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일 열린 국회 본회의.
남소연
2026년 8월 20일 '사회연대경제기본법'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14년 첫 법안 발의 이후 10년이 넘는 논의 끝에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등을 포괄하는 사회연대경제 정책의 기본적인 법적 틀이 마련된 것이다.
나는 이 법의 제정을 환영한다. 다만 그 의미를 사회적경제 조직에 대한 지원 근거가 하나 더 만들어졌다는 정도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법이 어떻게 시행되는가에 따라 지역 주민과 노동자, 생산자들이 자신들이 살아가는 지역의 경제에 더 큰 결정 능력을 갖도록 하는 제도적 기반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가능성을 '지역의 경제적 자기결정권'이라는 관점에서 보고 싶다.
지역에 무엇을 더 가져올 것인가를 넘어
우리의 지역정책은 오랫동안 지역에 무엇을 더 가져올 것인가에 집중해 왔다. 기업과 공장을 유치하고 산업단지를 조성하며 공공기관을 이전하고 국가재정을 투입하는 방식이다. 이런 정책은 여전히 필요하다. 그러나 생산시설이 지역에 있다고 해서 투자와 조달, 연구개발, 사업재편에 관한 중요한 결정까지 그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규모 공장이 지방에 있어도 전략과 금융, 본사 기능은 수도권에 집중될 수 있고, 지역에서 만들어진 이윤과 소득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외부로 빠져나갈 수 있다.
따라서 지역발전에서는 생산과 투자 규모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가치가 어디로 흘러가며, 그 흐름을 결정하는 권한이 어디에 있는지를 함께 물어야 한다. 내가 우리 사회를 '서울공화국'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울공화국은 인구와 기업의 수도권 집중만을 뜻하지 않는다. 기업의 전략 기능과 금융, 고급 서비스, 지식과 정보뿐 아니라 경제의 중요한 방향을 정하는 결정권이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된 공간경제구조를 의미한다.
'지역순환경제'는 이런 문제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다. 지역순환경제를 지역 상품을 구매하거나 지역화폐를 사용하는 정도로 좁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지역에서 만들어진 소득과 가치가 다시 지역의 생산과 사회적 재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조달, 금융, 투자, 기업 간 거래, 에너지, 돌봄 등 경제적 관계 전체를 재구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역 공공기관의 구매가 지역기업과 협동조합을 키우고, 지역의 저축이 지역 투자로 이어지며,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고용과 소득, 잉여가 다시 지역의 경제와 삶을 지탱하는 데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더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이런 경제적 흐름을 '누가 결정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나는 '지역의 경제적 자기결정권'을 그 지역의 생산과 사회적 재생산에 실제로 참여하고 그 결과에 영향을 받는 주민, 노동자, 지역기업, 협동조합, 지방정부와 시민사회가 자신들의 삶을 좌우하는 경제적 조건의 형성에 실질적인 결정 능력을 갖는 것으로 이해한다. 어떤 산업을 육성할 것인지, 공공기관의 구매력을 어디에 연결할 것인지, 지역의 자금을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 에너지전환의 이익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와 같은 문제는 모두 '지역의 경제적 자기결정권'과 관계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회연대경제의 의미도 달라진다.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이 중요한 까닭은 단지 '착한 경제'를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경제활동의 당사자들이 소유와 운영, 잉여의 사용에 참여할 수 있는 다른 형태의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최근 연구에서 나는 사람들이 협력하면서 만들어내는 이러한 집합적인 경제적 능력을 '공통역능(common potency)'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사람들이 공동생산과 공동소유, 공동구매, 공동금융을 조직하면 개별적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새로운 집합적 능력이 생겨난다. 하지만 협력의 능력이 존재하는 것과 그것이 실제 경제권력이 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수많은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이 존재하더라도 금융, 유통, 조달, 투자와 같은 핵심 경제영역을 기존의 대기업과 금융기관이 지배한다면 사회연대경제는 경제의 주변부에 머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통역능'은 조직 간 연합과 금융, 공동 인프라, 조달시장과 같은 제도적 기반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렇게 축적된 집합적 능력이 실제 경제의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될 때 그것은 '연합적 경제권력(associational economic power)'으로 발전할 수 있다.
