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마을기업 분포 2026년 7월 기준 행정안전부 전국마을기업표준데이터에 등재된 마을기업은 1862개다.
권상동
2026년 7월 기준 행정안전부 전국마을기업표준데이터에 등재된 마을기업은 1862개다. 전남(259)·경기(199)·경북(138)·강원(136) 순으로 많고, 광주(126)·대전(119)처럼 마을공동체 지원 행정이 촘촘한 광역시가 두드러진다. 인구가 많은 서울(83)·인천(56)은 오히려 적다. 마을기업은 인구밀도가 아니라 마을이라는 단위가 살아 있는 곳에서 자란다는 뜻이다.
법인 형태는 협동조합계가 691개(37%)로 가장 많다. "마을기업은 주식회사나 영농조합이고 협동조합은 다른 제도"라는 통념과 달리, 협동조합이 마을기업의 가장 흔한 옷이다. 사업 영역은 농수산 가공·유통(702건)이 가장 두텁고 체험·관광·숙박(490건)이 뒤를 잇는다. 인증 시기를 세 구간으로 나누면 가공·유통 비중은 34%→27~30%로 낮아지고, 돌봄·복지·교육은 8%→12~15%로 뚜렷이 늘었다 - 마을기업의 무게중심이 매출 너머 사회서비스로 넓어지고 있다는 신호다. 신규 인증은 2013년 첫 정점(196건) 이후 주춤하다 2021년부터 다시 늘어 2024년 217건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지금이 왜 '법 시행 원년'인지, 숫자가 답한다.
마을기업은 왜 다른가
마을기업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김장을 함께 담그던 손, 아이를 돌아가며 봐주던 품앗이, 축제 현수막을 함께 그리던 저녁, 그 시간이 쌓인 자리에서 씨앗이 튼다. 마을공동체 활동이 먼저 있었고, 그 안의 관계와 신뢰가 사업이라는 그릇에 담기며 마을기업이 된다.
마을기업이 일반 창업과 다른 이유는 세 가지다.
① 아이템이 시장 조사가 아니라 관계에서 나온다. 마을 안에 이미 있던 자원과 관계가 사업의 출발점이다.
② 주체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다. 총회에서 이익 배분을 정하고 사업 방향을 함께 결정하는 일 하나하나가 작은 민주주의의 실천이다.
③ 성과가 매출로만 남지 않는다. 경제적 성과와 공동체적 성과가 함께 쌓인다.
마을기업은 사업체이기 전에 마을만들기의 한 장면이다. 마을만들기가 자치·경제·문화를 묶어 주민 스스로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라면, 마을기업은 그 가운데 경제라는 축을 세우는 역할을 맡는다. 마을기업은 마을만들기의 경제적 얼굴이다.
협력생태계: 따로 자란 두 나무, 뿌리에서 만나다
마을공동체는 공동체팀의 일, 마을기업은 사회적경제팀의 일로 오래 나뉘어 있었다. 씨앗을 알아보는 눈은 마을만들기 지원조직에, 경영을 도울 손은 사회적경제 지원조직에 따로 있었다. 2026년은 '마을기업육성법'과 '마을공동체 활성화 기본법' 시행령이 처음 한 시대에 공존하는 해다. 따로 자란 두 나무가 뿌리에서 만날 기회다.
목포 목원동이 그 사례다. 2014년 도시재생 선도사업이 '커뮤니티센터 조성 및 마을기업 추진'이라는 항목으로 만인계 웰컴센터를 짓고, 1층에 (주)만인계마을기업의 만인살롱을 열었다. 저렴한 가정식 뷔페를 운영하며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엔 65세 이상 어르신 50명에게 무료 식사를 낸다. 도시재생이 만든 공간과 그 안의 마을기업이 서로를 살리는 순환이다.
발굴·예비창업·창업·성장·안정화·확장의 생애주기 여섯 단계 중, 초기 두 단계는 마을 안에 오래 머문 기초 마을공동체지원센터가, 성장 이후는 마을기업지원기관·광역기관이 맡아야 한다. 지금은 '지정 전후'라는 이분 구조뿐이다. 두 법의 시행령이 연계 조항을 갖추어 씨앗이 자연스럽게 마을기업으로 옮겨가는 통로를 여는 일이 우리 앞의 과제다.
