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SK하이닉스 3공장 앞에서 집회 중인 주민들 용인반도체산단 백지화, 송전탑 건설 반대를 외치며 집회 중인 주민들
환경운동연합
차량 20대가 옥산을 떠나 SK하이닉스 3공장 정문 건너편에 섰다. 낯선 자리였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쪽에는 송전선로가 실어 나를 전기를 쓰게 될 공장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그 송전선로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청주는 1988년 이래 반도체가 쌓아 올려진 도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얼마 전 청와대에서 청주에 100조 원을 더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 뒤로 전력과 용수를 어떻게 댈 것인가가 지역의 숙제로 남았다.
박옥주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장은 이 계획이 통과된 시점을 짚었다. 2024년 12월, 사람들이 탄핵 광장에 나가 있던 때 기습적으로 통과됐다고 했다. 반도체특별법도 2025년 1월, 역시 광장이 열려 있던 중에 통과됐다고 했다.
정누리 삶과노동을잇는배움터 활동가는 옆 공장을 가리켰다. 반도체 공장은 막대한 물과 전력을 쓰고, 시민에게 잘 공개되지 않는 유해물질도 쓴다고 했다. 얼마 전 불산 유출 사고를 통해 이를 체감했다고 그는 말했다.
지난 6월 1일 오전, 길 건너 4캠퍼스 6층 가스룸에 불이 났다. 인체에 독성이 있는 불소가 퍼져 현장에 있던 10명 가운데 7명이 병원으로 옮겨졌다. 직원 3600명이 밖으로 나왔다. 열흘 뒤에도 같은 캠퍼스에서 다시 불이 나 4000여 명이 대피했다. 그달 들어 세 번째 화재이자 화학물질 누출이었다.
노진철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반도체 산업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먼저 밝혔다. 문제는 산업의 발전 자체가 아니라 그 발전을 위해 다른 지역 주민에게 초고압 송전선로를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편익은 특정 지역에 모이는데 부담은 54개 지역으로 흩어진다고 했다.
오전 9시 30분, 사람들은 횡단보도를 건넜다. 날이 몹시 더웠다. 건너편 차에서 우산이 나눠졌다. 폭염에 우산을 쓰고 걷는 행렬이 만들어졌다. 도청까지 7km였다.
행렬이 성안길로 들어서면서 가두방송이 시작됐다. 이 송전망은 전국 54개 지역을 지난다. 전체 길이는 3855km다. 충북에서는 청주와 충주, 제천, 보은, 옥천, 영동, 증평, 진천, 괴산, 음성을 지난다.
오전 11시 30분, 충북도청 서문 광장에 닿았다. 회견문은 충북을 지나는 노선을 하나씩 읽어 내려갔다. 청주의 신계룡-북천안, 동서를 관통하는 신영주-신중부, 제천의 신평창-신원주, 충주와 음성의 신원주-동용인, 남북으로 관통하는 신장수-무주영동과 무주영동-신세종, 그리고 신서원-신진천. 모두 345kV다. 이름을 다 부르고 나면 남는 것은 하나였다. 단양을 뺀 충북 10개 시군 모두였다.
오후 2시에는 오송에서 청주 주민을 대상으로 한 군산–신천안 송전선로 건설 사업설명회가 열렸다. 지역 주민과 행진단은 설명회장에 들어가 단상을 점거했다. 누구도 이런 방식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다. 순서를 기다려 마이크를 잡고, 조곤조곤 우리 주장을 펴고 싶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누구도 우리에게 말할 순서를 주지 않았고, 우리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해남에서부터 지금까지 걸어온 이유이고, 많은 이들이 피켓을 든 이유다.

