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예작품앞 피카소
정미란
특히 피카소의 도예작업에는 에디션(édition), 즉 하나의 원형을 바탕으로 일정 수량을 제작하는 방식이 활용되었다. 이를 통해 그의 도예는 소수의 유일한 작품에 머무르지 않고 보다 많은 사람에게 소개될 수 있었다. 이에 작품마다 제작자와 공방, 에디션 등을 확인할 수 있는 표시가 남겨져 있어 작품의 제작과 인증을 확인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한다.
도자는 피카소에게 새로운 조형 실험의 장이었다. 평면의 캔버스를 떠나 둥근 표면과 질감을 가진 흙 위에서 그는 형태가 가진 고정된 의미를 끊임없이 변화시켰다. 붓으로 그리고 새기고, 사물을 찍어 흔적을 남기며, 기존의 형태를 다른 존재로 변형시켰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불의 힘이 개입하면서 흙은 또 다른 물질적 생명력을 얻었다. 스페인에서 태어난 피카소에게 평생의 중요한 주제였던 투우 역시 도예 속으로 들어왔다.
투우는 그에게 단순한 스포츠나 오락이 아니었다. 인간과 동물, 삶과 죽음, 긴장과 해방이 충돌하는 극적인 무대였다. 발로리스의 뜨거운 태양과 생동 하는 분위기 속에서 투우는 피카소 특유의 선과 형태로 다시 태어났다. 회화에서 보여주었던 큐비즘의 다시점은 도예에서도 독특한 방식으로 이어진다.

▲ <회색음각주전자>
정미란

▲ <얼굴과 부엉이-1958>
정미란
피카소의 도예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는 바로 '변형'과 '반복'이다. 둥근 접시는 어느 순간 얼굴이 되고, 화병의 몸체는 새나 동물의 형상으로 변한다. 한쪽에서 바라본 여인의 얼굴은 시선을 옮기는 순간 올빼미의 모습으로 바뀌고, 화병의 둥근 둘레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또 하나의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하나의 대상 안에 여러 시선과 이미지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피카소에게 반복은 단순한 복제가 아니었다. 같은 모티프를 끊임없이 변주하면서 형태가 어디까지 달라질 수 있는지 탐구하는 과정이었다. 익숙한 사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평범한 접시와 화병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바꾸어놓는 순간, 그의 상상력은 다시 시작된다.
어쩌면 피카소에게 흙은 가장 자유로운 캔버스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흙을 통해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자신이 보고 상상한 세계로 다시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피카소가 평생 추구했던 예술의 본질을 만날 수 있다.

▲ <투우와 사람들 -A.R182>-1953
정미란

▲ <투우-A.R 182>-1953
정미란
예술은 완성된 하나의 답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형하고 다시 바라보는 과정으로 표현되었다. 65세에 시작한 피카소의 도예는 새로운 재료 앞에서 다시 어린아이처럼 질문하고 실험했던 예술가의 또 다른 시작이었다. 캔버스 위에서 시작된 그의 상상력은 흙으로 옮겨갔고, 흙은 불을 만나 다시 태어났다. 그렇게 피카소는 생의 후반에도 멈추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냈다.
피카소에게 나이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예술을 시작할 수 있는 하나의 문이었을까. 흙을 만지는 순간에도 그는 새로운 세계를 꿈꾸었고 그 꿈은 다시 태어났다. 누구에게나 예술은 언제나 다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피카소의 예술에는 끝이 없어 보인다. 한편, 전시 <피카소 도예 : 발로리스의 여름>은 오는 10월 11일까지 진행된다.

▲ 얼굴 석판화 프린트 -1948
정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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