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6.08.17 11:25수정 2026.08.1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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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넷플릭스나 OTT 같은 방송이 나오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 비해 소식이 느린 편이다. 많은 사람이 봤다는 오징어 게임이나 폭싹 속았수다 같은 대작도 보지 못했다. 그러니 대략 어떤 내용인지는 알아도 자세히는 모른다. 드라마는 공중파 주말 방송만 보는 어쩌면 나이 든 할머니일지언정 그리 불편한 점은 없다. 텔레비전을 자주 보지도 않는 편이지만 오전에 집안일을 마치고 커피 마실 때 소파에 앉아 잠시 켜는 것이 다다.
지난 14일, 재방송으로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을 보았다. 무심코 화면을 바라보던 나의 시선은 한 출연자의 떨리는 목소리와 눈빛 앞에서 마시던 커피마저 다 식어버리고 말았다.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 오더니, 이내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유퀴즈 유퀴즈에 출연하여 피터팬재단이 꼭 네버랜드를 만들기를 바라는 의학적 정신연령 2.3세 중증 자폐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지막 기도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방송 캡처
화면 속 주인공은 <안녕, 피터팬>을 쓴 전경철 작가였다. 한때 잘나가던 IT 기업 대표였던 그는 첫돌 무렵 중증 자폐 진단을 받은 아들 제원군을 27년간 홀로 키워온 싱글파파다. 의학적 정신 연령이 2.3세에 머물러 있는 아들에게 누군가가 '자라지 않는 아이'라며 비유했던 그 말. 아버지는 그 단어를 애정 어린 별명으로 삼아 아들을 27년 동안 '나의 피터팬'이라 부르며 삶을 버텨왔다. 아들인 제원씨가 너무 잘생겼다며 하하 웃는 그의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무해한 웃음으로 보였다.
그러나 삶의 비극은 느닷없이, 그리고 한꺼번에 찾아왔다. 치매와 뇌경색을 앓던 어머니를 배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에게 간암 말기와 기대 여명 6개월이라는 시한부 선고가 내려진 것이다. 자신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홀로 남겨질, 여전히 두 살 배기 마음에 머물러 있는 27살의 아들. 아버지는 자신이 없는 세상을 살아갈 아이의 보금자리를 찾아 헤맸다. 1,000 여 곳의 시설 문을 두드렸지만 단 한 군데에서도 받아주질 않았다. 우리 사회가 발달 장애인과 그 가족에게 내어주는 자리는 너무나 좁고 차가웠다. 절망의 끝에서 아버지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간절한 심정으로 잡은 것은 펜이었다.
"내가 세상을 떠나도 내 아이가 잊히지 않기를, 그리고 이 땅의 수많은 피터팬들이 안전하게 숨 쉴 수 있는 집이 생기기를…."
그 절박한 마음으로 써 내려간 기록이 바로 책 <안녕, 피터팬>이다. 그의 글은 단순히 한 가족의 슬픈 수기가 아니었다. 자식을 향한 숭고한 사랑이자, 남겨질 아이들을 위해 세상에 던지는 가장 깊고 절절한 고백이었다.

▲안녕, 피터팬 전경철작가님(브런치필명 꼭두)이 부모가 세강을 떠난 뒤에도 장애인들이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네버랜드를 만들고자 피터팬제단의 꿈을 위해 인세 전액이 쓰인다고 합니다.
방송캡처
방송의 후반부, 27년 만에 아들과 함께 캠핑을 떠나 환하게 웃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응원이 울려 나왔다. 아들 제원씨는 밤새 잠을 자지 않고 아버지만 계속 바라보았다. 헤어질 시간을 그 어린 마음에도 느껴졌던 걸까. 목이 꽉 메며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안다. 슬픔과 아픔을 문장으로 옮기는 작업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하물며 자신이 떠난 뒤의 세상을 홀로 견뎌야 할 자식을 생각하며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을 그 마음의 깊이를 감히 다 헤아릴 수 있을까.
단 한 곳도 받아주지 않던 부자를 위해 MBC '실화탐사대'에서 긴급하게 방송을 내보냈다고 한다. 유퀴즈에 나온 내용으로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방송 중 눈에 띈 것은 어디선가 많이 본 화면이었다. 온라인 글쓰기 플랫폼인 '브런치'의 작가 글쓰기 창이었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눈으로 기억해 둔 필명 '꼭두' 작가님을 찾아 들어가 보았다.
'현실 동화에 참여해 주시겠습니까?'라는 제목의 글에는 많은 사람의 응원 물결이 사랑으로 변하여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었다. 수백 명이 댓글과 응원으로 마음을 전한 것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절망과 희망 그 사이 어디쯤 서성거리고 있을 그분에게 나도 비록 먼지처럼 작지만, 마음을 보태고 싶었다. 구독자가 아닌 작가에게 응원금을 보내기는 처음이었다. 비록 적은 금액이었지만, 내 작은 마음이 그분에게 무사히 닿기를 바라는 간절함이었다.
그날은 12시에 약속이 있어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라도 이 사연을 알리고 싶었다. 작은 물결 하나가 모여 태평양이 되지 않을까 하는 믿음을 품고 말이다. 얼마 전 시작한 개인 SNS에 '안녕, 피터팬'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서 올렸다. 비록 이웃이 많은 건 아니지만 단 한 사람에게라도 내 글이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글을 올려두고 집을 나섰다.
아버지는 슬픔에 굴복하는 대신 글을 통해 세상과 소통했고, 그 기록은 이제 부모가 떠나도 아이들이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피터팬재단'이라는 희망의 씨앗이 되어 싹을 틔우고 있다. 마침 14일 저녁에는 피터팬재단 설립을 알리고 피터팬들의 안식처가 될 '네버랜드'의 시작을 선언하는 뜻깊은 자리가 열렸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피터팬과 남겨진 부모들을 향한 이 간절한 선언이 부디 외로운 울림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기록된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버지가 세상에 남긴 글은 훗날 그가 곁에 없을지라도 영원히 아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줄 것이다. 정신 연령이 2.3세인 아들이 "그냥 자기를 사랑했던 한 남자가 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라도 기억해 주길 바란다."라는 그의 말은 방송이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먹먹함으로 남아있다.
이 땅의 모든 '피터팬'들과 그 피터팬을 가슴으로 품어 안은 세상 모든 부모의 평안을 위해 가만히 기도해 본다. 그리고 좀 더 따뜻한 사회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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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를 주로 씁니다. 가끔 음식 이야기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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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두고 떠나는 아버지의 편지, 우리들의 '네버랜드'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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