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여행의 필수품인 것처럼 광고하더니, 막상 쓰려고 하니 무용지물이었던 문제의 카드. 중국계 은련(Union Pay) 카드는 유럽과 미주 지역에서 사용이 제한된다는 사실을 귀국 후에야 알게 됐다. 얼마 안 되는 액수일지언정 카드사에 끝까지 배상을 요구할 작정이다.
서부원
해외여행 중에 쓰려고 환전해 온 현금도 한 푼 없는데, 카드 결제마저 안 되는 상황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만약 호주머니 속에 다른 여분의 카드가 없었더라면 큰 낭패를 당할 뻔했다. 혹여 분실을 우려해 챙겨간 게 천만다행이었다.
처음엔 카드에 내장된 칩의 문제인 줄 알았다. 첫째 날 공항에서는 아무런 걸림돌 없이 사용했는데, 시내에선 그 어떤 곳에서도 통용되지 않았다. 결제기에 마그네틱 선을 그어봐도 '사용 불가 카드'라는 안내만 반복됐다.
카드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별의별 생각이 다 스쳤다. 혹시 신용카드가 아니라 직불형 체크카드여서 안 되는 걸까. 해외에서 처음 사용할 땐 어떤 특별한 절차가 필요한 걸까. 아무튼 지금껏 해외여행 때 카드로 인한 불편을 겪어본 적이 없어 크게 당황했다.
그런데, 여행 둘째 날 두어 차례는 결제에 성공했다. 처음부터 먹통이었으면 애초 포기했을 텐데, 해당 결제기의 오류인가 싶어 계속 문제의 카드를 내밀었다. 점원이 고개를 가로저으면, 다시 여분의 카드를 꺼내 결제하는 번거로움이 며칠간 반복됐다.
귀국하고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카드를 발급한 은행에 부러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창구 직원도 고개를 갸웃거릴 뿐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은행이 카드는 발급하긴 했지만, 카드와 관련된 문제를 은행은 알 수 없다는 거다.
직원은 연신 죄송하다면서 카드 영업팀에 상담 예약을 잡아 주었다. 해외에서 겪은 고충에 대한 장황한 설명에 상담사의 답변은 짧고도 명쾌했다. 중국계 카드 브랜드여서 결제가 안 됐다는 것. 발급받은 카드엔 '은련(Union Pay)' 로고가 찍혀 있었다.
유럽과 미주의 일부 국가에서 '은련' 카드 사용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그때 처음 들었다. 만약 그 사실을 알았다면, 굳이 '은련' 카드를 발급받을 이유가 하등 없다. 발급받을 당시 해외에서 사용처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그 어떤 안내도 받질 못했다(유니온페이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171개 국가·지역에서 사용할 수 있지만, 국가와 가맹점의 결제망 지원 여부에 따라 사용 가능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 편집자 주).
미주-유럽에선 사용도 못하는데, 환전수수료는 '0'원?
카드를 발급해 준 은행 직원을 탓하기도 뭣하다. 그도 처음 몇 번은 결제가 됐다는 내 설명을 듣고선 카드에 내장된 칩의 훼손 문제인 걸로 여기는 듯했다. 여하튼 유럽이나 미주로의 해외여행 경험이 없다는 그와 멋쩍은 웃음만 나눌 수밖에 없었다.
"중국계 '은련' 카드는 유럽 등지에서 사용이 제한될 수 있다는 걸 모르셨나요?"
상담사는 무심코 건넨 말이었는지 모르지만, 순간 부아가 치밀었다. 책임을 애꿎은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고약한 발언이어서다. 약관에 사용 제한 국가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거명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사전에 왜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았느냐는 뜻으로 들렸다.
"카드를 발급받을 때, 약관을 읽어보라는 안내조차 받지 못했는데, 이 또한 소비자의 책임인가요?"
"여러 나라에서 사용이 제한되는 카드라면, 왜 굳이 카드사와 은행이 협업까지 해가며 소비자에게 카드를 판매하나요?"
"이에 대한 손해를 배상 받으려면, 중국 정부와 기업에 문의해야 하는 건가요?"
