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앞에 걸린 현수막 공주 어물리 논 앞에 걸린 송전탑 반대 현수막
환경운동연합
8월 14일은 행진의 충남 마지막 날이었다. 7월 30일 해남을 떠난 걸음은 전남과 광주, 전북과 대전을 거쳐 8월 10일 충남에 들어섰다. 그렇게 지나온 지역이 스물두 곳이다. 말복이자 광복절 하루 전날이었다. 충남은 15개 시군 가운데 태안을 제외한 14개 시군을 345kV 초고압 송전선로가 지나간다. 전기를 생산하는 곳도, 쓰는 곳도 아닌데 선만 온전히 이 지역을 관통한다.
공주 – 설명회에 온 시민은 두 명이었다
두 시간의 차량 선전전을 마치고 공주시청 앞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1시였다. 준비를 하는데 안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집회 신고 장소가 시청 문 밖이니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었다. 이날 예정된 것은 기자회견과, 행진 내내 해온 퍼포먼스였다. 기자회견은 별도의 신고 절차 없이 열 수 있다.
공주 대책위는 잠시 실랑이를 하다 방법을 바꿨다. 사회자가 집회 개회를 알리고 인사말을 한 뒤 곧바로 종료를 선언했다. 이어지는 기자회견은 청사 앞에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신계룡~북천안, 군산~북천안 345kV 송전선로 백지화를 요구하는 자리였다.
한동희 공주시송전탑백지화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이 첫 발언에 나섰다. 요즘 정안면을 오갈 일이 많다고 했다. 산마다 송전탑이 서 있고, 어느 순간부터 그 탑이 제 등과 머리에 박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그는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8월 5일 전국의 대책위를 불러 내놓은 방안을 하나씩 짚었다. 충분한 보상, 피해 지역 우회와 지중화, 발전사업 지분 투자를 통한 연 7~8%의 연계소득, 햇빛마을 소득. 네 가지였다.
한 집행위원장은 그 네 가지가 서로 맞지 않는다고 했다. 보상이 충분하고 노선까지 우회한다면 연계소득도 햇빛소득도 애초에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햇빛마을 소득은 마을 공유지가 있어야 가능한데,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마을에 그런 땅이 남아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연계소득 배당도 주민들은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 돈을 받아 쓰면 평생 이웃에게 욕을 얻어먹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루 전 일을 꺼냈다. 8월 13일 공주대 공주캠퍼스 국제회의실에서 한전의 사업 설명회가 열렸고, 그가 직접 가봤다고 했다. 참석한 공주시민은 두 명이었다. 그마저 곧 자리를 떴다. 보상이 그렇게 충분하다면 왜 아무도 오지 않았느냐고 그는 물었다.
한 집행위원장은 장관 경질보다 한전 개혁이 본질이라고 했다. 전원개발촉진법과 전기사업법, 송주법에 더해 에너지 관련 법과 국가전력망 확충법까지 강제수용을 떠받치는 법이 겹겹이 쌓여 있다는 것이다. 그가 요구한 것은 다른 것이었다. 주민에게 필요한 것은 송전선로가 아니라 배전선로라고 했다. 농민이 전기를 만들어도 배전망이 포화라 한전이 받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스스로 생산해 스스로 팔고 지역이 쓰는 것보다 나은 에너지 전환이 어디 있느냐고 그는 말했다. 보상은 필요 없다고 덧붙였다.
황성렬 충남송전탑백지화대책위원회 상임공동대표는 다음 날이 광복절이라고 했다. 이 자리에서 충남의 에너지 독립을 선언하자고 했다. 우리가 쓸 것은 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버릴 것은 우리가 처리하겠다는 것이었다. 해남에서 공주까지 오는 동안 가장 자주 들은 말은 에너지 식민지였다. 그 말에 대한 답이 여기서 나온 셈이다.
논산 – 모르기 때문에 관심이 없다
논산시청 앞에서는 경찰의 태도가 더 강경했다. 기자회견을 준비하며 앰프를 켜고 음량을 조절하는 대책위를 향해 당장 끄라는 요구가 나왔다. 끄지 않으면 채증하고 고발하겠다는 말이 뒤따랐다. 실제로 사진과 동영상 촬영이 시작됐다.
황성렬 상임공동대표는 논산시민 가운데 이 송전선로가 왜 지어지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모르기 때문에 관심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절차는 이렇게 흘러간다고 그는 설명했다. 한전이 주민 설명서를 들고 시청 과장과 계장, 담당자에게 설명한다. 각 읍면 이장단에게 설명한다. 그리고 끝이다. 그 사이 사업은 진행된다.
그가 짚은 대목은 서류였다. 사업 목적 어디에도 용인 반도체 산단에 전기를 보내기 위한 선로라는 말은 없다는 것이다. 목적대로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시청의 책무라고 했다. 목적에서 벗어났다면 더 진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시장과 시가 할 일인데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시가 직접 못 하겠다면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말고 이장단과 개발위, 시민단체와 농민회를 모아 설명회를 열고 공동 대응을 먼저 제안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이 싸우자고 나서기 전에 시가 먼저 나서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자리에 선 공무원과 경찰을 향해서도 말했다. 제 집 위로 송전선로가 지나가면 가만히 있겠느냐고 물었다. 다소 소란이 있더라도 참아주는 것이 국민의 공복으로서 지켜야 할 책임이라고 했다. 이런 말은 어디서도 한 적이 없는데 그날은 화가 나서 한다고 덧붙였다.
