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찬 선생 후손, 전 재산 독립운동에 바친 할아버지처럼 사비들여 기념비

상주시 용화정공원서 묵재 손기찬 선생 독립운동기념비 제막식 열려... 충북 청주에 거주하는 후손들이 국가 지원없이 2000여만원 사비 모아 건립

등록 2026.08.10 17:40수정 2026.08.10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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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7년 친일부호 장승원을 처단하는 대한광복단 의열투쟁에 참여한 묵재 손기찬(孫基瓚. 1886~1979, 건국훈장 애족장) 선생의 투쟁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졌다.(사진 김남균 기자)
1917년 친일부호 장승원을 처단하는 대한광복단 의열투쟁에 참여한 묵재 손기찬(孫基瓚. 1886~1979, 건국훈장 애족장) 선생의 투쟁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졌다.(사진 김남균 기자) 충북인뉴스
 8일 묵재 손기찬선생유족회(대표 손한준, 사진 맨 오른쪽)는 경북 상주시 화북면 용화정 공원에서 손기찬 선생 독립운동기념비 제막식을 진행했다. (사진 김남균 기자)
8일 묵재 손기찬선생유족회(대표 손한준, 사진 맨 오른쪽)는 경북 상주시 화북면 용화정 공원에서 손기찬 선생 독립운동기념비 제막식을 진행했다. (사진 김남균 기자) 충북인뉴스

1917년 친일부호 장승원을 처단하는 대한광복단 의열투쟁에 참여한 묵재 손기찬(孫基瓚. 1886~1979, 건국훈장 애족장) 선생의 투쟁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8일 묵재 손기찬선생유족회(대표 손한준)는 경북 상주시 화북면 용화정 공원에서 손기찬 선생 독립운동기념비 제막식을 진행했다.

제막식에는 류윤걸 광복회충북지부장과 대구·경북광복회관계자, 손기찬 선생의 후손 등 150여 명이 참여했다.

손기찬 선생은 1917년 11월 10일 '대한광복단'이 친일 부호 장승원을 처단한 이른바 '장승원암살사건(張承遠暗殺事件)'에 참여한 인물이다.

장승원은 이승만 정부의 초대 외무부장관과 제3대 국무총리를 지낸 장택상(1893~1969)의 아버지다.

손기찬 선생은 당시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朴尙鎭)이 채기중(蔡基中) ·강순필(姜順弼)·유창순(庾昌淳) 등을 시켜 장승원 암살을 결행할 때 사용한 권총 2자루의 운반을 맡았다.

앞서 광복회는 무장독립투쟁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포고문을 당시 조선의 자산가에 전달했다.


우리 2천만 민족은 노예로 변하였다. 섬나라 오랑캐의 악정, 폭행이 날로 더하고 달로 늘어나 이를 생각하면 피눈물이 넘쳐나며 조국을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중략). 각 자산가는 미리 저축하여 본회의 요구에 응해 출금해야 한다. (중략). 본회 회원은 각지에 산재하여 각인의 행동을 감시하므로 본회의 명령을 지켜 지정배당금을 준비해 두고 본회 불시의 청구를 기다려야 한다.(출처 : 대한광복회 포고문)

거사 후에는 장승원의 자택에 다음과 같은 경고 문구를 붙여 놨다.

외치는 바는 광복이다. 하늘과 사람이 도리에 일치된다. 너의 큰 죄를 꾸짓고 우리 동포에게 경고한다. 꾸짓고 경고하는 자. 광복회원

손기찬 선생이 활동했던 '대한광복회'는 친일부호 처단, 무기구입, 독립군 양성을 주요목표로 삼았다. 친일부호로부터 마련한 돈으로 만주에 있던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기 위한 군자금으로 사용했다.


산오락회‧서예가김성장 등 충북지역 인사 참여해

 충북에서 활동하는 국내 유일의 독립운동가요 전문밴드 산오락회가 ‘우수리스크 편지’, ‘신흥무관학교 교가’를 부르며 고인의 투쟁을 기렸다.(사진 : 김남균 기자)
충북에서 활동하는 국내 유일의 독립운동가요 전문밴드 산오락회가 ‘우수리스크 편지’, ‘신흥무관학교 교가’를 부르며 고인의 투쟁을 기렸다.(사진 : 김남균 기자) 충북인뉴스


손기찬 선생의 고향은 경상북도 칠곡이다. 이날 행사에는 류윤걸 광복회충북지부장 등 유독 충북지역 인사들이 많이 참여했다.

