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가 아니라 태도로 출판한다"

[인터뷰] 옥수빈 이음서가 대표

등록 2026.08.11 14:54수정 2026.08.1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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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보다 작은 직물 한 장. 이음서가는 홈페이지에서 도서를 산 독자에게 대표가 직접 짠 코스터를 함께 보낸다. 실 한 줄을 빼먹으면 짜놓은 부분을 도로 풀어야 하는 작업이다. 옥수빈 대표는 지난달 개인 블로그에 이렇게 적었다. "한 줄 한 줄 경사와 위사를 교차시키다 보면 문득, 지금 나는 어떤 작가와 독자를 잇고 있는 걸까 생각한다."

이음서가는 지난해 3월 서울 중구에서 출발한 출판사다. 시작을 앞두고 옥수빈 대표가 가장 오래 붙든 질문은 '어떤 출판사가 되어야 하는가'였다. 완성된 원고를 받아 빠르게 찍어내고 정해진 유통망에 태우는 방식은 일찌감치 접었다. 그는 "우리는 조금 더 느리고, 조금 더 손이 많이 가고, 더 자주 소통하는 길을 택했다"고 말한다. 비효율을 감수한 근거는 분명했다. 느슨한 시간과 열린 틈에서야 비로소 찾고 싶은 목소리가 들려올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옥수빈 대표는 2026 제주북페어 현장에서 직접 독자들을 응대하며 도서를 판매 중이다. 2026 제주북페어 현장의 한 장면
▲옥수빈 대표는 2026 제주북페어 현장에서 직접 독자들을 응대하며 도서를 판매 중이다. 2026 제주북페어 현장의 한 장면 이음서가

그래서 이음서가는 "원고가 아닌 목소리를 받는다"고 말한다. 투고 페이지는 구상 단계의 작업까지 받아들인다. 홈페이지에 적힌 편집 원칙은 한층 노골적이다. "이음서가의 편집은 다듬는 일보다 남기는 일에 가깝습니다." 지나치게 매끄러운 문장을 만들기보다, 작가가 실제로 서 있던 자리와 감정을 남긴다는 뜻이다.

1년 반이 채 안 되는 사이에 쌓인 책은 열한 종. 흔들림과 회복의 시간을 담는 에세이 시리즈 '이룸', 설명되지 않아도 괜찮은 시를 위한 시인선 '이음선', 작업의 흔적까지 담는 아트북 '이음첩'이 축을 이룬다. 이음선에서 해설을 덜어낸 이유도 밝혀두었다. "독자가 시 앞에서 정답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감각으로 머무는 독자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음서가의 실험은 책 바깥에서 더 선명하다. '프리시타일'은 스레드에 주제를 던지고 댓글로 모인 시를 골라 한 권으로 엮는다. 1권에 쉰 명의 이름이 실렸고 최근 2권이 나왔다. 아직 자기 이름의 시집을 갖지 못한 이들을 위한 '심플시리즈'는 각 10편의 자리를 내준다. 출판이라기보다, 창작이 일상에 닿는 구조를 설계하는 일에 가깝다.

이 길이 쉬웠던 적은 없다. 옥수빈 대표는 올해 3월 "누구도 하라고 하지 않은 일을 하려다 겪는 위기들"이라고 적었다. 느린 편집과 소량 출간, 손으로 짠 코스터는 모두 비용이다. 지난해 말에는 인공지능이 문장을 대신 쓰는 시대에 "왜 이 책을 내야 하는가"를 되물었다. 사진이 등장한 뒤에도 그림이 사라지지 않았듯, 책은 "시간을 건너는 방식"으로 남으리라는 것이 잠정적인 답이었다.

창업 직후 옥수빈 대표는 이렇게 적었다. "남의 꿈을 모으고, 그 꿈이 자라는 걸 지켜보는 게 제 꿈이라니." 누군가의 꿈을 제 꿈으로 여기는 사람이 만든 출판사가, 점점 차가워지는 시대에 한 곳쯤은 있어도 좋을 것이다. 오늘도 그는 실 한 줄을 빼먹고 짜놓은 것을 도로 푼다. 그렇게 다시 짜인 직물 한 장이 누군가의 책상에 도착한다. 우리가 아직 봄을 기다리고 있다면, 그건 이런 사람들이 남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출판사 #1인출판사 #이음서가 #독립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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