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명회장에서 피케팅중인 대전송전탑백지화 대책위원회 회원들
대전환경운동연합
입지선정위원회의 결정은 절차상만의 부결이 아니었다. 그동안 일방적으로 추진돼 온 송전선로 건설 과정에 대해 더 이상 동의할 수 없다는 뜻에 동의한 입지선정위원회도 분명하게 입장을 밝힌 것이다. 정부가 구성한 위원회 마저 보이콧 하면서 절차를 거부한 것에 대한 평가가 있어야 했고, 이 결정을 존중해야 했다.
그런데 한전은 이 결정을 존중하기보다 별도의 자체적인 절차와 위원회를 통해 사업을 계속 추진하려 하고 있다. 입지선정 과정에서 주민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자 새로운 절차를 만들어 사업을 이어가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법률에 의해 진행한다는 변명은 지금 국민들에게 통용되지 않는다.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이미 입지선정위원회에서 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렸는데, 한전이 또 다른 절차를 만들어 같은 사업을 계속 밀어붙이는 것으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정부와 한전이 주민들과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절차'를 앞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주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또 하나의 설명회가 아니다. 왜 이 송전선로가 필요한지, 대규모 송전망 건설을 전제로 한 현재의 전력정책이 타당한지, 왜 특정 지역 주민들이 대규모 송전선로와 송전탑의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다.
한전은 주민들의 반대가 거세지자 설명회를 열고, 위원회를 구성하고, 사업 내용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절차를 계속 만들어가고 있다. 주민들이 반대하더라도 설명회를 개최했다는 기록만 남겨, 사업 추진 과정에서 '주민과 소통했다'는 명분을 만들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 섞인 목소리다 나온다. 주민들이 설명회장을 나간 뒤에도 설명회를 진행하려 한 것은 이런 우려를 더욱 키운다.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설명회가 과연 누구를 위한 설명회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송전탑 건설을 둘러싼 갈등은 대전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 곳곳에서 송전선로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으며, 주민들은 기록적인 폭염 속에서도 송전탑 건설의 중단과 전력망 정책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며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전국의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지역의 삶터를 지나가는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에 반대하며 각 지역을 연결하는 공동행동을 진행하고 있다. 대규모 발전시설과 산업단지를 위해 지역 주민들에게 송전망 건설의 부담을 떠넘기는 현재의 전력정책을 바꾸라는 요구다.
수도권 반도체 산업단지 등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전국 곳곳에 초고압 송전망을 추가로 건설하는 방식이 과연 지속 가능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주민들은 말 그대로 자신의 삶터를 걸으며 묻고 있다. '누구를 위한 전력망인가', '왜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지역이 아니라 전기를 보내는 지역 주민들이 그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가'. 그리고 정부는 아직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주민들과의 간담회를 진행하고, 마치 정부와 송전탑 반대 주민들 사이에 의미 있는 협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홍보하는 것 역시 비판받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5월 김성환 장관이 전력망 건설 반대위원회 대표단과 간담회를 진행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당시 정부는 주민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장의 주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형식적인 간담회나 설명회가 아니다.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계속 추진하면서 간담회와 설명회를 통해 '소통했다'는 외피를 만드는 것은 진정한 소통이 될 수 없다. 특히 주민들의 동의가 없는 자리를 정부가 마치 갈등 해결의 진전이 있었던 것처럼 홍보한다면 오히려 주민들 사이의 불신과 갈등을 키울 수밖에 없다.
김성환 장관은 지금이라도 보여주기식 간담회와 설명회를 반복할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왜 송전선로 건설에 반대하는지 현장에서 직접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사업을 어떻게 강행할 것인지가 아니라, 이 송전선로 건설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
주민설명회나 정부의 간담회는 괴를 같이하고 있다. 절차와 협의를 진행한 외피를 마련하는 일이다. 정부와 한전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주민들이 거부한 절차를 다른 이름으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입지선정위원회가 최종 부결된 상황에서 한전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해야 할 일은 사업을 강행할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송전선로 건설 과정 전체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송전선로 건설의 필요성부터 다시 검토해야 한다. 전력 수요가 실제로 어떻게 발생하고 있는지, 수도권 집중형 전력수요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 채 전국에 초고압 송전망을 확대하는 것이 타당한지, 재생에너지 확대와 분산형 전력체계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부터 논의해야 한다.
그리고 그 논의에는 사업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사업 강행을 전제로 한 협의는 협의가 아니다. 이미 결정된 사업을 설명하는 것도 소통이 아니다. 주민들에게 선택권이 없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설명회는 결국 절차를 위한 절차에 그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송전선로 건설을 전제로 한 주민설명회가 아니라 모든 절차를 중단하고 백지화 가능성까지 열어놓은 대화다.
한전은 주민들이 거부한 사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역시 한전의 사업 강행을 뒷받침하는 역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폭염 속에서 전국의 주민들이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며 길을 걷고 있다. 그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회의실 안에서 설명회와 간담회를 반복한다고 갈등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의 삶터를 희생해서라도 국가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일방적인 통보가 아니다. 왜 필요한지 설명하고, 정말 필요한지 함께 검토하고, 필요하다면 사업을 멈출 수 있는 정부다. 설명회와 간담회라는 이름의 꼼수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
한전과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송전선로 건설 강행을 위한 절차를 즉각 중단하고, 입지선정위원회 최종 부결이라는 주민들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 국민주권정부라면 주민주권부터 존중해야 한다. 주민의 반대와 부결을 무시한 채 사업 강행을 위한 새로운 절차를 만들어내는 순간, 정부가 말하는 '국민주권'은 또 하나의 수사로 전락 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강행이 아니다. 중단하고, 처음부터 다시 논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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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퇴장 후에도 설명회 강행한 한전... 소통인가 꼼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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