▲피케팅 중인 주민들 오송에서 열린 송전선로 건설 사업설명회에서 단상에 올라 송전탑 반대 피켓을 들고 시위 중인 주민들
환경운동연합
우리가 청주에서 걷던 그 시각, 남해안에는 다른 종류의 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전날 하루 거제에 654mm의 비가 내렸다. 2002년 태풍 루사 이후 가장 많은 일강수량이다. 사흘을 합치면 거제 927mm, 통영 751mm였다. 거제에는 한 시간에 124.5mm가 쏟아졌다. 기상청은 200년에 한 번 나올 법한 폭우라고 설명했다. 통영의 시간당 97.4mm도 100년에 한 번 겪을 법한 극한 호우였다.
그런데 같은 경상남도 안에서 밀양과 의령과 창녕은 여전히 가뭄 경계 단계다. 18일 기준 도내 평균 저수율은 48.4%로 평년의 70% 수준에 머물렀다. 올해 누적 강수량 자체가 평년의 78%에 그친 탓이다. 어떤 곳은 200년 만의 비에 잠기고, 그 옆에서는 저수지가 마른다. 이것이 기후위기의 얼굴이다. 물은 더 극단으로 몰리고, 그 사이에서 농사와 생계가 무너진다.
2750만 톤
녹색전환연구소는 메가프로젝트에 담긴 AI 데이터센터와 서남권 반도체 팹 4기가 가동에 들어가면 온실가스가 한 해 약 2750만 톤 더 나올 것으로 추산했다. 전력 소비에 따른 간접 배출이 데이터센터 1837만 톤, 반도체 팹 629만 톤이고, 반도체 공정의 불소가스 등 직접 배출이 283만 톤이다.
이 숫자는 정부가 스스로 세운 목표에 견줘야 크기가 드러난다. 2035 NDC에서 우리나라가 잡은 전력 부문 배출량 목표는 7000만~8830만 톤이다. 메가프로젝트의 간접 배출만으로 그 목표의 28~35%에 이른다. 순배출량 목표와 견주면 8~9%다.
먼 이야기도 아니다. 데이터센터는 2029년까지 8.4GW가 먼저 들어선다. 2~3년 안에 상당한 전력이 필요해지는 만큼 정부가 LNG 발전 이용률을 높이고 석탄발전 폐쇄 일정을 미루는 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강원 동해에 2.4GW 규모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면 그 지역 석탄발전 이용률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거제에 200년 만의 비를 쏟아붓고 밀양의 저수지를 말리는 그 위기를, 이 계획은 앞당긴다. 지역은 송전탑을 떠안고, 그 송전탑이 실어 나를 전기가 만드는 기후재난을 떠안는다. 석탄발전 폐쇄가 미뤄지면 발전소를 낀 지역이 한 번 더 떠안는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환을 말한다. 그러면서 여전히 장거리 송전선로를 짓고, 그것도 앞당겨 짓겠다고 한다. 발전원을 무엇으로 바꿀 것인가만 논의해서는 이 순환이 끊기지 않는다. 전력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구조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필요한 곳에서 만들어 쓰고, 그 결정을 주민과 함께 내려야 한다.

▲충북도청앞 기자회견 송전탑 반대를 외치며 충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주민들과 행진단, 주민들은 지자체가 정부에 맞서 지역민의 이익을 대변해 주길 원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옥산의 아침으로 돌아가 본다. 종이 위의 선은 밟아도 된다. 그러나 그 선이 종이에서 일어나 땅 위에 서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십 미터 높이의 철탑이 되고, 논과 밭과 마을을 가로지르고, 한번 서면 수십 년을 그 자리에 있는다.
이날 걸은 사람들은 산업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여러 번 말했다. 다만 이익은 한곳에 모이고 부담은 54개 지역으로 흩어지는 셈법을 누가 맞춰 놓았는지 물었다. 그리고 그 부담의 목록에 이제 기후재난이 하나 더 얹혔다.
무엇을 위한 송전탑이며, 무엇을 위한 메가프로젝트인가. 행진단은 8월 20일 청와대 앞에 선다.

▲용인반도체산단 전면 재검토 요구 국민 서명 웹자보 물도, 전기도 없이, 폐기물에 대한 대책도 없이 졸속으로 추진된 용인반도체산단. 기후위기를 역행하는 정책을 전면 재검토를 위해 서명을 받고 있는 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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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반도체 송전망 따라 걸었다... 거제의 폭우가 던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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