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지하상가 1966년 지하도로 시작해, 1978년 지하상가로 확장된 명동지하상가. 바닥에 방향을 가리키는 동판이 이곳이 지하임을 간접 웅변하고 있다.
이영천
지상의 자동차는 경적을 더 높인다. 그에 비례해 지하는 왁자지껄한 말들로 가득 찬다. 처음 4대 문 안에서 시작해 서울역 등 부도심으로 확산한다. 전통 상업지역은 물론이고 발길 들끓는 기차역까지 퍼져나간다. 불과 15년 사이 수많은 지하상가가 생겨났다. 지하 공간이 하나의 일상인 시대였다.
그로써 지하는 더는 어둠이 아니었다. 서울의 지하가 수도권은 물론 지방 대도시의 지하로까지 퍼져나갔다. 시간 감각이 거세된 형광등 아래서 우린 물건을 사고, 시간을 보내고, 누군가를 기다렸다. 밀려난 공간에서 또 다른 도시가 자라난 셈이다.
위가 달리는 속도의 도시라면, 아래는 머무는 체류 공간이었다. 밀려난 지하에서 아이러니하게 인간적인 온기가 잇닿아 피어나고 있었다. 특이한 공간문화였다. 항온인 지하가 창출해 낸 역설일까.
변해 가는
도로 위 사고가 줄어든 대신, 육교와 지하도가 전혀 다른 질서를 만들어 냈다. 그건 분명 시대가 선택한 해법이기도, 부작용이기도 했다. 무단횡단이 잦았던 시절, 입체 분리는 안전을 보장하는 장치였다. 반면 사고를 바꿔야 했고 몸은 고단해졌다. 강요된 선호였다.
차의 속도가 권력인 땅 위는, 자동차 전용 공간이었다. 반면 결코 친절하지 못했음에도, 육교와 지하도는 보행자 선택처럼 호도되었다. 다리근육 탄탄해지는 계단이었고, 그것에 모두가 익숙해졌다.
햇볕과 비를 맞으며 신호를 기다리는 느긋함이 사라졌다. 그랬어도 뭘 앗겼는지 잘 인지하지 못했다. 감당해야 할 위험보다 안전하다니 그런가보다 여겼다. 타율의 익숙함이었다. 그 감각이 여전히 우리 근육에 남아있을까?
지하구조물이 강요한 작은 질서가, 지하상가라는 전혀 다른 공간문화로 이어졌다. 거기서 우린 전혀 다른 일상을 보냈고, 여전히 현재다. 비대해진 대형 상업시설의 영향인지 지하상가는 지금 예전 같은 활황은 아니다.
지하도와 동시다발로 생겨난 셀 수조차 없는 육교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 대신, 따스한 햇볕과 바람을 벗 삼을 수 있다는 게 다를 뿐이었다. 그게 육교의 유일한 장점이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삐걱거리던 신촌 로터리 나무 육교가 옛사랑처럼 뇌리에 박혀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세종대로 사거리 지하도 너른 세종대로를 지하로 건너는 지하도 내부. 밝아진 조명에 단장된 장식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든다. 지하로는 옆 대형 서점과 광화문 광장으로도 이어진다.
이영천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이젠 지하도로 내려가지 않아도 된다. 다만, 교통신호를 기다리기 싫다면 선택할 수는 있다. 그처럼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하는 건 강요된 타율이 아닌 자율이다. 에스컬레이터도 있다. 출입구와 내부 통로도 한껏 단장되어 있다. 예전과는 다른 어둠이다. 아울러 육교도 이젠 찾아보기 쉽지 않다.
육교와 지하도가 새겨 놓은 감각 때문일까. 보행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이 정겹다. 느리지만 이처럼 소중한 공간 감각을, 공기나 물처럼 잘 느끼지 못한다. 세종대로 지하도가 환골탈태했는데도 말이다.
세종대로 사거리를 빙 둘러본다. 한때 왕복 20차선이던 차의 공간에 광화문광장이 예쁘게 앉았다. 살아남은 세종대로 지하도가 광장으로 연결되었다. 여기선 모두가 여유롭다. 그저 제 갈 길을 갈 뿐, 헐떡이지 않는다. 이제 이 질서가 더 익숙하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
새삼스레 타인과 소통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소통하는 그런 일들을 찾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보다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서로 교감하면서,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풍성해지는 삶을 같이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