꼬리에 꼬리를 문 내 항의성 질문에 상담사는 그제야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은련' 카드가 해외에서 사용이 어렵다는 게 그에겐 '상식'일지 몰라도, 나처럼 금시초문인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그런 상품이라면 애초 판매하지 말았어야 한다.
많고 많은 카드 중에 굳이 이 카드를 발급받은 이유가 있다. 환전 수수료가 '0'이라는 광고에 혹했기 때문이다. 현금을 사용하든, 카드로 결제하든, 해외여행 때마다 환전 수수료는 특정 국가의 비자 발급 비용처럼 괜히 바닥에 버리는 돈 같아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이름도 해외여행에 특화된 카드라며 '트래블로그(Travlog)'였다. 연동된 은행에 계좌를 개설하고, 미리 해외에서 결제할 때 쓰일 해당 국가의 화폐로 환전해 두기만 하면 됐다. 이 또한 귀국한 뒤에야 알게 됐지만, 결제할 때마다 해당 국가의 화폐로 자동 환전이 되니 미리 환전해 둘 필요조차 없다고 했다.
환전 수수료의 부담 없이 결제 당시의 환율만 고려하면 되는 셈이다. 이를 위해 그저 은행 계좌를 개설하고 '트래블로그' 전용 카드만 발급받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땐 생각지도 못한 복권에 당첨된 것 같아 뛸 듯이 기뻤다.
그 카드가 막상 해외에서 '애물단지'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더욱이 금전적 손해까지 감수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귀국하자마자 직접 발급한 은행을 찾아가고, 카드사의 상담사와 언쟁을 벌이고, 이렇게 노트북 앞에 앉은 직접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달러와 파운드, 유로와 엔까지 모두 그려진 카드
우선, 카드를 사용할 수 없었으니, 환전 수수료를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직불형 체크카드여서 연회비 부담은 없지만, 환전 수수료 아껴보겠다고 조퇴 신청까지 해가며 발품을 판 노력은 허사가 됐다. 우리나라에선 쓸 일이 없을 테니, 가위로 자를 일만 남았다.
진짜 문제는 떠나기 전 은행 계좌에서 미리 환전해 둔, 적잖은 헝가리 돈(HUF)이다. 카드로 결제할 때마다 여기서 그때그때 빠져나가야 했지만, 카드를 쓰지 못했으니 환전한 액수가 거의 그대로 남았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얼추 200만 원쯤 된다.
또다시 헝가리에 갈 일이 없을 듯해 우리 돈으로 환전하려고 했더니, 은행은 1.5%의 환전 수수료를 요구했다. 우리 돈을 외화로 환전할 때는 수수료가 없지만, 외화에서 우리 돈으로 환전할 때는 수수료가 부과된다는 거다. 이 또한 사전 안내를 듣지 못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헝가리 화폐의 환율이 4.64원이었는데, 지금은 4.47원(8월 7일 기준)으로 크게 떨어졌으니, 겹으로 손해를 떠안게 됐다. 우리 돈으로 다시 환전할 때 부과되는 수수료야 은행의 영업 전략일 테고, 시시각각 변동하는 환율은 불가항력의 상황이니 이를 탓할 순 없다. 문제는 '사용 불가'였던 카드 자체다.
헝가리 여행 중 무용지물이었던 '트래블로그' 카드 앞면에는 환율 수수료가 없다는 걸 뽐내는 문구가 적혀 있다. 달러와 파운드, 유로와 엔 등 세계 모든 나라에서 통용된다는 듯한 문양도 들어 있다. '즐거운 여행'이라는 뜻의 프랑스어까지 써 놓았다.
카드에 대한 '상식'도 모르는 나와 같은 사람을 위해 현란한 그림 대신 차라리 '일부 국가에서 사용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는 문구를 적어놓는 게 소비자를 위한 배려일 것이다. 금전적 손해라고 해 봐야 기껏해야 십여만 원에 불과할 테지만, 무책임한 카드사의 영업 행태는 바루어야 한다. 내가 카드사에 합당한 배상을 요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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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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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서 못 쓰는 카드, 몰랐나요?"... 카드사의 황당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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