기념비에 새겨진 글은 충북을 대표하는 서예가 중 한 분인 김성장 선생이 썼다.

충북에서 활동하는 국내 유일의 독립운동가요 전문밴드 산오락회가 참여해 '우수리스크 편지', '신흥무관학교 교가'를 부르며 고인의 투쟁을 기렸다.

민주노총공공운수노조충북본부 윤남용 본부장과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박종순 사무처장 등 지역의 시민사회노동단체 인사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충북지역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게 된 배경에는 손기찬 선생의 후손이 청주에서 삶의 터전을 잡고 사는 것과 관련이 있다.

유족회 대표를 맡고 있는 손한준 회장은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소재 토속음식점 오소담을 운영하고 있다. 손기찬 선생의 후손 청원생명쌀영농조합법인 손한수 상무, 이날 사회를 본 후손 손한두 씨 모두 청주를 기반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할아버지는 물려받은 재산을 독립운동에 다 쏟아부었습니다."

 손기찬선생 유족회는 지난 해 3월 청주상당산성에서 열린 ‘국가귀속 상당산성껴안기 대회’에 500명 분의 음식을 마련해 제공했다.
손기찬선생 유족회는 지난 해 3월 청주상당산성에서 열린 ‘국가귀속 상당산성껴안기 대회’에 500명 분의 음식을 마련해 제공했다. 충북인뉴스



 손기찬 선생의 손자인 손한수(오른쪽) 청원생명쌀영농조합 법인 상무가 묵념을 하고 있다.
손기찬 선생의 손자인 손한수(오른쪽) 청원생명쌀영농조합 법인 상무가 묵념을 하고 있다. 충북인뉴스


이날 행사에 소요된 비용은 대략 2000여만 원. 기념비 제작과 설치에 900여만 원이 소요됐고 행사비용과 참가자 식사비용 등 2000여만 원이 소요됐다.

행사에 들어간 비용은 국가나 지방정부의 도움없이 후손들이 십시일반으로 갹출했다.

유족회 손한준 대표는 비용을 후손들이 마련한 것에 대해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에 전 재산을 바쳤던 것처럼, 우리 후손들도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가는 마음에서 한 것"이라고 밝혔다.

손 대표는 "할아버지는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다. 일제 치하에서 고문을 당해 무릎을 크게 다치셨다. 제 기억속에 있는 할아버지는 거동을 하지 못한 채 병석에 누워 계신 모습이 많았다. 걸어 다니신 걸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저와 제 동생이 번갈아 가며 할아버지 대소변을 받아냈다"라고 전했다.

손 씨에 따르면, 손기찬 선생은 독립운동 군자금으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선대로부터 상당한 재산을 물려받 전 재산을 소진했다.

그는 "증조부가 경북 칠곡군 왜관읍에 큰 부자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상당한 재산을 물려 받았지만, 독립운동을 하면서 전답을 팔아 자금을 조달했다"라며 "만주까지 가서 권총과 같은 무기를 구입했다"라고 전했다.

손 대표는 "가산을 다 소진했기 때문에, 상주시 화북면 지역에서의 생활은 매우 궁핍했다. 집이라고는 초라한 농막 한 채였다"라며 "큰아버지와 아버지가 배고픔을 호소하니, 할아버지가 남의 밭 콩을 몰래 훑어다가 구워주셨다고 한다"라고 회상했다.

후손 손한수 청원생명쌀영농조합법인 상무도 "할아버지의 나라사랑 정신은 대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라며 "그런 할아버지의 정신처럼, 우리 후손들도 할아버지의 마음을 기리기 위해 마음을 모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손기찬선생 유족회는 지난 해 3월 청주상당산성에서 열린 '국가귀속 상당산성껴안기 대회'에 500명 분의 음식을 마련해 제공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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