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청을 향해 행진하는 시민들 7월 30일 해남에서 출발한 행진단과 용인에서 결합한 시민들이 용인시청을 향해 행진 중인 모습
환경운동연합
도착지에 사는 사람
나는 경기도에 산다. 지난 스물한 날 동안, 내가 사는 곳으로 전기를 보내기 위해 그어진 선 위를 걸었다.
경기도에서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활동을 해왔다. 경기도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줄이겠다며 대규모 재생에너지 확대를 공표했고, 나는 그 약속을 믿었다. 도민들도 믿었다. 마을마다 재생에너지 협동조합을 세우고 지붕에 패널을 올리며, 지역에서 만든 전기를 지역에서 쓰는 구조를 조금씩 쌓아 올렸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이 발표되면서 그 계산이 무너졌다. 도민들이 몇 해에 걸쳐 늘려온 양과는 견줄 수 없는 규모였다. 그 전기를, 그것도 두 기업이 쓸 전기를 용인 한 곳에 대기 위해 용인시와 경기도와 정부가 앞다투어 정책을 내놓았다. 물도 전기도 없는 땅이라 도민들은 발표 당시 당황했다.
그러나 찬성은 여야를 가리지 않았다. 그래서 도민들과 함께 국가산단 계획 승인 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법으로라도 시간을 벌자는 것이었다.
스물한 날 동안 반복된 하나의 질문
송전선로를 따라 걷는 기록을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리면서 반복해 마주친 말이 있다. 전기 없이 살아보라는 말이다. 국민이 쓸 전기를 막는 것이 아니라 두 기업이 쓸 전기를 묻는 것이라고 답해왔다. 내년이면 공장이 돌아가는데 무슨 소리냐는 말도 있었다. 내년에 가동될 곳은 2016년부터 추진돼 온 일반산단이고, 지금 묻는 것은 그 뒤에 발표된 국가산단이다. 전력 공급 계획부터 서로 다르다.
길 위에서 들은 질문은 그보다 단순했다. 우리가 쓰지도 않는 전기를 위해, 왜 우리에게 묻지도 않고 결정했느냐는 것이었다. 해남에서 나온 말이 고창에서 나왔고, 진안과 대전에서 나왔고, 예산과 당진과 천안에서 나왔고, 논산과 청주에서 다시 나왔다. 지역이 달랐을 뿐 문장은 하나였다.
정부는 다른 답을 내놓았다. 철탑 개수를 줄이고, 마을 가까운 구간은 지중화하고, 지원을 늘리겠다고 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노선을 통합하면 신규 철탑을 상당 폭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줄이는 일 자체를 폄하할 이유는 없다. 다만 그것은 우리가 물은 것에 대한 답이 아니었다. 통합만으로 그만큼 사라질 수 있는 철탑이었다면, 애초의 계획은 무엇을 근거로 그어졌는가. 조정할 수 있는 수요였다면, 그 수요는 어떻게 계산된 것인가. 남는 몫은 여전히 아무도 묻지 않은 계획이다.
요구해온 것은 감축의 폭이 아니라 수요 자체를 검증하는 절차였다. 부담을 줄이는 방법은 논의되고 있다. 부담을 질지 말지는 논의되지 않고 있다.
용인 국가산단에 전기를 대기 위해 계획된 국가 기간 전력망 설비는 모두 99개다. 송전선로 70개와 변전소 29개다. 예정된 송전선로 길이만 3855km, 그 경로에 놓인 지역이 54곳이다. 전남과 광주, 전북, 대전, 충남, 충북, 경기에 걸쳐 있다.