사회자는 논산에 거론되는 송전선로 구간이 다섯 개가 넘는데도 어디에 어떻게 들어서는지 이야기가 일절 없다고 했다. 입지선정위원이 있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활동하는지 알 수 없고, 시에 정보를 요청하면 아는 게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고 했다.
기자회견문을 읽은 논산시 대책위원장은 비용을 셈했다. 초고압 송전선로 1km를 놓는 데 최소 30억 원, 해남에서 용인까지 54개 지역 3855km를 잇는 데 70조 원이 넘게 든다는 것이었다. 전국을 송전탑 벌집으로 만드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그는 물었다. 그러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고 했다. 전력 수요와 전력망 계획의 타당성을 함께 검증하고, 주민과 전문가, 기업과 정부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 기구를 먼저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논산 시청 기자회견 경찰의 제제 속에 진행된 논산 시청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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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 선은 이미 그어지고 있었다
부여군청 앞에서는 노선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 사회자는 노선이 거의 확정되어 가고 있다고 전했다. 그 내용을 확인하고 울분을 참지 못하는 주민이 많다고 했다.
보령에서 열린 입지선정위원회에 참석했던 한 농민이 발언에 나섰다. 지역에 내려와 30년째 과일 농사를 지어온 사람이었다. 그는 한전이 그려온 노선이 공개됐는데, 자신의 과수원을 포함해 동네 네 개 마을을 관통하더라고 했다. 선을 다 그어놓고 주민이 나중에야 알게 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물었다. 다섯 개 마을 이장들이 모여 송전탑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내자고 결정했다고 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도와달라는 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정병섭 부여군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준비위원회 공동대표가 여는 말을 했다. 이 행진은 한 지역의 민원이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수도권과 대기업의 전력 수요를 위해 정작 그 전기를 쓰지도 않는 지역 주민이 삶터와 건강과 재산권을 내놓아야 하는 지금의 전력정책이 얼마나 잘못됐는지를 온몸으로 알려온 걸음이라는 것이었다.
부여는 8월 1일 발기인대회를 열어 뜻을 모았다. 아직은 준비위원회이고, 공동대표 세 사람을 위촉했다. 지역 단체와 농민단체의 참여가 예정돼 있어 이달 말쯤 정식 대책위원회로 출범할 계획이라고 했다.

▲부여 주민이 만들어 온 피켓 송전탑 반대 기자회견에 등장한 피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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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동안, 서울에서는
이틀 전인 8월 12일,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한국전력공사 경인건설본부에서 전남도와 광주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한전과 호남권·용인 반도체 메가프로젝트 전력 공급 협약을 맺었다.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수요를 6GW 이상으로 전망하고, 2029년부터 초기 팹이 가동될 수 있도록 3GW 규모의 1단계 설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1단계는 신장성~신광주 선로에서 분기해 산업단지로 잇는 방식이다. 2단계 선로는 기술 검토와 협의를 거쳐 확정한다고 했다. 용인 일반산단에는 2031~2032년 산단 주변과 동해안에서 전기를 가져오는 선로를 새로 짓는다.
방점은 다시 송전선로에 찍혔다. 장관은 전날 국회에서 마을에 가까운 곳은 비용이 들더라도 최대한 지중화하겠다고 말했다. 345kV 선로를 지하에 넣으려면 지상 선로보다 약 여덟 배의 비용이 든다고 알려져 있다. 주민이 반대해도 선로를 지을 경우 법률에 따라 4km당 20억 원이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지원된다.
부담을 줄이는 방법은 논의되고 있다. 부담을 질지 말지는 논의되지 않고 있다.
세 도시가 말한 것
세 곳에서 나온 말은 조금씩 달랐다. 공주는 보상을 이야기했고, 논산은 절차를 이야기했으며, 부여는 이미 그어지고 있는 선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셋 다 같은 자리를 향하고 있었다. 왜 지어지는지 알려주지 않은 채 진행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이유를 물을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길 위에서 반복해 들은 물음도 있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위해 국가가 막대한 비용을 대고, 송전탑을 원하지 않는 주민이 그 대가를 떠안는다. 그러는 사이 가뭄을 비롯한 기후위기 피해에 대한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이 셈은 누가 맞춰 놓은 것인가.
어물리 고추밭에서 빨갛게 익은 고추를 보았다. 가을이면 고추를 말리던 엄마가 생각나, 시세를 물어보고 사서 보내드릴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곁에 선 어른께 여쭤보니 값 이야기보다 자랑이 먼저 나왔다. 탄저병 하나 없이 예쁘게 자랐다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시세를 모르겠다고 하셨다. 작업을 해서 공판장에 넘겨봐야 값을 아는데, 행진을 준비하고 따라나서느라 그 작업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행진단은 8월 20일 청와대 앞에 선다. 해남에서 시작한 걸음이 그곳에 닿는 날이다.
어물리의 새벽으로 돌아가 본다. 고추밭과 아직 이삭이 패지 않은 논, 여물어 가던 밤송이, 그 사이에 걸린 현수막들. 저 논에 이삭이 패고 밤이 떨어질 무렵에는 무엇이 정해져 있을까. 그때 이 마을 사람들은 누구에게 물을 수 있을까.
글쓴이: 최경숙 환경운동연합 정책변화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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