 시선, 세상의 잣대'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온전히 내 감정에 솔직해지는 법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상실감과 무기력에 끌려 다니던 내가 마침내 내 인생의 통제권을 완전하게 쥐게 된 이 벅찬 순간에 닿기까지, 나는 꽤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와야 했다.
숨만 쉬며 웅크려 있던 나를 다시 살게 한 것이 바로 글쓰기였다. "글을 한번 써보는 게 어때?"라는 누군가의 사소한 권유가 그 시작이었다. 예전에 블로그에 혼자만의 일기를 쓰다 기약 없는 독자를 기다리며 흥미를 잃었던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형체 없이 나를 짓누르던 그 압도적인 무관심과 무기력이 활자가 되어 모니터 위에 찍히는 순간, 그 무게감이 조금씩 옅어지는 것을 느꼈다. 내 안에 갇혀 있던 감정들을 밖으로 꺼내어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자, 나를 옥죄던 생각의 사슬이 느슨해졌다. 죽어 있던 감정선이 미세하게 꿈틀거렸고, 글을 쓰는 고요한 시간만큼은 온전한 치유의 시간이었다.

▲나를 살리는 소중한 글쓰기 깜빡이는 커서는 '오늘은 어떤 글을 써볼까' 하는 설렘을 안겨준다.
유현주
하지만 감정을 쏟아내는 것만으로는 완전히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어쩌면 나는, 내가 바라보는 이 사회의 모습과 내 안의 감정들이 단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세상으로부터 공감 받고, 확인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일상이 뉴스가 된다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제도를 알게 되었고, 거창한 결심이 아닌 사소함으로부터 한 발짝 내딛게 되었다.
용기를 내어 여러 편의 글을 송고했지만, 결과는 연거푸 '생나무'였다. 내 글이 생나무가 될 때마다 멈춰버린 삶의 '생명줄'을 붙잡는 간절한 심정으로 편집부에 피드백을 요청하였다. 이것이 혹시라도 무례한 건 아닐지 우려가 되었으나, 나에게는 그보다 이 생명줄을 붙잡고, 삶을 지속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했다.
피드백 결과 뉴스 매체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시의성'과 같은 기사의 요건을 알지 못했던 탓에, 나는 과거를 중심으로 서술하는 에세이 형식의 글에서 멈춰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피드백을 바탕으로 글을 다듬어 나가는 과정에서, 나는 내 글쓰기의 치명적인 문제점을 스스로 깨달았다.
나는 끊임없이 내 글을 교정하고 검열하고 있었다. 내가 쓴 기사가 실명으로 게재되기에, 행여 내가 아는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나의 어두운 밑바닥을 보게 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매체의 성격과 맞지 않는다는 핑계로 문장을 둥글게 깎아내고 감정을 포장하다 보니, 어느새 글의 진정성과 솔직함은 증발해 버렸다. 타인이 읽고 싶어 하는 글도, 그렇다고 내 온전한 마음을 담은 글도 아닌 껍데기 같은 글을 쓰고 있었다.
진정성을 되찾기 위해 나는 거창한 주제 대신 가장 사소하고 안전한 나의 일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것이 바로 서두에 이야기한 '고양이' 에피소드였다. 솔직하게 적어 내려가도 내 초라함을 들킬 염려나 누군가의 비난을 받을 이유가 없는 주제 앞에서는 어떤 방어막도 필요 없었다.
비로소 나는 온전한 진정성을 담아 아주 솔직하게 글을 완성할 수 있었고, 그 솔직함은 마침내 '잉걸' 채택이라는 기적으로 돌아왔다. 생나무에 머물렀던 과거의 글들과 이번 글의 결정적 차이는 다름 아닌 '솔직함'이었던 것이다.
글쓰기는 캄캄한 우울의 늪에서 숨만 쉬며 연명하던 나를 살려낸 구원이었다. 부서진 마음을 글에 쏟아내며 스스로를 치유했고, 자기 검열을 넘어 솔직해지는 법을 배웠으며, 그 진심을 세상에 내보내며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 나는 오늘도 사소하지만 위대한 치유의 의식을 치르듯, 내 삶의 온전한 주인이 되어 조용히 키보드를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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