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전시관으로 변한 옛날 사저 앞에서 시민들과 만나던 자리임을 알리는 표지판
최우혁
지난 5월 23일, 이곳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 17주기 추도식이 열린 그날, 동상 인근에서 젊은 남녀가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일베) 상징 손가락 표시를 하며 사진을 찍은 일이 언론에 보도돼 논란이 됐던 곳이었다. 뉴스로 접했을 때도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막상 그 자리에 직접 서 보니 감정이 훨씬 복잡했다.
그 생각 때문이었을까, 마침 인근을 돌아다니는 20대로 보이는 남성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마음이 덜컥 했다. 하지만 청년들은 묘역 앞에서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참배한 뒤 조용히 발걸음을 돌렸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동시에 아무 잘못 없는 이들을 먼저 의심부터 하게 된 내 자신이 머쓱 해졌다. 한 번의 사건이 남긴 마음의 생채기가 이렇게 오래가는구나 싶었다.

▲ 밴치에 앉아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동상
최우혁
묘역 인근을 천천히 둘러보는데 방명록이 눈에 띄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녀갔을까 싶어 펼쳐봤다. 낯익은 지역명들 사이로 '경기도 고양시'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대구에서도 1시간을 달려온 나인데, 고양시라면 그보다 훨씬 먼 길이다. 어떤 마음으로 그 거리를 달려왔을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저 궁금했다. 무엇이 사람을 그렇게 움직이게 하는지.
방명록을 덮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봉화산 등산로로 발길을 돌렸다. 등산에 적합한 복장은 아니었지만 천천히 숨을 몰아쉬며 산을 올랐다. 무더운 여름 산길에 금세 땀이 흘렀다. 정상 인근 정토원에 이르렀을 때는 숨이 턱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그런 몰골을 본 정토원 직원이 냉장고에 시원한 생수가 있으니 얼마든지 가져가라 일러주었다. 낯선 이에게 건네는 흔한 친절이었지만, 그 순간엔 유독 크게 다가왔다.

▲ 붕어빵과 김밥, 미숫가루
최우혁
산을 내려오니 다리가 후들 거렸다. 아침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산을 오른 탓인지 허기가 몰려와 마을 카페에 들어가 미숫가루와 붕어빵을 주문했다. 커피도 아닌 미숫가루에 더욱이 한여름에 웬 붕어빵이냐 싶었을까, 내가 허기진 걸 눈치챈 카페 직원이 본인 점심으로 사온 김밥을 나눠주었다. 정토원에서 받은 생수 한 병, 카페에서 나눠 받은 김밥 두 조각이 마음에 온기를 채웠다.
같은 하루, 같은 마을에서 나는 서로 다른 두 마음을 마주했다. 동상 앞에서 느낀 씁쓸함과 경계심, 그리고 방명록 한 줄과 생수 한 병, 김밥에서 느낀 온기. 봉하마을을 나서는 길, 그 두 마음의 간극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
평범한 시민입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바랍니다.
공유하기
봉하마을에서 생수 한 병, 김밥으로 채운 온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