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문화유산 방문자여권 국가유산청에서 여권을 발급 받아 스탬프를 모으며 여행합니다.
전명원
국가유산 방문자 여권으로 스탬프 투어를 하고 있다. 국가유산청(www.kh.or.kr )에서 신청, 발급이 가능한 데 이것을 가지고 다니며 여행하는 재미가 꽤 좋다(10개 테마, 76개 거점 스탬프 인증). 나는 이 목록 중 8할 정도 도장을 받았다.
이제 전라도 지역과 경기 북부 지역만 남겨두고 있는 셈이라서 입추가 지나고는 아침저녁으로 더위가 한풀 꺾인 8월 초, 드디어 경기 북부 지역에 도전했다. 철원-연천-포천을 돌아오는 코스였다.
철원 고석정에서 시작해 화적연, 비둘기낭폭포, 한탄강 지질센터를 돌아보고 연천으로 향했다. 연천에서는 호로고루와 전곡리 유적지를, 뒤이어 향한 포천에서는 아트밸리까지 돌았다.
여행이란 어디를 어떻게 다녀도 괜찮지만, 방문자 여권의 목록을 따라다니다 보니 가장 큰 장점은, 잘 모르고 있던 여행지도 목록 덕분에 찾아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코스에서도 몇 곳의 지명이 꽤 낯설었다.
고석정, 비둘기낭폭포 등은 예전에도 가본 적이 있는 곳들이지만, 화적연, 호로고루는 사실 처음 들었다. 내가 국가유산 방문자 여권 투어를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영영 모르고 있었거나, 어디에선가 들었어도 쉽게 가볼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나 역시 경기도민이지만 서울의 아래쪽인 수원에 살고 있는지라 경기 북부 쪽, 그러니까 전방과 가까운 지역으로 가면 몇 가지 이유로 낯선 느낌을 받는다. 유난히 군부대가 많다는 것, 군용 차량이 도로에 많이 보인다는 것, 그리고 유사시에 도로 통행을 막기 위한 구조물들이 흔하게 보인다는 것 등을 먼저 꼽을 수 있다.
첫 목적지인 고석정까지 가는 동안 이런 낯선 풍경이 계속 보였는데 주차하고 고석정으로 내려가려는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심지어 멀지 않은 곳에서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났다. 너무 놀라 들고 있던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주변을 둘러봤는데 신기한 광경은 그다음이었다.
주변 상가의 상인들이나 지나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나처럼 놀라서 두리번 거리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훈련하나봐요." 내 옆을 지나던 관광객으로 보이는 부부의 대화만이 내 마음을 대변해 주었다. 그들은 나처럼 놀라며 말했다. "폭탄 터진 거야? 전쟁난 거 아니겠지?"
놀란 가슴이었지만 여러 해 만에 본 고석정은 여전히 물가에서 고적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예전에 봤을 때보다 수량이 많아 푸른 물이 더욱 인상적인 비둘기낭폭포를 보고는 기대했던 두 곳 중 하나인 화적연으로 향했다.

▲화적연 그림처럼 아름다운 화강암이 있습니다. 고즈넉한 물길이 인상적이에요.
전명원
화적연은 화강암이 마치 볏단을 쌓아놓은 것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예로부터 금강산으로 향하는 길목이었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이곳은 최전방 지역이라 할 수 있으니 금강산이 여기서 얼마나 될까, 속으로 막연하게 가늠해 보며 푸른 물과 바위를 바라봤다.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을 정도이니 한탄강 주변의 자연환경은 어디나 볼 만하다.
연천에서는 역사 시간에 배워 익숙한 전곡리 유적지 외에 난생처음 들은 또 하나의 지명 '호로고루'를 찾았다. 발음도 힘든 호로고루가 대체 무엇일지 궁금했는데 그것은 성벽의 일부였다. 안내문을 가만히 읽어보니 고구려 시대에 축조했고, 삼국시대의 전투를 거쳐 신라의 영토가 된 이후엔 그 위에 신라가 성을 덧쌓고, 인민군이 진지로 썼으며, 이제 우리나라의 유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한다.

▲호로고루 연천 호로고루입니다. 역사의 부침이 느껴지는 성벽이 인상적입니다.
전명원
생각해 보면 호로고루는 고구려부터 시작해 영토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풍파를 겪은 셈이다. 비록 내가 살고 있는 수원화성처럼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남한 지역에 고구려 유적이 남아 있는 것도, 그 부침을 겪은 역사도 남다르게 다가왔다.
호로고루에서 한동안 안내문을 읽고 있을 때 멀리서 쿵쿵 소리가 들렸다. 고석정에서 들었던 대포 소리와 비슷했다. 그 소리를 듣다 보니 어쩐지 호로고루의 역사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됐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외지인은 소스라치게 놀라는 포탄 소리가 아무렇지도 않는 최전방 주민들을 다시 떠올리다보니 그 부침의 역사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만 같기도 했다. 호로고루의 역사는 곧 우리의 역사라는 깨달음이 그제야 함께 왔다.
더위는 한풀 꺾여 다니기에 괜찮았지만, 마지막 코스인 포천의 아트밸리를 돌아볼 땐 다시 뜨거운 여름볕이 내리쬐는 날씨였다. 그래도 목표했던 곳들을 모두 돌아보고 착실히 국가유산 스탬프도 모두 받았다. 스탬프는 빨간색 함에 들어있는데, 그 어느 곳에 가든 눈에 잘 띄었다. 도장을 하나씩 꾹꾹 누르며, 이렇게 내 나라의 또 한 곳을 다녀왔구나 싶은 마음에 뿌듯해졌다.
집에 돌아와 오늘 찍은 도장이 선명한 국가유산 방문자 여권을 한 장씩 넘겨봤다. 가야, 백제뿐 아니라 산사, 서원, 왕가, 그리고 선사 지질 및 설화와 자연, 그리고 소리와 천 년 역사까지 골고루 담긴 우리의 국가유산이 스탬프를 다시 보는 내내 하나씩 다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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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여행을 하며, 글을 씁니다. 나름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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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들고 국내 여행 갑니다, 도장 찍으면 좋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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