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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서를 믿고 텃밭에 뿌린 네 가지 씨앗

    기다렸던 비가 다녀간 시골 쉼터... 마당 풀 정리 후 여름 풋사과를 맛보는 하루

    등록 2026.08.24 14:11수정 2026.08.24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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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해 봄부터 오도이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금요일 퇴근 후, 주말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시골 쉼터 '느루뜰'로 향합니다. 이 글은 시골 쉼터에서 '사는 이야기'입니다.[기자말]
    "연보라색이 참 예쁘다. 이름이 '꽃범의 꼬리'라네."

    봄에 싹을 틔운 후 참으로 오랫동안 삐죽 키만 키우더니 하늘하늘 연보라 꽃을 조롱조롱 매달았다. '꽃이 맞을까?' 하며 볼 때마다 의심스러웠다. 꼬박 7개월을 기다려 만난 고운 얼굴이다. 지난해 9월에 이전 근무지 선생님이 준 꺾꽂이 식물 중 하나였다. 받았을 때 모습은 단순한 초록색 나무젓가락 같았다. 이 아이가 다 자란 후엔 어떤 모습일지, 어떤 꽃을 피울지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반가운 한여름 꽃들

     꽃범의 꼬리, 마리골드, 상사화 모습
    ▲ 꽃범의 꼬리, 마리골드, 상사화 모습 이정미

    폭염을 지나며 나의 꽃밭에는 해바라기, 백일홍, 코스모스도 생기를 잃었다. 다홍빛 마리골드와 자람 속도가 느린 늦둥이들이 드문드문 꽃을 피워 허전한 마음에 위안이 되고 있다. 그러던 중 '꽃범의 꼬리'가 활짝 피어 화사한 기분을 느끼게 하니 반갑다.

    '꽃범의 꼬리'는 줄기를 따라 꽃이 피어나는 모습이 마치 범(호랑이)의 꼬리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처럼 고운 연보라 꽃을 보며 '범'의 꼬리를 떠올렸다니 나로선 갸우뚱해진다. 늘씬한 줄기 끝에 달린 길쭉한 연두색 순 속에는 꽃봉오리가 가득 들어차 있다.

    '몇 주간은 새 꽃이 계속해서 피어나겠지' 생각하니 기쁘다. 꽃의 원산지는 미국, 캐나다 등 북아메리카이다. 추위에도 강해 노지 월동도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지난겨울 한파에도 죽지 않고 잘 버텨 주었다. 봄기운이 돌자 서둘러 튼튼한 초록 싹을 틔웠고, 여름 폭염도 잘 견뎠다. 꽃이 귀한 계절에 오랜 기다림에 화답하듯 환한 얼굴을 드러내니 참으로 예쁘고 고맙다.

    텃밭 한편에 마리골드가 한창이다. 봄에 이곳저곳 흩어져 자라고 있던 새순을 블루베리 화분 옆 화단에 옮겨 심었다. 창고로 쓰는 컨테이너 앞, 쉼터 서쪽 빈터에도 줄지어 옮겨 심었다. 손바닥만 하던 새순은 계절과 함께 키와 몸집을 불리더니 나무처럼 자랐다.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면서 하나둘 다홍색 꽃을 피우더니, 지금은 한 아름 꽃다발이 되었다.


    가까이 다가가면 마리골드의 독보적인 허브 향에 정신이 맑아진다. 잎을 따서 손가락 끝으로 비벼 코끝에 대면 박하 향 같은 상쾌함에 눈과 코가 뻥 뚫리는 것 같다. 마리골드는 향이 진해 벌레나 해충이 꼬여 드는 것을 막아준다. 날이 포근하면 늦어도 11월 초순까지는 꽃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유용한 꽃인지 모르겠다. 농막 이웃 언니네 뒤뜰에는 분홍 상사화가 한창이다.

    가을 채소 씨앗 뿌리기


    지난주에는 그토록 기다리던 비가 내렸다. 폭염에 바짝 타들어 갔던 흙도 마음껏 목을 축였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서둘러 일복으로 갈아입었다. 땅이 촉촉해지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남편은 가을 채소 씨앗을 놓을 두둑을 만들었다. 폭신한 흙의 감촉이 좋은지 맨발로 왔다 갔다가 놀이하듯 일했다. 나는 먼저 꽃밭의 풀을 정리했다. 풀들이 비 오는 날 얼마나 신났을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흙이 부드러워 풀이 쑥쑥 뽑혔다. 장갑 낀 손이지만 물기를 머금은 흙의 촉감이 기분 좋았다. 자세히 보니 꽃씨가 떨어진 흙에는 아주 작은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비 덕분이다.

    '운이 좋으면 또 꽃을 볼 수 있겠지.'
     가을 채소 씨앗을 놓을 두둑을 만들고 상추, 케일, 시금치 씨앗을 심었다.
    ▲ 가을 채소 씨앗을 놓을 두둑을 만들고 상추, 케일, 시금치 씨앗을 심었다. 이정미

    남편이 곱게 만든 밭두둑에 상추, 시금치, 케일, 당근 씨앗을 심었다. 아직 폭염이 계속되고 있어 이 아이들이 싹을 제대로 틔울지 염려된다. 아침저녁으로 내리는 이슬, '처서'라는 절기, 채소의 생명력을 믿어 보기로 한다. 예보에는 없지만, 주중에 비가 조금이라도 내려주면 좋겠다는 기도도 함께.

    풋풋한 여름 사과

    여름 풀들의 기세는 아무도 못 말리지만, '쉼터 앞마당은 정갈하게'라는, 스스로와의 다짐을 지키고 싶다. 마당이 깨끗해지면 덩달아 내 마음도 깔끔해지는 것 같다. 올 때마다 마당 풀 정리 작업을 빼놓지 않고 하니 관리에 큰 힘이 들지 않는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 놓고 풀을 뽑기 시작하면 잡다한 생각들이 사라진다. 돌과 흙, 풀을 만지다 보면 어느새 몸은 땀으로 흠뻑 젖는다. 그러고 나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쉼터 앞마당 풀 정리 후 느루뜰 여름사과와 채소로 차린 아침을 먹었다.
    ▲ 쉼터 앞마당 풀 정리 후 느루뜰 여름사과와 채소로 차린 아침을 먹었다. 이정미

    올해 복숭아는 거의 맛보지 못했다. 겨우 건진 3개도 반은 벌레가 먹었다. 벌레 먹은 부분을 도려내고 맛보았더니 향긋하고 새콤달콤했다. 반면에 사과는 열다섯 개 정도 열렸다. 초록색 여름 사과이다. 연분홍 사과꽃이 피고 손톱만 한 열매가 맺히더니 시간과 함께 알이 굵어졌다. 과실이 아이 주먹만큼 커지는 일은 정말이지 신기하다. 시중에는 여름 사과가 한창이지만 느루뜰 사과는 늦둥이인지 오래 기다렸다.

    알이 굵은 것 세 개를 골라 땄다. 아직 풋내가 났다. 그래도 여름 사과의 아삭함과 싱싱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얇게 썰어 아침 샐러드에도 넣었다. 단호박을 찌고 요거트에 비스킷을 넣어 단출한 아침상을 차렸다. 오래 기다렸던 비가 다녀간 뒤, 기다렸던 채소 씨앗을 심고, 오랜만에 땀 흘려 일하고 나니 간소한 밥상이건만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가을채소 #꽃범의꼬리 #메리골드 #상상화 #여름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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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읽기, 글쓰기, 여행을 좋아합니다. 타인과 연결되어 자신의 성장을 너머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며 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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