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고 '어르신'이라는 카페 점원... 마음이 이상했다

나이는 숫자로 쌓이고, 인생은 이야기로 깊어진다

등록 2026.08.17 18:16수정 2026.08.17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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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폭염의 뒤끝이 여전히 맹렬하던 말복 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열기를 식히려 인근 카페에 들렀다. 늘 마시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던 때였다.

"어르신,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나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구를 부르는 거지?' 한 박자 늦게 깨달았다. 직원의 시선과 목소리가 향하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나였다.

타인의 입을 통해 직접 '어르신'이라는 호칭을 들은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언젠가는 이 낯선 단어와 대면할 순간이 오리라 생각하긴 했다. 희끗희끗해진 머리칼이나 예전 같지 않은 몸 상태를 보며 나이 듦을 몰랐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거울 속 내 얼굴을 보며 세월을 확인하는 것과, 낯선 이의 목소리로 내 인생의 계절이 바뀌었음을 통보받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손에 쥔 차가운 컵을 만지작거리며 멍하니 직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가슴 한구석에서 툭, 무언가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났다. 낯섦과 섭섭함이 묘하게 얽힌 서먹한 감정이 밀려왔다. 마음은 여전히 청년 시절의 그 계절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 데, 누군가의 시선 속 나는 이미 '어르신'이라는 단어 하나로 나지막이 정리되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 세 글자가 귓가를 맴돌았다. 나는 언제부터 어르신이 된 걸까. 나이 들었음을 머리로 아는 것과 타인의 호칭으로 확인받는 일의 무게감은 확연히 달랐다. '어르신'이라는 단어는 오랫동안 잠겨 있던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와도 같았다.


기쁜 날과 힘들었던 날, 다시 일어서야 했던 수많은 순간들. 누군가의 가장으로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몫을 다하며 살아온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떠올려 본다. '어르신'은 본래 남의 어버이나 나이 많은 이를 높여 부르는 존칭이다. 그날 직원이 건넨 말 역시 나를 늙은이로 규정하려 함이 아니라, 나름의 예의를 담아 건넨 존중이었을 것이다.

생각의 각도를 조금 바꾸자 마음의 앙금이 가라앉았다. 나이는 숫자로 쌓이지만 인생은 각자의 이야기로 깊어진다. 우리는 흔히 몇 년생인지, 은퇴한 지 몇 해째인지를 따지며 숫자에 매여 살지만, 한 사람의 삶은 단순한 수치로 다 담아낼 수 없다.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던 기억, 가족을 위해 흘린 땀방울, 실패를 삼키며 내디딘 한 걸음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나라는 존재를 이룬다.


나무의 나이테가 모진 계절을 견뎌낸 흔적이듯, 사람의 주름 역시 살아낸 시간이 깊어졌다는 증거다. 그러나 호칭이 지닌 무게는 여전히 가볍지 않다. 지나치게 연배를 강조하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의도치 않은 거리를 만들고, 반대로 과도한 친근함은 무례가 되기도 한다.

말은 인식을 지배하고, 호칭은 관계의 온도를 결정한다. 어르신, 선생님, 혹은 아버님과 어머님까지 어떤 단어를 선택하든 그 바탕에는 상대를 한 사람의 독립된 주체로 대하는 존중이 담겨 있어야 한다. 시니어의 활동 영역이 날로 넓어지는 요즘, 진정한 존중이란 타인을 특정 나이 테두리에 가두기보다 한 개인으로서의 인격과 삶의 궤적을 온전히 바라봐 주는 언어에서 시작될 것이다.

이제 60대 중반을 향해 가는 나 역시 여전히 새로운 일상을 배우고 세상과 소통하며 살아가는 현재진행형의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어르신'이라는 호칭이 다소 낯설게 다가왔던 것처럼, 우리 모두는 저마다 마음에 품고 있는 자신의 온도가 있을 것이다.

카페를 나서며 문득 궁금해졌다. 나이를 떠나 우리는 저마다 어떤 말로 불릴 때 스스로의 존재를 가장 존중받는다고 느낄까. 불필요한 관념을 내려놓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호칭을 고민하는 것, 세대 간의 아득한 벽을 허무는 따뜻한 소통은 어쩌면 그 작고 섬세한 언어의 선택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은 오늘, 어떤 호칭으로 불릴 때 가장 나다운 온기를 느끼시는지 사뭇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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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간 공직에 몸담고 퇴직했습니다. 지금은 은퇴 이후의 삶을 다시 배우는 60대 인턴으로 살고 있습니다. 소소한 일상에서 인생 2막의 의미를 발견하는 글을 씁니다.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중장년과 노년의 삶을 기록하며, 나이 들어서도 배울 수 있고, 성장할 수 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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