▲기자회견 후 진행 중인 퍼포먼스 용인반도체산단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건설될 송전탑은 대기업에 특혜를 몰아주고, 환경 파괴와 심화되는 기후위기의 모든 피해는 지역이 지게 된다는 의미
환경운동연합
물도 마찬가지다. 용수 수요는 2031년 하루 6만 1000㎥에서 2050년 76만 4000㎥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1단계로 팔당댐 여유량과 하수 재이용수를 써서 하루 20만㎥을, 2단계로 화천댐 물을 끌어와 하루 60만㎥을 대겠다는 계획이다. 전기도 먼 곳에서 가져오고, 물도 먼 곳에서 가져온다.
숫자로는 하나의 선이고 하나의 관로다. 땅 위에서는 농사짓는 밭이고 대대로 살아온 마을이다. 이미 지어지는 선로가 그 땅에 무엇을 하는지는 확인할 수 있다.
경북 봉화와 울진, 강원 삼척의 동해안~신가평 500kV 초고압직류송전선로 공사 현장에서 산림 훼손과 소규모 산사태 37곳이 확인됐다. 신한울 핵발전소에서 경기 가평까지 230km 구간에 440여 기의 철탑을 세우는 사업이다. 그중 16곳이 봉화에 몰려 있다.
백두대간에 드는 봉화 춘양면 애당리에서는 너비 15m, 길이 70m의 흙돌쓸림이 일어났다. 산을 깎고 보강하려 쌓은 흙자루가 찢어져 흘러내렸고, 흙과 돌은 그대로 방치돼 있다. 그 아래에 주민들의 집이 있다. 급경사지가 많아 큰비가 오면 산사태가 잦은 곳이다. 2008년과 2023년에도 이곳에서 사람이 죽었다.
훼손 범위는 허가를 넘어섰고 관련 법 위반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후에너지환경부와 한국전력은 이를 보고하거나 신고하지 않았다.
이미 지어지는 선로에서 벌어진 일이다. 앞으로 3855km를 더 긋겠다고 한다.

▲용인시청 앞 기자회견 후 퍼포먼스 용인반도체산단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세워질 송전탑이 지나 올 지역이 나타나 있다
환경운동연합
함께 살자는 말
19일 용인시청 앞에서 우리는 "해남에서 용인까지, 함께 살자"고 외쳤다. 이 구호를 두고 오래 생각했다. 누군가의 삶이 무너져야 내가 편안할 수 있다면 그것은 편안함이 아니다. 해남도 호남도 충청도 경기도도 그리고 용인도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 도착지에 사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이날 마이크를 잡은 이들의 말도 다르지 않았다. 반도체와 인공지능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여러 번 나왔다. 이익은 기업이 가져가고 피해와 사회적 비용은 주민이 떠안는 셈법을 바꾸자는 것이었다. 용인 안에서도 절차를 건너뛴 승인을 다시 따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건설 현장의 노동 조건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권, 규제를 풀어 장시간 노동을 제도화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우려도 놓였다.
산업을 세우는 일과 사람을 지키는 일이 왜 늘 반대편에 놓여야 하는지, 그 자리에서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행진은 8월 20일 서울로 향한다. 국가산단 계획 승인 취소소송 항소심 변론에 맞춰 서울고등법원 앞에 서고, 삼성전자 서초사옥을 지나 청와대 앞에 선다. 승인 취소에 동의하는 시민들의 서명도 그날 함께 전한다.
승인이 취소되면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간다. 지도 위에 그어진 노란 선도 다시 검토될 수 있다. 법정으로 간 이유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질문부터 달라져야 한다. 어디에서 더 공급할 것인가가 아니라 정말 이만큼 필요한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어디에서 전기를 끌어올 것인가가 아니라, 전력을 많이 쓰는 산업을 어디에 어떤 규모로 둘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지역의 물과 에너지와 생태계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산업의 규모와 입지를 정하는 일, 그것이 지산지소다.
삼가역에서 용인시청까지는 짧았다. 스물한 날을 걸어와 마지막으로 걸은 구간치고는 허무할 만큼 짧았다. 그 길 어디에도 철탑은 없었다. 여기는 선이 도착하는 곳이고, 도착한 뒤에는 아무것도 서지 않는 곳이다.
해남의 논에도, 고창의 밭에도, 진안의 고원에도, 예산의 과수원에도 그 선은 서 있게 된다. 스물한 날 동안 요구는 하나였다. 대통령이 직접 답하라는 것이다. 철탑을 몇 기 줄이겠다는 답 말고, 이 전기가 정말 이만큼 필요한지에 대한 답이다. 행진단은 청와대 앞에서 밤을 지새운다. 걷는 일은 여기까지가 우리 몫이다.

▲행진에 참여 중인 시민 행진단이 향하는 곳은 청와대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응답하라
환경운동연합
글쓴이: 김현정 경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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