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채점 소식을 접한 순간, 우리 정부가 'AI 만능론'에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AI생성 이미지)
오마이뉴스
서논술형 시험에 대한 AI 채점 소식을 접한 순간, 우리 정부가 'AI 만능론'에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탈자 등 명백한 오류라면 몰라도 AI의 채점 결과를 교사가 뒤집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교사에겐 결과에 따른 민원과 법적 책임을 AI에게 미루는 게 '안전한' 선택이다.
더욱이 수백 명의 답안지에서 일일이 오류를 찾아내야 할 정도로 허술하다면, 굳이 AI에게 '초벌 채점'을 맡길 필요도 없다. 100% 오류가 없다는 보장 없이는 무턱대고 AI에 채점을 맡기긴 어렵다. AI에 채점을 맡기는 순간 교사의 '재벌 채점'은 요식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AI로 채점한 점수를 받아 들고 흔쾌해하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교육은 교사와 아이들의 만남을 전제로 한 행위이며 시험도 엄연한 교육의 일환일진대, AI가 좌지우지하는 교육이 과연 교육일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회의가 든다.
아무리 교사와 아이들, 학부모 사이에 불신이 팽배해 있다고는 하지만, 교사보다 AI를 더 신뢰하고 의존하는 건 만신창이가 된 우리 공교육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지금도 아이들은 교사의 수업보다 AI의 설명을 더 신뢰한다. AI 의존에 있어서 이미 위험수위에 다다르고 있다.
AI를 통해 채점한다는 건 서논술형 시험의 교육적 취지를 훼손하는 일이기도 하다. 만약 기존의 선다형 시험처럼 점수를 매겨 줄 세우는 목적이라면 더더욱 안 될 말이다. 본디 시험이란 교사와 아이들 각자가 출제 문항을 사이에 두고 성취 기준을 확인하고 대화하는 기회다.
서논술형 시험의 장점은 특정한 정답이 없는, 곧 다양한 정답이 나올 수 있는 문항의 출제가 가능하다는 데 있다. 그러나 AI가 채점에 개입한다고 상정하면 출제하기가 힘들어진다. AI는 명확한 기준과 용어, 개념이 제시되어야만 채점을 위한 사전 학습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AI 만능론'에서 벗어나길
'고려 말 공민왕이 추진했던 반원 개혁 정책은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으로 인해 좌절되었다. 만약 그의 정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고 안착했다면 이후 50년 동안 어떠한 역사가 전개되었을지 추론하여 800자 내외의 짤막한 '대하소설'을 작성하시오.'
오래전 이런 서논술형 문항을 출제한 적이 있다. 공민왕의 반원 개혁 정책은 성취 기준의 맨 앞자리를 차지할 만큼 중요한 내용이고 보면 주제야 낯설 게 없지만, '대하소설'을 써보라는 제시어에 다들 화들짝 놀란 눈치였다. 당장 시험 도중 대하소설이 뭐냐는 질문이 빗발쳤다.
물론, 글자 수 외에 정책의 내용이 명확히 제시되고, 가상의 등장인물은 불가하다는 등의 몇몇 조건을 붙이기는 했다. 아이들은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고, 역사 '덕후'조차 시간이 부족하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런데도 시험이 끝난 후 모두가 흥미로운 경험이었다며 서로의 답을 비교해 보곤 했다.
어렴풋하지만, 답을 작성한 대부분에게 후한 점수를 준 걸로 기억한다. 인물의 이름을 틀리게 적고, 사건의 순서가 맞지 않아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아이들의 발상은 엉뚱하리 만큼 기발했고, 영화의 시나리오를 흉내 낸 것도 있었다. 답안에 아이들 각자의 학업 역량은 물론, 성격까지 고스란히 묻어났다.
요즘처럼 수행평가 1점에도 목숨 거는 시대엔 엄두조차 못 낼 시험이었다. 그땐 자기 점수에 대해 불만을 표출한 아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시험으로 인해 아이들과 더욱 친해졌고, 다음에도 그런 식의 문제를 출제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출제 교사로서 뿌듯한 순간이었다.
만약 이 문제의 답안을 AI가 채점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선 정확한 채점을 위해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가령 800자는 100점, 700자는 90점, 600자는 80점… 이런 식으로. 또, 정책과 인물이 몇 명 제시되었느냐에 따라 점수를 차등하는 것도 불문율일 테다.
과연 AI는 아이들의 기발한 상상력을 '공정하게' 채점할 수 있을까. 또, 과거처럼 시험 답안을 대조해 가며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을까. 분명한 건, AI가 기준에 맞춰 엄격하게 채점한다고 해서 아이들의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력이 길러지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부디 정부는 'AI 만능론'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특히 교육에서 AI는 자칫 흉기가 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AI가 답안을 채점하는 상황이라면, 아이들은 굳이 교사의 수업을 들을 까닭이 없다. 고작 교사의 업무 부담을 더는 차원의 문제로 접근해선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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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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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내놓은 서논술형 시험 채점의 '비기', 끔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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