마을순환경제: 마을 안에서 도는 살림
마을기업의 힘은 수익이 마을 안에서 다시 돌 때 생긴다. 경북 의성 농뜨락 농업회사법인은 못난이 농산물을 지역 농가 60여 곳에서 거두어 가공·판매해, 대기업 납품보다 많은 몫을 농가에 돌려준다(2018년 청년마을기업, 2021년 최우수마을기업). 전북 임실 섬진강다슬기마을은 강의 다슬기로 장애인 포함 23명의 일자리를 만들었고, 경기 양평 증안리약초마을은 계약재배로 소멸위기를 넘고 있다. 경남 합천 하남양떡메 영농조합법인은 양파·떡·메주를 명품화하고 체험 프로그램을 더해 가공과 체험이라는 두 겹의 수익 구조를 갖췄다. 공통점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갈 수 없는 지역자원을 뿌리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익이 결국 외지의 은행과 프랜차이즈로 흘러나간다면 순환은 마을 문턱을 넘지 못한다. 마을기업 순이익, 공공조달·보조사업 수수료, 지역화폐 수익을 한데 모아 지역 안에 묶어 두는 그릇, 마을기금과 지역재단이 필요하다. 마을 단위에서는 마을기업들이 공동 출자하는 마을기금이 소액 운영자금과 재해대응 역할을, 시·군 단위에서는 지역재단이 임팩트 투자와 자산화의 종잣돈을 대는 구조다.
지금은 마을기업 한 곳의 힘만으로 만들기 어렵고, 이미 조성된 곳도 드물다. 공공조달 우선구매, 마을펀드, 공동체 배당 같은 개별 장치를 이 그릇 안에 모아낼 때 마을순환경제가 완성된다.
돈이 마을 안에서 도는 것, 그것이 마을순환경제다.
공동체 자산화: 우리가 함께 소유하는 마을
보조금으로 한 해를 버티는 마을기업이 아니라, 함께 가진 자산의 수익으로 스스로를 유지하며 마을에 되돌려주는 마을기업, 이것이 다음 단계다.
경주 황촌마을은 옛 경주역 뒤편 빈집들을 매입해 숙박시설로 되살렸다(2021년 시작, 3년 만에 12곳, 가동률 90%). 도시 민박이 원래 외국인 전용이던 관광진흥법령이, 도시재생 목적의 협동조합·마을기업이 운영하면 내국인도 가능하도록 바뀐 덕분이다. 2025년 '행복황촌협동조합'이 정식 마을기업으로 인증받아 숙박·반찬판매·체험사업까지 넓혔다. 빈집이라는 골칫거리가 제도와 실천이 함께 완성한 마을자산이 된 사례다.
더 오래된 원형은 제주 가시리의 공동목장이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마을 공동 자원이 축산 쇠퇴로 팔려나갈 위기에 처했으나, 주민들이 이를 되살려 마을만들기의 대표 사례가 되었다. 제주 마을공동목장은 일제강점기 143곳에서 지금 77곳으로 줄었지만, 제주도는 '공동체자산신탁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에너지 영역의 씨앗도 있다. 여주 구양리는 마을 공유지에 1MW 태양광을 세워 그 수익으로 무료급식과 행복버스를 운영하고, 정부는 이를 본떠 '햇빛소득마을' 500곳을 국정과제로 내걸었다. 다만 구양리는 아직 마을기업 인증 밖에 있다. 정선 고한 마을호텔18번가(2021~2024년 흑자, 국토부·농림부 장관상)도 마찬가지다. 황촌마을처럼 협동조합이 마을기업이 되는 길이 이미 열려 있는데도, 자산화의 실력을 증명한 이 협동조합들은 아직 제도의 정식 초대를 받지 못했다.
해외는 이 초대장을 법으로 써두었다. 영국은 2011년 '지역사회 입찰권'의 낮은 실효성을 보완해 더 강한 '우선매수권' 법제화를 의회에서 논의 중이고, 스코틀랜드는 2015년 지역사회권한강화법으로 공공자산 이전 요청권을 이미 법에 새겼다. 우리가 지자체 개별 판단에 맡겨둔 일을, 이들은 국가 제도로 못 박아 두었다. 자산화의 실력은 이미 증명되었다. 남은 것은 제도의 초대뿐이다.
