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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들은 안 하는 여름 신발 고민이 있습니다

    시력을 잃고 적응하는 삶은 가능성의 이름이 늘어가는 일

    등록 2026.08.12 14:40수정 2026.08.1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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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에서 선택받지 못 한 신발
    ▲ 여행에서 선택받지 못 한 신발 이희진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친구들과 여행을 가기로 했다. 여름 피서지로 유명한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저녁을 보낸다는 말에 출발 전부터 설렜다. 여행 당일 신고 나갈 신발을 고르느라 신발장 앞에 한참을 서 있는데 남편이 말했다.

    "해수욕장 모래사장을 걸어야 하면 샌들이 낫지 않을까?"


    가벼운 여름 신발이 가지런히 놓인 칸에서 손을 더듬었다. 예쁜 샌들 하나가 손에 잡혔다. 훤하게 트여 있는 앞코 부분에 손이 닿자 잠시 멈칫했다. 몇 해 전 여름, 샌들을 신고 다니다가 발가락이 턱에 부딪혀 다쳤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옆에 있는 슬리퍼에 손이 갔다. 발가락 사이에 걸리는 가느다란 끈을 만지작거리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결국 평소 자주 신던 신발을 골랐다. 발등을 단단하게 잡아 주고 발가락을 온전히 감싸는 신발. 밑창이 너무 두껍지 않아 발바닥으로 바닥의 감촉을 느낄 수 있는 신발이었다.

    시각 장애인에게 신발은 눈의 역할

     앞코가 닳은 신발등
    ▲ 앞코가 닳은 신발등 이희진

    앞이 보이지 않게 된 이후, 내 삶에는 크고 작은 변화들이 있었다. 많은 변화들 중에서 외출할 때 신고 나갈 신발을 고르는 일은 사소해 보이지만 굉장히 중요한 일이 되었다. 그전에는 굽이 높아도 앞이 훤하게 트여 있어도 상관없었다. 디자인이 예쁘거나 색상이 마음에 들면 조금 불편해도 쉽게 고르고 아무렇지 않게 신고 다녔다.

    신발의 역할이 달라진 이후로는 내 선택의 기준도 달라졌다. 취향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여전히 디자인이 예쁘고 굽이 날렵하게 높은 신발 앞에서는 마음이 먼저 갔다. 여름이면 발가락이 시원하게 드러나는 샌들을 신고 싶고, 옷을 입고 나면 어떤 신발이 잘 어울리는지도 여전히 궁금하다.


    다만 마음보다 먼저 살펴야 할 것들이 생긴 것이다. 웬만해서는 낮은 굽을 고르게 되었다. 시각장애인이 안내 보행을 받을 때는 흰 지팡이 사용이 어렵기 때문에 밑창 아래로 바닥의 감각이 잘 느껴지는 신발을 고른다. 신발 앞코가 막혀 있는지, 발을 안전하게 감싸는지, 잘 벗겨지지는 않는지를 살핀다. 신발은 내게 패션의 완성이면서 길을 읽는 도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기준으로 고른 신발을 신고 나는 매일 출근한다. 출근하는 아침이면 현관 앞에 내 신발이 가지런히 놓인다. 남편은 늘 내가 신기 편한 방향으로 신발을 돌려놓고 출근한다. 바쁜 아침, 신발을 찾느라 허둥대지 말라는 마음이 거기에 담긴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발을 쑥 넣고 집을 나선다. 아침이면 가장 먼저 만나는 다정함이다.


    출근길 계단 앞에서는 신발 앞코가 가장 먼저 움직인다.

    툭.

    계단의 시작을 확인한다. 한 발을 올린다.

    다시 툭.

    마지막 계단인지 아직 한 칸이 더 남았는지 신발이 먼저 묻는다. 평평한 바닥이 발아래 닿으면 그제야 다음 걸음을 내딛는다. 누군가는 눈으로 확인하는 일을 나는 발끝의 감각으로 읽으며 걷는다. 보이지 않게 된 뒤부터 생긴 작은 습관이다. 겁이 많은 나는 사실 여전히 독립된 보행이 두렵다. 중도 실명 후 혼자 흰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일이 나에게는 큰 도전이기도 했다.

      점자 블럭을 밟으며 걷는 나
    ▲ 점자 블럭을 밟으며 걷는 나 이희진

    보행자 전용 길 위에서는 점자블록을 찾는다. 신발 밑창 아래로 오돌토돌한 돌기가 느껴지면 마음이 또 그렇게 놓인다. 발밑으로 느껴지는 감촉을 따라 걷는다. 앞에 턱이 있는지, 기둥은 없는지, 피해야 할 화분이나 입간판이 놓여 있지는 않은지 시시각각 변하는 길 위에서는 흰 지팡이와 내 신발 앞코가 나보다 한 걸음 먼저 세상을 만난다.

    안전을 확인하는 일은 어느새 몸에 밴 걸음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내 걸음은 예전보다 느려졌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세상 속에서 제각각의 소리가 뒤엉킨 거리를 걷는 일 앞에서는 꼭 그랬다. 모르는 길 앞에서는 자주 멈췄고, 가보지 않은 세계 앞에서는 마음부터 느려지곤 했다.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한 삶

    살다 보면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걸을 수 없는 날들이 온다. 돌봄의 자리에서 아이를 업고 걷기도 하고, 나이가 들어 몸이 변하기도 한다. 직장 속에서 맡은 역할이 달라지거나 주어진 환경이 바뀌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선택의 기준이 변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하며 감당해야 할 생의 속도 앞에 발을 맞추어야 할 때가 있다. 언젠가 지인이 말했다.

    "생각보다 재활이 빨랐던 건 아닌가요? 장애 수용성이 높으신 것 같아요."

    갑작스러운 불가항력 앞에 처음부터 의연하고 끝내 침착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수많은 시행착오와 끝 모를 터널을 지나며 내 마음속에 남겨진 한 문장이 있었다. '할 수 없는 것보다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

    새로운 삶의 방식을 요구하는 생의 초대 앞에서 이미 그 길 위에 선 이들의 등을 보며 하나씩 알아가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을 뿐이다. 그저 미숙하고 미미한 걸음을 내디딜 뿐이다. 이처럼 달라지는 삶에 적응하며 산다는 것은 포기의 목록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의 이름이 늘어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달라진 삶이 선택의 기준은 바꾸어 놓았지만, 만나고 싶은 사람들, 가고 싶은 곳까지 바꾸어 놓은 것은 아니었다. 며칠 전 편안하고 안전한 신발을 신고 친구들과 광안리 해변을 걸었다. 신발 안으로 들어온 모래가 쉽게 빠지지는 않았지만 잠시 벗어 훌훌 털어 버리면 그만이었다.

    "여기 또 까졌네."

    외출 후 벗어둔 신발을 살피던 남편이 말했다. 내 신발은 유독 앞코가 먼저 지저분해졌고 가장 빨리 낡아졌다. 손으로 신발 앞코를 더듬어 보았다. 내가 걸어온 시간들이 거친 촉감으로 쌓여 있었다. 경쾌하게 세상을 만난 자국이자, 담담하게 걸어간 훈장 같은 흔적이다.

    오늘도 내 신발 앞코는 나보다 먼저 세상을 두드린다.

    툭.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sns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신발 #시각장애인 #달라진삶 #가능성의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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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각장애인 주부이자 선생님, 글과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 어둠 속에서도 가장 찬란한 빛을 이야기하는 아이러니한 생의 주인공. 다정한 이웃들과 동행하는 반딧불 라이프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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