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덥다.
올여름에도 폭염특보가 이어진다. 낮에는 밖에 나가기 겁날 정도로 뜨겁고 밤에도 열기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그럴때면, 익숙한 장면이 뉴스에 나온다. 노란 민방위복을 입은 사람들이 현장을 찾고, 무더위쉼터를 점검하고, 어르신들을 찾아가 안부를 묻는다. 대책회의가 열리고 "폭염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하라"는 지시가 내려진다.
그런데, 폭염은 갑자기 터진 사고가 아니다. 여름이 오면 더워질 것이라는 사실은 몇 달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폭염대책은 언제 시작해야 할까. 수백 년 전 우리 조상들은 겨울부터 준비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재난이 오기 전에 무엇을 준비했는가 아닐까. 우리 조상들의 여름 준비에서 그 답을 찾아보자.
동빙고동과 서빙고동
서울 용산에는 지금도 동빙고동과 서빙고동이라는 지명이 있다. 서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그런데 '빙고'가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빙고(氷庫)는 말 그대로 '얼음 창고'다. 조선시대 한양에는 동빙고와 서빙고가 있었고 그 이름이 오늘날까지 지명으로 남아 있다.
냉장고도 에어컨도 없던 시대에도 여름은 더웠다. 문제는 한여름에는 얼음을 만들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상들은 여름이 되어서 얼음을 구하려고 하지 않았다. 겨울 한강이 얼면 얼음을 채취해 빙고에 저장했다가 몇 달 뒤 여름에 꺼내 사용했다.
우리가 지금도 사용하는 서울의 지명 속에 수백 년 전 사람들의 여름 대비책이 남아 있는 셈이다.
조상들은 겨울의 추위를 저장해 여름에 사용했다. 어쩌면 그들은 얼음만 저장한 것이 아니라 계절을 저장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조상들이 겨울의 얼음을 저장해 여름에 사용하는 지혜는 아주 오래됐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지증왕 6년인 505년 겨울, 국가가 얼음을 저장하도록 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얼음을 관리하는 관청인 빙고전(氷庫典)에 관한 기록도 남아 있다.
이러한 전통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조선시대 한양에는 동빙고와 서빙고, 궁궐의 내빙고가 있었고 지방에서도 얼음을 저장했다. 오늘날에도 경주, 안동, 청도, 창녕, 현풍, 영산 등 여러 지역에 석빙고가 남아 있다. 현재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석빙고 건축물들은 대부분 조선시대의 것이지만, 얼음을 저장하고 관리하는 지혜 자체는 그보다 훨씬 오래된 것이다.
물론 당시의 빙고를 오늘날 의미의 '폭염대책 시설'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제향과 음식 보관 등 얼음에는 여러 용도가 있었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원리는 분명하다. 자연이 줄 때 받아두었다가 필요한 때 사용하는 것이다. 놀랄 만큼 단순한 생각이다. 그리고 바로 그 단순함이 오늘날 우리가 다시 생각해 볼 지혜인지도 모른다.
죄수에게도 얼음을
조선은 얼음을 저장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국가가 그것을 관리하고 누구에게 나누어 줄 것인지까지 제도로 정했다. <경국대전> 「예전」에는 '반빙(頒氷)', 즉 얼음을 나누어 주는 규정이 있다. 각 관청과 종친, 문무 당상관 등에 얼음을 지급하고 70세 이상의 한산 당상관에게도 나누어 주도록 했다. 여기서 70세 이상이라고 해서 모든 노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현직에서 물러난 고령의 당상관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어지는 내용이 더 눈길을 끈다. 활인서의 병자와 의금부·전옥서의 죄수에게도 얼음을 지급하도록 했다. 죄수에게도 얼음을 주었다. 죄를 지었다고 해서 혹독한 더위 때문에 병들거나 죽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았던 것이다. 얼음은 왕과 고관들의 사치품만이 아니라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는 공공자원의 성격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이 얼음은 폭염이 닥친 뒤 급하게 마련한 것이 아니었다. 겨울에 준비한 것이었다.
현대의 석빙고는?
그렇다고 지금 다시 한강의 얼음을 잘라 빙고에 넣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석빙고라는 시설 자체가 아니라 그 속에 들어 있는 '필요해진 다음 찾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줄 때 미리 받아두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오늘날에는 얼음 대신 빗물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여름에는 많은 비가 내린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비가 오면 그 물을 가능한 한 빨리 하수관으로 보내고 하천을 통해 흘려보내는 데 익숙하다. 그러다가 며칠 뒤 폭염이 찾아오면 뜨거워진 도로에 물을 뿌리고 말라가는 나무에 다시 물을 공급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묻고 싶다. 며칠 전에 하늘에서 공짜로 내려온 그 물은 어디로 갔습니까? 비가 많이 올 때 일부라도 가까운 곳에 받아두었다가 폭염 때 사용한다면 어떨까. 비가 올 때는 물을 받아 침수 부담을 덜고, 더울 때는 저장한 물을 나무와 녹지에 공급할 수 있다.
새로운 원리가 아니다. 겨울에 얻은 얼음을 여름까지 저장했던 생각을 오늘날의 조건에 맞게 적용하는 것이다.
첨단기술보다 먼저 필요한 상식
오늘날 폭염대책을 이야기하면 첨단기술이 등장한다. 인공위성으로 열섬을 분석하고 AI로 폭염을 예측한다. 새로운 냉방기술과 포장기술도 개발한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연구하고 대책을 만든다. 물론 모두 필요하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 정확하게 예측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지 않을까. 너무나 당연한 상식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름이 더운 것은 알고 있다. 여름에 많은 비가 내리는 것도 알고 있다. 비가 많이 온 뒤 한동안 비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그렇다면 물이 많을 때 조금 받아두었다가 필요할 때 쓰자는 생각은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겨울이 지나면 여름이 온다는 사실을 아는 데 슈퍼컴퓨터가 필요하지 않다. 조상들은 기상위성도 장기예보도 AI도 없었지만 겨울에 얼음을 저장해 여름을 준비했다. 어쩌면 문제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잘게 나누어진 전문지식 때문에 전체를 연결해서 보는 상식을 놓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홍수 전문가는 홍수를 보고, 가뭄 전문가는 가뭄을 보고, 폭염 전문가는 폭염을 본다. 각각의 전문성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자연은 그렇게 칸막이를 치지 않는다. 전문가는 각각의 문제를 깊이 보아야 한다. 그러나 정책은 그 문제를 다시 연결해야 한다.
올여름 폭염이 끝나면 뉴스에서 폭염 이야기도 사라질 것이다. 노란 민방위복도 옷장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바로 그때가 다음 폭염대책을 시작할 때다.
가을과 겨울에는 다음 여름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생각하고, 물을 어디에 받아둘 것인지 찾아야 한다. 봄에는 나무와 녹지, 물을 저장할 공간이 여름을 맞을 준비가 되었는지 점검하면 된다. 그리고 여름에는 준비해 놓은 걸 사용하면 어떨까.
내년에도 여름은 온다. 그리고 더울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 올해 폭염이 지나갔다고 폭염대책까지 끝내지 말자. 오히려 그날부터 다음 폭염을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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