다르게 만들고, 다르게 재다
공동체성·공공성·지역성·기업성이라는 네 기준은 마을기업의 정체성을 잘 담지만, 갓 씨앗을 틔운 곳과 10년 넘은 곳에 같은 잣대를 대는 것은 온당치 않다. 초기엔 관계망과 자원 활용 계획에, 성숙기엔 매출과 자립 기반에 무게를 다르게 두어야 한다.
매출과 고용이라는 두 숫자만으로 성과를 재는 것도 다시 봐야 한다. 섬진강다슬기마을처럼 일자리를 만드는 곳이 있는가 하면, 포천 교동장독대마을처럼 곶감과 농촌체험으로 매출은 작아도 도시민에게 마을의 시간을 나누어 주는 곳도 있다(2024년 인증). 성장이 필요한 곳엔 엑셀러레이팅을, 유지 자체가 가치인 곳엔 유지 지원을 - 두 유형이 나란히 존중받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함께 설계해야 할 과제
두 법이 처음 한 시대에 서는 지금, 다섯 가지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① 두 법의 연계
마을기업법·마을공동체 활성화 기본법 시행령에 연계 조항을 두어, 마을공동체의 씨앗이 마을기업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만드는 일이다.
② 생애주기별 역할 분담
발굴은 기초 마을공동체지원센터가, 성장 이후는 마을기업지원기관·광역기관이 맡도록 시행령에 명시하는 일이다.
③ 자산화 모델의 초대
황촌마을처럼 협동조합이 마을기업이 되는 길을 살려, 구양리·정선 18번가 같은 자산화 모델을 유휴 공공자산 장기위탁 특례로 끌어안는 일이다. 강원도는 1999~2009년 230개 마을에 마을당 5억 원을 지원한 새농어촌건설운동에서 이미 사업비의 상당 부분(마을회관·공용부지 매입, 공동기금)을 공동자산 형성에 썼고, 2015년엔 '마을기업형' 트랙으로 두 흐름을 묶으려 한 적도 있다.
④ 통계·연구 인프라의 재건
1,862개 마을기업의 지도를 그리는 데도 적잖은 품이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어떤 마을공동체 활동이 어떤 마을기업으로 이어졌는지 추적하는 종단 연구와 통계 인프라가 얼마나 빈약한지를 보여준다.
⑤ 자산기반 생태계의 다양화
지역자원 활용형·녹색에너지형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공유목장·빈집·재생에너지 등 지역마다 다른 자산에 맞는 마을기업 모델이 자라날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다.
마을은 사람이 만든다
법이 마을을 만들지는 않는다. 김장을 담그던 손, 빈집의 먼지를 닦던 손, 태양광 패널을 세우던 손이 마을을 만든다. 법과 제도가 할 일은 그 손을 돕는 것, 적어도 방해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거대 담론과 대기업 위주 경제에 온통 시선을 빼앗기고 있다. 반도체와 수출, 환율 같은 말이 뉴스의 첫 줄을 채우는 동안 마을은 뒷줄로 밀려나 있다. 그러나 지역소멸과 복합위기의 시대에 위기가 가장 먼저 닿는 곳도, 가장 먼저 대안을 만들어내는 곳도 결국 마을이다. 빈집을 마을호텔로, 공동목장을 다시 생명으로, 태양광 수익을 마을식당으로 바꾸는 이야기들이 그 증거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거대 담론이 아니라 마을에 대한 관심을 다시 한 번 갖는 일이다.
마을기업육성법 시행 원년에 우리는 마을기업이 무엇으로 다른지 다시 확인했다. 마을 공동체가 주체가 되고, 지역 자산을 순환시키며, 경제적 성과와 공동체 성과가 나뉘지 않는다는 것. 그 뿌리에는 마을만들기가 있다. 주민이 자치·경제·문화를 결합하고, 사람과 자연·도시와 농촌의 공생을 지향하며, 민주주의를 함께 배우고 실천하는 지속적 과정. 이 뿌리를 지키는 한 마을기업은 함께 소유하고 운영하며 나누는 살림을 계속 만들어갈 것이다.
마을이 마을만들기의 터전이고, 마을기업은 그 위에서 자란 열매다. 마을기업 하나가 살아나면 마을 하나가 살아난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은 분명하다. 두 법을 뿌리 깊은 제도로 다듬고 마을기업 곁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다. 행정은 제도를 다듬고, 중간지원조직은 손을 잇고, 주민은 참여하며, 우리 모두는 관심을 거두지 않아야 한다. 그 일을 지금, 함께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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