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이 계속되는 가운데, 비공개 장소에서 진행된 우크라이나 군인 훈련 도중 스팅(Sting) FPV 요격 드론이 비행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유독 AI, 킬러 로봇과 관련한 고요한 침묵은 소름 끼치도록 서늘함을 준다. 그런데 왜 킬러 로봇과 관련한 질문은 나오지 않았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한국 사회의 구성원에게 '안보'의 의미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70년이 넘는 분단은 한국 사회 전체를 안보화된 공간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어떤 사안에 '안보'라는 말이 붙는 순간, '빨갱이', '반국가세력'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은 일을 많이 보고 겪었다.
국제정치학자 배리 부잔(Barry Buzan)은 이 과정을 '안보화(securitization)'라고 명명했다. 그에 따르면, 어떤 사안이 안보 문제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어떤 세력의 의도적이고 정치적인 작업의 결과다. 특정 정치인이나 국가 통수권자·군부가 "이것은 국가 안보의 문제"라고 선언하면, 그 사안은 통상의 토론과 민주적 절차를 건너뛰어도 어쩔 수 없는 예외의 영역으로 옮겨가는 식이다.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안보화라는 선언은 '이것은 논쟁할 문제가 아니며 민주주의 바깥에 놓여도 괜찮다'는 말처럼 활용되곤 했다.
그렇기에 한국에서 킬러 로봇을 활용하면서 최소한의 토론, 질문, 공유가 이뤄지지 않았던 거 아닐까. 정부는 SGR-1의 DMZ 배치 과정에서 킬러로봇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설득하지 않았고, 국회도, 언론도 그 배치의 의미를 묻지 않았다. (최종판단은 인간이 맡는 수동모드로 사용한다 해도) 기계가 살상을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자율모드가 탑재된 킬러로봇을 거의 세계 최초이다시피 실전에 배치했다. 분단국가이므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킬러로봇이라 불리는 무기체계를 도입할 때, 윤리적 검토와 사회적 논의가 전무한 건 고도로 안보화된 한국 사회의 현실을 보여준다.
그 결과가 고밀도로 안보화된 DMZ라는 장소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설명도 승인도 필요로 하지 않는 공간이 탄생했다. 안보의 논리가 제도와 습관 속에 깊이 가라앉아버린 셈이다. 그렇게 우리는 안보화의 결과로 '끝없는 침묵' 또는 '의도된 외면'을 마주하게 됐다. 앞서 인용한 미 해군연구청 보고서의 문장, "DMZ에 진입하는 모든 사람은 자동으로 적으로 간주된다"를 읽어본다.
이 보고서는 한국을 로봇윤리헌장을 마련한 최초의 국가라 소개했다. 그 보고서는 틀렸다. 한국은 2007년 세계 최초로 국가 차원의 로봇윤리헌장 제정을 시도했다.
당시 초안은 인간과 로봇의 공존을 목표로 삼고, 로봇 제조자와 사용자, 정부의 책임을 함께 다루었다. 초안에는 로봇이 인간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되며, 제조자는 인간의 존엄성과 정보 보호를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사용자 역시 로봇을 불법으로 개조하거나 남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이후 공식 헌장으로 확정되지는 않았다. 논의만 되었을 뿐, 제도화되지 않은 채 20년 가까이 방치된 상황이다.
언제 질문할 수 있을까

▲ 5사단 열쇠부대 군 장병들이 지난 2025년 12월 22일 경기 연천군 접경지역에서 시범 운용 중인 다족 보행 로봇과 함께 철책 경계 근무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6년 봄,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인공지능(AI)에 기반을 둔 과학화 경계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군의 최전방 경계초소 배치 병력을 현재 2만 2000명에서 6000명으로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급격한 인구감소와 기술의 변화가 맞물린 현실에서 이러한 전환은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자율무기체계 오작동의 가능성, 윤리적 문제, 해소되지 않은 인도주의 및 인권적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은 채, 일단 도입하고 보려는 태도는 20년 전, DMZ의 킬러로봇 도입을 떠올리게 한다.
"추격해야 하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어요."
군사 분야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듣는 말을 다시 떠올린다. 인공지능기본법의 국방 및 안보 예외에 대한 의견을 요청하거나, 국방인공지능법안이 규제 특례 중심으로 구성된 것을 두고 질의하면 으레 이런 답이 돌아온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고, 아직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기술 격차를 좁히는 게 우선이고, 윤리 검토나 규제 논의는 일단 역량을 확보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는 설명이다. 규제를 먼저 만들면 개발이 멈추고, 개발이 멈추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는 논리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언제 '안보'와 관련한 AI 기술 논의를 할 수 있을까. 과연 그런 때는 올까.
고도로 안보화된 사회에서는 기괴한 역전이 일어난다. 무기를 배치하는 쪽이 아니라 그 무기에 대해 질문하는 쪽이 그 질문이 정당한지 입증해야 한다. 윤리적 검토를 말하면 안보를 지연시키는 사람이 되고, 규제를 말하면 기술 경쟁에서 나라를 뒤처지게 만드는 사람이 된다. 인공지능기본법의 국방 분야 적용 제외와 국방인공지능법안의 규제 특례는 바로 이 뒤집힌 구조의 입법적 표현이다.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은 안보화된 사회 안에서 개개인이 분단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어쩔 수 없다'는 응답은 질문을 무력화한다. 질문의 유용함이 사라진 자리에서 안보는 더 강력한 '성역'이 될 수 있다. 성역이란 검증받지 않아도 되는 영역, 예산과 권한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따져 물을 수 없는 영역이다. 국가안보와 관련된 의사결정과정에 시민들은 배제되지만 기업들은 초대된다. 기업과 정부는 특히 무기산업에 있어 일심동체가 된다. 위임 받은 권력의 의사결정이 시민들의 감시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분단 상황에서 다수의 사회 구성원은 이러한 군대와 기업, 정부의 결탁을 '어쩔 수 없다'며 받아들이는 동안 민주주의는 폐쇄된 문 안에서 썩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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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모모 대표, 평화와 교육에 관련한 활동을 하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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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돌아다니는 '살인병기'... 미 언론 질문에 침묵한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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