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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고는 쓰레기'?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썼으면 고쳐야지] 생각도, 감각도, 태도도 새로 태어나게 하는 것

    등록 2026.08.22 19:19수정 2026.08.22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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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기자가 쓴 글을 매일 고치고 다듬는 사람의 이야기. 인공지능(AI)이 쓰고 고치는 시대에, 인간이 쓰고 고치는 마음을 찬찬히 담아 봅니다.[기자말]

    "저는 퇴고가 끝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 같다고 생각합니다. 붙잡고 늘어지면 한도 끝도 없이 느껴져서요." - 송미정 시민기자

    "저는 퇴고가 '외출 전 거울 앞에 서는 일'과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아까워서 미칠 것 같은 문장과 한판 싸우고, 정말 솔직하게 썼는지 스스로 양심선언도 해야 하지만 결국에는 거울 앞에서 글의 전체 모습을 살펴야 하니까요." - 정현주 시민기자

    어떤 단어는 내가 가진 언어로 표현하려고 든다. 보통 자신에게 의미 있는 단어일 때 그런 마음이 생긴다. 그걸 어느 시인은 '말에 독점권'이 생기는 거라고도 했다. 지금 나에게는 '퇴고'가 그렇다. 퇴고라는 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퇴고하는 마음을 살피며 퇴고를 좀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생각을 못 했다. 퇴고를 뭐라고 생각하는지 말이다.

    글만 낳는 것은 아니다


    '퇴고'하면 떠오르는 말부터 짚어봤다. 꼼꼼히. 자세히. 면밀하게. 집중해서. 존중. 인정. 깊이. 고치기. 빼기. 바꾸기. 다름. 그 반대편에 있는 말도 생각해 봤다. 대충. 대강. 덤벙. 싹. 이 정도. 이어 삭제. 조급하게. 방치. 간결하게, 유연하게 같은 것도 스쳐 갔다. '퇴고'의 이미지도 자유롭게 생각해 봤다. 기억 저편에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 전시장에서 본 다큐 영상 한 장면이 남아 있었다.

    "아주 다 없어진 다음에
    사물을 단순화해서 아주 다 없어진 다음에
    새로 나타나는 것을 생각한다.
    목수가 대패질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없어지면서 새롭게 나타난다.
    결국 화가는 그렇게 매일 해야 한다.
    딴 생각 안 하고 작품을 하는 일.
    그것이 그중 좋은 것이다." - 유영국 화가

    '사물을 단순화해서 아주 다 없어진 다음에 새로 나타나는 것', '목수가 대패질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 '없어지면서 새롭게 나타나는 것'이란 문장을 보고 퍼뜩 '퇴고도 그렇지' 싶었다. 추상화만 그런 게 아니었다. 퇴고 후의 글도 새로 나타나는 것, 새로 태어나는 것이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만든 이미지.
    ▲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만든 이미지. 오마이뉴스

    글만 낳는 것도 아니었다. 퇴고는 내 어떤 일부도 새로 낳았다. 그것은 생각이기도 하고 감각이기도 하고 태도이기도 했다. 없던 생각과 감각과 태도가 쓰고 고치면서 내 안에 스며들었다. 그렇게 스며든 생각과 감각과 태도가 내 삶을 돌봤다. 내가 나를 돌보는 가장 문턱 낮은 집. 그 집에선 언제나 환대가 넘쳤다.

    '쓸수록 내 삶이 좋아졌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초고와 퇴고한 글이 다르듯, 쓰기 전과 후의 나는 같다고 할 수 없을 테니. 지금도 나는 흠칫 놀라고 있다. 이런 내용의 글을 쓰게 될 거라고는 불과 30분 전까지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퇴고는 무엇일까, 이것을 쓰기 위해 시민기자들이 생각하는 퇴고를 인용하며 글을 시작했을 뿐이다. 뭐가 될지 모르지만 단어의 조합으로 문장을 완성해 나가면서 머릿속에서 들리는 혹은 떠오르는 문장들을 잘 받아 적은 것이 바로 이 글의 초고다.


    '초고는 쓰레기'라는 말은 초고가 쓰레기니까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감을 가지라는 말에 가깝다. 초고는 '가능성'이니까. 어설프고 장황하더라도 그러한 초고 없이 글을 완성하기란 불가능하다. 목수가 대패질을 하듯, 조각가가 조각을 하듯, 글은 퇴고로 완성된다. 작품으로 태어난다. 1일 된 작가나 80대 작가나 이것만은 공평하다. 초고를 버리지만 않는다면. 즉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나아지고 싶은 마음


    물론 글 한 편을 완성하기까지 견디기 어려운 손님들은 자주 찾아든다. 내 글이 너무 후져서 보기가 힘든, 대체 이걸 누가 읽을까 싶은, 아무리 고쳐봐도 흡족하지 않은, 고칠수록 더 이상해지는 것 같은, 글 쓰는 재미마저 사라지게 하는 불청객들이.

    눈가에 서성이는 똥파리 같은 불청객들을 쫓아내는 건 '좋아하는 마음'이다. '좋아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똥파리와의 대결에서 승자는 언제나 '쓰는 사람'이다. 그러니 '쓰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사실 아주 단순하다. 끝과 시작을 결정하는 일, 그게 전부다(완성하라는 말은 아니다). 그렇게 쓴 글은 아마도 다음 세 개의 범주 가운데 하나에 들 거다.

    첫째는 너무 깎아버린 글. 생각이 너무 많아 얼마나 깎아내는지도 잊은 채 깎아내다 날것이 주는 감동을 날려버린 글을 말한다(이는 지난 글에서 내가 고친 남편의 글을 읽은 독자들이 한 지적이기도 하다. 남편이 사적으로 보내는 글을 내가 너무 정색하고 바라본 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경계해야 할 마음이었다). 둘째는 적당히 깎은 글. 글 쓴 사람이 이 정도면 됐다 하는 글. 마지막으로 덜 깎아낸 글. 성가신 불청객들에게 끌려다니다시피 해서 글도 자신도 제대로 돌보지 못했을 때 나오는 결과물이다.

    그게 무엇이든, 어떤 형태의 글이든 '읽는 독자'는 분명 있고 그 반응은 쓰는 사람의 예상과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독자에게 휘둘릴 게 아니라면 중요하게 생각할 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잘 담고 있는가'다. 무엇이 될지 모를 가능성을 안고 있는 '초고 덩어리'를 솔직하고 용기 있는, 진심이 담긴 칼로 깎아내는 일. 완벽함을 버리고 나 자신을 수용하는 일. 말하자면 그 길이 퇴고다. 누군가에게는 몇 정거장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부산까지 다녀오는 길일 수도 있는.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고쳐도 흡족하지 않다"라는 말이 어쩐지 좋다. '나아지고 싶은 마음'이 느껴져서다. 글도 사람도. 포기하지 않고 해내고 싶은 그 마음이 삶을 얼마나 다채롭게 만드는지 경험해 본 사람은 아니까.

    나 역시 한껏 받는 응원으로 글도 삶도 이어 나간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고치고 다듬어 글을 낳는다. 다시 나타나는, 태어나는 기쁨을 맛본다. '스무살부터 만 45년간 그림을 하길 잘했다'는 화가 유영국의 말처럼 나도 딴 생각 안 하고 계속 쓰고 다듬으며 살고 싶다.
    #썼으면고쳐야지 #편집기자 #퇴고 #퇴고하는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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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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