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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찜기에서 푹 쪄낸 옥수수와 어울리는 마실 것

    진하게 우린 보이차 숙차를 급랭으로 마시기

    등록 2026.08.17 17:34수정 2026.08.17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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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쁜 일상 속, 차 한 잔으로 일상에 쉼표를 찍습니다. 차 한 잔을 마시며 24절기와 동양화를 오가며 흐르는 시간의 아름다움을 기록합니다.[기자말]
     구수한 느낌의 보이숙차에는 탱글탱글한 옥수수가 여름 티타임에 제격이다!
    구수한 느낌의 보이숙차에는 탱글탱글한 옥수수가 여름 티타임에 제격이다! 노시은

    입추가 지나고 하늘이 좀 높아진 것 같기도 하지만 햇살이 여전히 따가운 늦여름의 한낮입니다. 맹렬하게 끓어오르던 무더위도 이제 서서히 마지막 고비를 넘네요. 다시 활짝 연 창문과 선풍기만으로 버틸 만해졌습니다.

    그날은 유독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오후였습니다. 커다란 수박 한 통을 쩍 갈라 쟁반에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온 가족이 둘러앉았죠. 달콤하고 시원한 수박 물이 턱을 타고 흐르는 것도 모른 채 수박을 베어 무는 조카들을 보며, 엄마는 불쑥 당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할머니 어릴 적에는 말이야, 동네 언니 오빠들이랑 밤에 몰래 수박 서리를 하러 갔었어."

    '수박 서리'라는 낯선 단어에 조카들의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어머니의 무용담은 꽤나 흥미진진했습니다.

    수박 옛 그림 두 점

    숨죽여 수박밭에 기어들어가 가장 크고 잘 익어 보이는 놈으로 하나를 골라 품에 안았는데, 그만 밭주인 할아버지의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는 겁니다. 혼비백산하여 컴컴한 논둑길을 내달리다 그만 발이 꼬인 오빠가 넘어졌고, 품에 안고 있던 귀한 수박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버렸죠.

    결국 수박은 한 입도 못 먹고, 언니 오빠들보다 느렸던 엄마만 주인 할아버지에게 붙잡혀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혼자만 뒤집어 쓴 건 둘째 치고 산산조각 난 수박의 붉은 속살이 아까워 펑펑 울었다는 대목에서 온 가족이 박장대소를 터뜨렸습니다.


    시원한 수박의 단맛과 까르르 여름방학을 맞은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엄마의 정겨운 옛날이야기가 어우러져 가장 완벽한 여름날의 풍경을 만들어냈죠. 그날의 달콤했던 수박 파티를 떠올리며 창밖의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을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조선시대 화가들이 남긴 수박 그림 두 점을 나란히 끌어다 놓았습니다.

     신사임당 초충도 중 <수박과 들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신사임당 초충도 중 <수박과 들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공공누리

    먼저 신사임당의 초충도(草蟲圖) 중 <수박과 들쥐>입니다. 섬세하고 정갈한 붓 터치가 돋보이는 이 그림 속에는 커다란 수박 한 덩이가 땅에 둥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속이 훤히 드러난 붉은 수박을 두 마리의 들쥐가 다소곳하게 파먹고 있죠.


    쥐가 파먹고 남긴 자국 사이로 까만 수박씨가 점점이 박혀 있고, 그 곁으로는 나비가 날아들고 패랭이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습니다. 자연의 미세한 움직임을 따스하고 다정한 시선으로 관찰한 신사임당 특유의 우아함이 돋보입니다.

     겸재 정선 <서과투서(西瓜偸鼠수박과 도둑쥐)>,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겸재 정선 <서과투서(西瓜偸鼠수박과 도둑쥐)>,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간송미술문화재단

    다음으로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의 <서과투서(西瓜偸鼠수박과 도둑쥐)>를 보면 사뭇 분위기가 다릅니다. 이 그림 속의 쥐는 신사임당의 쥐들처럼 얌전하지 않습니다. 자기 몸집만 한 수박을 기세 좋게 갉아먹고 있는 한 마리의 쥐는, 밭주인이 보든 말든 당당한 '도둑쥐'의 모습입니다.

    거침없고 역동적인 붓 터치, 익살스러움이 뚝뚝 묻어나는 쥐의 눈빛을 보고 있자니 며칠 전 수박 서리를 하다 깨진 수박 아까워 펑펑 울었다던 엄마의 어린 시절이 겹쳐 보여 절로 실소가 터져 나옵니다.

