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축제에서 '잊고 있던 사랑'을 만났다

여성 4인조 헤비메탈 록 밴드... 좋아하는 것에 모든 것을 건 열정에 자극 받은 날

등록 2026.08.24 09:12수정 2026.08.24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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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보는 친구들과 송도맥주축제(8월 22일부터 30일까지, 송도달빛축제공원)에 가기로 했다.

입장료(사전 예약 1만 원, 현장 결제 1만 2천 원)가 있긴 하지만 무제한으로 일부 맥주를 준다고 하니 맥주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들떠 있었다. 제공되는 맥주를 마시며 다양한 공연을 보는 건데 우리가 가는 주말에는 유명 밴드가 나온다고 했다.


한때 나는 맥주도 좋아했고 밴드 공연도 좋아했으나 이제는 시끄러운 장소보다는 조용하고 고즈넉한 곳에 가기를 즐긴다. 그러나 안 갈 수 없는 모임인지라 큰 마음 먹고 멀리까지 왔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비가 왔다. 우리는 우비를 입고 젖은 테이블에 앉아 공연을 보며 맥주를 마셨다.

디스코 타임, 런웨이 등 다양한 공연이 있었지만 멀리서 아까운 시간을 들여 여기까지 와서 고생하고 있는 나를 탓했다. 비도 오는데, 이런 날 집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며 쉴 수도 있었는데... 친구들에게 잠시 잠깐 질책을 받더라도 집에서 쉴 것을, 이게 무슨 고생인가 싶어 나 자신에게 짜증이 난다.

공연을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날카로운 소리가 들린다. 다음 공연을 할 밴드가 튜닝을 하고 있다. 여성 4명으로 이루어진 밴드인데 다들 머리부터 발끝까지 파격적이고 도드라진 차림새다. 공연이 시작되자 나는 깜짝 놀랐다. 요즘은 볼 수 없는 헤비메탈 록 밴드인데 젊은 여성 4명의 연주가 온몸에 소름을 돋게 한다.

나와 옆 친구는 뭐에 홀린 듯이 일어나 무대 앞으로 가고 있었다. 친구가 말한다.

"와, 나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이런 기분을 처음 느껴. 요즘 젊은 애들은 다들 랩을 하지 누가 이런 인기도 없는 메탈을 하니? 근데 얘네는 거의 내 딸 뻘 같은데 정말 카리스마 있고 연주를 잘 한다."


나는 끝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빠르고 강한 사운드의 헤비록인지라 가사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그들의 연주에 우리는 넋을 놓아버렸다. 자리로 돌아와서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저 인디밴드가 홍대에서 공연하면 같이 가자는 둥 50대인 우리가 지키기는 힘든 약속을 했다.

다음 공연은 피날레를 장식할 유명 밴드의 무대였다. 모든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앞으로 나갔다. 나는 테이블에 앉아 아까의 장면을 복기한다. 내가 감탄한 것은 그들의 '열정'이다. 젊음이나 파워, 카리스마는 '나도 한때는 저랬지'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그들의 뜨거운 열정은 기어코 내 가슴을 치고 만다.


밥 먹고 기타만 쳤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빈틈없는 연주에,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내 안의 닫힌 문을 발견한다. 먹고 살기 바쁘니까, 나이 들었으니까, 신경 쓸 일이 많으니까 라며 방치해 두었던 내 안의 뜨거움을, 그 문을 열어 꺼내본다.

 한때의 열정.
▲ 한때의 열정. 임혜영


처음 공연장에 도착했을 때는 모든 게 다 불만이었다. 여기는 왜 이리 멀고 시끄럽지? 하필 비는 왜 왔고 더운 우비를 입고 이 자리에 꼭 있어야 하나부터 시작해서 젊은이들이 그들의 흥을 발산하며 재능을 빛내는 무대를 보며 괜한 딴지를 걸었다.

그들의 젊음과 에너지를 시샘했던 걸까. 내가 그들 나이였어도 불평을 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뜨겁고 빛나는 열정과 에너지에 같이 스며들어 마음껏 즐기고 그 시간을 누렸을 것이다. 누군가의 말대로 시간이라는 비행기가 나를 '지금'이라는 곳에 데려왔다. '지금'이라는 현재에 나 자신을 집중했어야 할 때 나는 불평하기 바빴다.

오랜만의 즐거운 문화 생활이었지만 돌아오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하지만 나는 세 시간의 귀갓길 내내 생각에 잠겼다. 예술의 역할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오늘 나는 오감에 자극 받았다. 나에게 오감이 있었나라고 생각할 만큼 무감하게 타성에 젖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시간 대비 또는 가성비를 따져가며 시간과 돈을 쓰는데 익숙해 있었다. 그렇게 보면 오늘 하루는 시간도 돈도 무계획적으로 가성비 떨어지게 쓰고 말았다. 하지만 그런 잣대로는 측정할 수 없는 무언가를 얻었다. 누구에게나 있었고 현재도 가지고 있는 '열정'이다. 그런 열정이 우리에게 생기를 주고 때로는 살아가는 의미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시간에 쫓기며 살 것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독촉하며 세상의 흐름에 발맞추느라 여념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앞으로는 가끔 그 밴드를 떠올리지 않을까. 좋아하는 것에 모든 것을 걸고 노력하는 그 열정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나는 오랫동안 사랑을 놓치고 살았나 보다. 잃어버렸던 애착 인형을 다시 찾은 것처럼 마음이 놓인다. 앞으로 가끔 꺼내 보아야겠다. 오늘 만난 그들의 뜨거움을 떠올리면서.
#열정 #사랑 #맥주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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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현안과 문화에 관심이 많은 수학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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