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한 눈·깨어 있는 의식·열린 마음"을 모토로 시 전문지 계간 <시와 반시(詩와 反詩)>가 1992년 가을호로 대구에서 창간되었다. 발행인 김봉해, 기획편집 강현국·구석본·박재열, 발행처 도서출판 향토이다. 창간호의 기획특집 '반시란 무엇인가', '미국의 반시', '일본의 반시'를 비롯, 평론 '현실의 존재와 부재에 관한 단상', '상승과 하강의 변증법', 신간특집 2편의 논설을 실었다.
필자를 밝히지 않았으나 발행인이 썼을 창간사이다.
<시와 반시>의 출발은 작고 소박한 희망에서부터 비롯된다. 서울이 아닌 이 지역에도 제대로 된 시 전문 잡지 하나쯤 있어야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작고 소박한, 그러나 분명한 우리들의 희망 속에는 적지 않은 갈증과 허기의 시간들이 퇴적되어 있다.
문화적 갈증과 허기는 우선 문학 저널리즘의 서울 집중과 관계가 있다. 다시 그것은 기존 저널리즘의 녹슨 관행과 깊이 연루된다. 유통체계의 불구성과 가치의 왜곡, 또는 가치의 사각지대를 읽는 자에게 갈증과 허기는 엄살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시인들이 동의하는 보편인식이나 공유정서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자신이 발디딘 땅이 삶의 중심이며 자신의 문학적 상상력이 역사의 한 가운데임을 확신하는 자존과 오만이 참된 시인의 요건일 때 갈증과 허기는 고독한 그들만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와 반시>가 서울이 아닌 이 지역에서 창간되었다는 사실이 주목되기를 바란다. 한국문학사의 오늘은, 이른바 중앙시단의 그것과는 다른, 신선한 산소와 양질의 영양을 공급할 제삼의 심장이 요청되는 시점인 것이다.
고정된 관념들은 우리의 적이다. 각질의 이데올로기, 그 진영화에 의해 기존의 핏줄이 간단없이 막혀 있고 신선해야 할 공기 또한 자본주의의 폐해에 턱없이 오염되어 있음을 본다. 우리는 많은 것을 아깝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많은 것들을 차겁고 싸늘하게 밀어낼 것이다. 꿈꾸는 세계와의 진정한 만남은 영혼의 군살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시의 최고의 전통이 어디로 이어져야할지를 엄정한 눈으로 살필 것이다. 편견과 관행에 대한 과감한 해체만이 새로운 활로임을 깨어있는 의식으로 새길 것이다. 우리는 윤동주와 백석, 또는 G.M.홈킨즈나 에밀리 디킨즈가 세인의 관심 밖에서 세상을 떠나는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것이다. 물론 창간호의 편집내용이 우리의 뜻을 충족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열린마음으로 하나이면서 전부인 <시와 반시>이기를 집요하게 꿈꿀 것이다.
척박한 땅에 씨 뿌리는 이 순간의 오기와 고독이 풍화되는 그날을 기다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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