    그림 속 쥐들의 신나는 수박 파티를 구경했으니, 이제 저만의 티파티를 준비할 차례입니다. 무슨 차를 마시며 뭘 곁들일까 고민하다가 소박하고 구수하게 가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오늘 다식으로는 찜기에서 푹 쪄낸 노란 옥수수 한 토막을 곁들였습니다. 알알이 박힌 옥수수 알갱이는 씹을수록 은은한 단맛과 함께 깊은 구수함을 내어주어, 늦여름에 가장 잘 어울리는 간식이기도 합니다.

    무더위를 다스려줄 묵직한 '보이차 숙차'

     보이차를 시원하게 마셔보자!
    보이차를 시원하게 마셔보자! 노시은

    옥수수 곁에는 무더위를 다스려줄 묵직한 '보이차 숙차(熟茶)'를 준비했습니다. 한여름에 웬 뜨거운 숙차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름내 찬 음료와 에어컨 바람에 시달려 속이 냉해졌을 때, 위장을 편안하게 다독여주는 데는 푹 묵힌 숙차만 한 것이 없죠. 늦더위를 다스리는 이열치열의 양생법입니다.

    하지만 무조건 뜨거운 차를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찻잎을 시원하게 즐기는 두 가지 훌륭한 방법이 있거든요. 이는 보이차뿐만 아니라, 집에 있는 녹차나 홍차, 우롱차 등 어떤 찻잎이나 티백에도 통용되는 아주 유용한 여름철 차 마시기 비법이니 주목해주세요.

    첫 번째는 '냉침(冷浸)'입니다.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생수 1리터(1L) 기준으로 찻잎 5~6g 정도를 찬물에 넣고, 냉장고에서 8시간에서 12시간가량(하룻밤 동안) 천천히 우려내는 방식이죠. 만약 집에 있는 티백을 활용하신다면 물 1리터에 티백 2~3개 정도를 툭 던져 넣으시면 충분합니다.

    이렇게 찬물에서 오랜 시간 우리면 뜨거운 물에서 우러나는 떫고 쓴맛은 가라앉고, 찻잎이 가진 순수한 맑음과 은은한 단맛만 기분 좋게 남습니다. 마치 잘 숙성된 와인처럼 투명한 수색을 감상하며 물처럼 편안하게 마시기 좋은 방법입니다.

     아주 진하게 우려낸 차를 차가운 얼음에 확 부어 시원하게 마시는 방법을 '급랭'이라고 부른다.
    아주 진하게 우려낸 차를 차가운 얼음에 확 부어 시원하게 마시는 방법을 '급랭'이라고 부른다. 노시은

    두 번째는 '급랭(急冷)'입니다. 성격이 급하거나 당장 뼛속까지 시원한 차가 간절할 때 쓰는 방법이죠. 찻잎에 뜨거운 물을 부어 평소보다 조금 더 진하게 찻물을 우려냅니다. 그리고 얼음이 가득 담긴 유리잔에 방금 우려낸 뜨거운 차를 콸콸 쏟아붓는 겁니다.

    '차르르' 하고 얼음이 깨지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차는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 내립니다. 뜨거운 물에 한껏 깨어난 찻잎의 묵직한 바디감과 짙은 풍미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짜릿한 시원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방법입니다.

    오늘은 얼음이 가득 든 투명한 잔에 진하게 우린 숙차를 부어 급랭으로 즐겨봅니다. 쫀득한 옥수수 알갱이를 톡톡 씹어 삼키고, 시원한 숙차 한 모금으로 입안을 깔끔하게 씻어냅니다. 달콤했던 수박의 기억과 두 화가가 남긴 유쾌한 그림, 그리고 눈앞의 구수한 옥수수와 시원한 찻물.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가장 넉넉하고 평화로운 늦여름의 풍경을 완성합니다.

    창밖의 매미 소리는 여전히 시끄럽지만, 찻잔 속의 얼음이 녹아내리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맹렬했던 이 여름도 머지않아 그 뒷모습을 보일 것 같습니다. 남은 여름을 기꺼이 견뎌낼 수 있는 다정한 위로가 오늘의 찻자리에 담겨 있습니다.
    #노시은작가 #스누피홀릭 #티타임 #신사임당 #초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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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배낭 속의 영국 남자』, 『언제라도 티타임』, 『화요일의 티타임』의 저자. 세상 구경하고 차 마시며 글, 사진, 영상, 그림으로 삶을 기록합니다. 아직은 벌이가 시원찮은 유튜버지만 콘텐츠를 만드는 일에는 진심입니다. 좋은 기획과 재미있는 작업 제안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 비즈니스(출간·강의·글작업) 문의: peanutsholi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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