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획전에서 공개된 '김구 서명문 태극기' 원본
김경준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김구 서명문 태극기'이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는 백범이 1941년 3월 16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명의로 벨기에 신부 매우사(梅雨絲, 본명 샤를 미우스 Charles Meeus)에게 준 태극기이다. 매우사 신부는 이를 도산 안창호의 부인 이혜련에게 전달했고, 이를 소중히 간직해 오던 안창호 유족들은 1985년 3월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태극기 오른편에 백범의 친필 묵서가 새겨져 있다. 그 내용을 쉬운 말로 옮기면 아래와 같다.
"매우사 신부에게 부탁하오. 당신은 우리의 광복 운동을 성심으로 돕는 터이니 이번 행차의 어느 곳에서나 우리 한인을 만나는 대로 이 의구(義句, 올바른 글)의 말을 전하여 주시오. 지국(止國, 망국)의 설움을 면하려거든, 자유와 행복을 누리려거든, 정력·인력·물력을 광복군에게 바쳐 강노말세(强弩末勢, 힘을 가진 세상의 나쁜 무리)인 원수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독립을 완성하자. 1941년 3월 16일 충칭에서 김구 드림"
확실히 원본이 주는 울림은 남다르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데니 태극기', 서울 진관사 소장 '진관사 태극기'와 더불어 국보 승격이 검토 중이라고 한다. 어쩌면 곧 국보가 될지도 모를, 백범의 마음이 담긴 역사적 태극기를 마주할 기회가 또 있을까.
백범 김구, 그가 차를 이야기한 이유
이번 특별전에서는 백범의 친필 유묵들도 대거 전시되고 있다. '盡忠報國(진충보국)', '鐵血精神(철혈정신)' 등. 백범의 굳센 정신이 담긴 글씨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속에 절로 호연지기가 일어난다.
서예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지만, 굵고 투박한 듯한 글씨가 '뭉우리돌'과 같은 백범의 삶을 닮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글씨의 획마다 조금씩 흔들림이 보인다. 1938년 중국 창사에서 저격을 당한 '남목청 사건'의 후유증으로 수전증을 앓았던 흔적이라고 한다. 백범 스스로는 이를 '총알체'라 불렀다고 한다. 그의 글씨에는 목숨 걸고 싸운 독립 투쟁의 역사가 담겨있다.

▲ 1949년 6월 19일 백범이 서거 일주일 전 쓴 것으로 추정되는 칠언시 <낙화만지>(落花滿地) 중 "睡起茶多酒盞疎(수기다다주잔소: 잠 깨어 차는 자주 들고 술잔은 뜸해지네)를 쓴 유묵
김경준
발길은 <낙화만지>(落花滿地)라는 제목의 칠언시를 옮겨 적은 유묵 앞에서 멈췄다. 이 유묵은 1949년 6월 19일, 그러니까 백범이 서거 일주일 전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친필 유묵으로 이번에 처음 대중에 공개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두 눈길을 끈 대목이 있다.
"睡起茶多酒盞疎(수기다다주잔소: 잠 깨어 차는 자주 들고 술잔은 뜸해지네)
己丑六月十九日 七十四歲 白凡 金九(기축 6월 19일 74세 백범 김구)"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았지만, 백범의 앞에는 조국의 분단을 막고 통일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막중한 과제가 놓여있었다. 그러나 정세는 백범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나라 걱정에 마음껏 취할 수도 없었던 백범은 술 대신 차를 마시며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고, 앞으로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구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은 그가 차분하게 미래를 구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불과 일주일 뒤, 이승만 정권의 사주를 받았다는 논란에 오른 육군 소위 안두희의 흉탄에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났다. 일주일 뒤 백범에게 닥칠 운명을 알기에, 더 씁쓸함과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유묵이었다.
관람을 마친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곧장 한 일은 자사호로 보이차를 내린 뒤 김구 선생의 영전에 뜨거운 차 한 잔을 올리는 것이었다. 묵을수록 더 깊은 향을 뿜어내는 보이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에게 더욱 진한 향기로 다가오는 백범의 발자취와 닮았다.

▲ 백범 김구 선생 영전에 보이차를 올리다
김경준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어지럽게 함부로 걷지 말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가는 이 발자취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스스로의 발자취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으로 생각했던 백범 김구. 이번 주말, 독립기념관에서 백범의 발자취를 톺아보며 백범의 삶이 나의 삶에 어떠한 이정표가 될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전시정보]
전시명 : 백범의 생각과 뜻, 온 세상을 비추다
전시기간: 2026.8.15. ~ 12.13.
전시장소: 독립기념관 제7관 내 기증자료전시실, 특별기획전시실 Ⅱ

▲ '백범의 생각과 뜻, 온 세상을 비추다' 전시포스터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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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空港亭)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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