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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6.08.15 11:41수정 2026.08.15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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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SK텔레콤에서는 8.15 광복절을 맞아 캠페인 영상 '독립을 이끈 여성들을 기억하길'을 제작했다.
첫 번째 코스는 정재헌 SK텔레콤 CEO가 서울 종로의 '독립을 이끈 여성들을 기억하길'을, 마라토너 이봉주는 이화학당과 배재학당 등 '교육으로 밝힌 독립운동을 기억하길'을, 인천에서는 뮤지컬 배우 홍지민은 '인천의 교복 입은 영웅들을 기억하길'을 달렸다. 그리고 마지막 코스는 기부 천사 가수 션과 독립운동가 이교옥 선생의 증손녀 최서윤이 '천안 만세의 불꽃을 기억하길'을 함께 달렸다(영상 4분 32초에 나옴).
1929년 광주 학생 운동의 주역이셨던 이교옥 독립운동가는 나의 외할아버지이다. 증손녀 최서윤은 막냇동생의 딸로 내 조카이다.
엄마와 삼촌들이 생전에 그렇게 독립 유공자 후손으로 인정받고 싶어 만방의 노력을 했지만 너무 어려웠다. 수십 년이 흘러 2019년 정부로부터 이교옥 독립운동가 표창장을 받게 되었다. 이번에 조카가 홍보 영상에 참여하니 그동안 엄마가 애써 일구어 놓은 길을 보상 받는 느낌이 들어 큰 위로가 된다.

▲ SK텔레콤이 '독립운동가 기억하길' 주제로 만든 영상 중 한 장면.
SK텔레콤
반신불수가 된 외할아버지 간병한 엄마
이교옥 독립운동가는 고창 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29년 2학년 재학 중에 '고창독서회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들의 비인도적이고 혹독한 악형으로 생명까지 위독해졌다.
엄마는 이교옥 독립운동가의 오남매 중 둘째다. 엄마는 전기 고문과 잔혹한 고문으로 반신불수가 된 외할아버지 병구완을 하기 위해 국민학교 문턱도 넘어보지 못했다. 외할아버지는 정신 이상 증세까지 겹쳐 외할머니 혼자 간호하기는 힘에 부쳤다고 한다. 그래서 외할아버지가 삼십칠 세 타계 하실 때까지 딸인 엄마가 함께 간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그런 엄마를 '평생 효녀'라고 불렀다. 돌이켜 보니 효녀라는 말이 결코 아름다운 언어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자기의 삶과 꿈을 포기한 채 가족을 위해 희생하라는 시대의 강요이자 슬픈 굴레였다.
가세가 기울었던 엄마는 아내와 사별한 아버지와 결혼했다. 아버지에겐 두 살 아들이 있었다. 어머니는 전실 자식을 품고 이후 칠 남매를 더 낳아 여덟 자녀를 키웠다. 우리 집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할머니까지 총 열세 명이 살던 때가 있었다. 대식구 먹이고 입히고 바쁜 농사일에 엄마의 삶은 완전히 뒷전이었다. 자기 몸은 돌볼 틈도 없이 버티며 사셨던 엄마의 안타까운 삶.

▲딸 대학 졸업식 때 학사모 쓴 아버지 어머니 모습 팔남매 대학공부를 온갖 수단방법을가리지않고지원함. 자식 대학 졸업식장에서 학사모 쓰고 기뻐함
최윤순
그럼에도 엄마는 글자를 배우고 싶은 마음은 놓지 않으셨다. 까막눈을 피하고 싶어 호롱불 밑에서 몽당연필에 침 발라가며 공책에 글자를 그렸다. 하지만 끝없는 농사일과 계속 터지는 집안일을 수습하느라 정작 하고 싶은 공부는 뒤로 밀릴 수밖에.
지금 같으면 문해교실에서 충분히 글자를 깨쳤을 텐데. 본인 생각을 쓰고 싶었던 마음을 꾹꾹 눌러가며 살아온 애처로운 어머니의 일생을 늦게라도 추모하고 싶다. 글자도 모른다고 괄시받으며 평생을 사셨던 우리 엄마!
엄마에게 바치는 가장 깊은 추모
어느 날 막내아들에게 남긴 쪽지를 본 적이 있다.
"망내야, 배고프면 라면이라도 쓸며 머거라."
땀에 찌든 일바지 주머니에서 발견한 삐뚤삐뚤 쓴 엄마 글씨! '얼마나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글로 표현하고 싶으셨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어떤 석사, 박사 출신보다도 지혜롭고 현명하게 일을 처리하셨던 대장부 엄마! 학교에 다니진 못했지만 어떤 사람보다 현명하게 일을 처리하고 대처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이 탁월하셨던 어른이셨다. 삐뚤삐뚤 써 내려간 배움에 열망한 엄마의 흔적들! 돌아가신 지 24년이 되었는데도 내 가슴에 불도장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다.

▲변산 해수욕장에서 손자를 안고 그당시 어머니는 고된 농사일로 무릅과 다리가 몹시 아파서 손자를 안을 수도 없었고 똑바로 설 수 없었다.
최윤순
엄마는 독립운동가 자식답게 어떤 어려움에도 비굴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밟혀도 밟혀도 꼿꼿하게 살아남은 질경이 같은 엄마의 일생! 팔 남매 공부시키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키워내신 장한 어머니! 돌아가실 때까지 인간 고생, 마음고생을 피할 수 없었던 애잔한 어머니!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이라도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을 정성스럽게 애도하고 싶다.
나는 엄마의 근성을 닮아 칠십이 가까운 나이에도 배움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고 있다. 내 오랜 소원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해서 체계적으로 글쓰기를 배우는 것이다.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었던 엄마의 질곡한 삶을 이제라도 제대로 쓰고 싶다.
더 나아가 고단한 삶을 견뎌온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고 싶다. 그 기록들이 한 권의 책이 되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고, 다음 세대에게는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의 유산이 되었으면 한다.
이것이 뒤늦게나마 내가 엄마에게 바치는 가장 깊은 추모이자 이어가고 싶은 독립운동의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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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먹는 젊은 청춘으로 황혼 육아 성장 에세이를 쓰는 황혼 육아 8년 차 할머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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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옥 독립운동가의 딸이었으나 학교도 못 다닌 나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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