사회연대경제기본법의 중요한 가능성이 여기에 있다. 특히 사회연대금융과 공공조달을 지역순환경제의 구조와 연결할 필요가 있다. 지방정부와 공기업, 대학, 병원 등 지역의 주요 기관들은 막대한 구매력을 갖고 있다. 이 구매력이 지역기업, 협동조합, 사회적기업과 연결되고 사회연대금융이 이들의 투자와 사업 확대를 지원한다면 공공재정은 단순한 지출을 넘어 지역의 생산기반을 형성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지역소멸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도 바꾼다. 지역소멸을 인구감소만의 문제로 보면 사람을 어떻게 지역에 붙잡아둘 것인가에 정책이 집중된다. 그러나 지역의 중요한 경제적 결정이 대부분 외부에서 이루어진다면 사람들이 자신의 지역에서 장기적인 미래를 설계하기는 어렵다. 지역에 생산시설이 있어도 그곳의 미래를 정하는 결정권이 수도권 본사에 있고, 지역의 금융자금과 소비지출이 계속 외부로 빠져나간다면 지역경제의 자기재생산 능력은 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역소멸 대응 역시 지역사회가 생산과 고용, 금융, 에너지, 돌봄에 관한 실질적인 능력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 사회연대경제는 주민들이 공동으로 자원을 소유하고 운영하며 그 성과를 지역사회에 다시 투자하는 경험을 축적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성패를 가르는 기준
다만 사회연대경제의 제도화에는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국가가 사회연대경제를 적극 지원하면서 정작 중요한 정책결정과 자원배분 권한을 중앙정부, 전문가, 중간지원조직이 독점한다면 사회연대경제의 외형은 커져도 현장의 자기결정 능력은 커지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이를 '재분리(re-separation)'의 문제로 본다. 사람들이 공동으로 만들어낸 역량이 조직과 제도로 축적된 뒤, 그 역량을 통제하는 권한이 다시 구성원들에게서 떨어져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사회연대경제 정책의 성과를 단순히 조직의 수나 지원예산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지역 내부의 거래와 조달이 얼마나 늘었는지, 지역의 금융이 지역 투자로 얼마나 이어지는지, 지역에서 발생한 잉여가 얼마나 다시 지역사회에 사용되는지, 주민과 노동자가 경제적 의사결정에 얼마나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있는지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
사회연대경제기본법을 '지역순환경제'와 결합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회연대경제기업을 개별적으로 육성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공공조달과 지역금융, 지역화폐, 공동구매, 공동물류, 주민참여형 에너지와 사회서비스를 서로 연결해야 한다. 이러한 관계가 지역 안에서 축적될 때 사회연대경제는 정부의 지원에 의존하는 작은 영역이 아니라 지역경제의 중요한 일부를 스스로 조직할 수 있는 힘으로 성장할 수 있다.
'지역의 경제적 자기결정권'은 외부와의 경제적 관계를 끊자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외부의 자본과 기업, 국가와 관계를 맺을 때 지역이 그 조건에 대해 일정한 협상력과 결정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대규모 투자가 들어온다면 지역 고용과 조달, 환경비용, 이익의 환류 문제를 지역사회가 함께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의 균형발전 정책도 이런 문제를 더 적극적으로 다뤄야 한다. 생산시설과 공공기관, 재정의 공간적 분산은 중요하지만, 주요 경제적 결정권이 계속 수도권에 집중된다면 지역은 여전히 외부에서 결정된 경제전략을 수행하는 공간으로 남게 된다. 균형발전은 이제 경제활동의 입지만이 아니라 경제적 결정권의 공간적 배치까지 문제 삼아야 한다. 사회연대경제기본법은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제도적 출발점이다.
나는 오랫동안 "지역에서 창출된 가치는 지역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제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덧붙이고 싶다. 지역에서 만들어진 가치가 다시 지역으로 돌아오는 것뿐 아니라 그 가치가 어디에 투자되고 어떤 목적으로 사용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능력 또한 지역사회에 축적되어야 한다.
사회연대경제기본법의 성패도 결국 여기에 달려 있다. 사회연대경제조직의 수가 얼마나 늘어났는지보다 이 법을 통해 지역 주민과 노동자, 생산자들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결정에 얼마나 더 큰 힘을 갖게 되었는지를 보아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이 법은 사회적경제에 대한 하나의 지원법을 넘어 경제민주주의를 지역의 삶 속으로 확장하는 제도적 기반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서울공화국'을 넘어서는 문제 역시 사람과 기관을 어디로 옮길 것인가를 넘어 경제적 가치와 결정권을 어떻게 더 민주적이고 공간적으로 균형 있게 배치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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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학생들에게는 정치경제학(사회경제학)을 가르치고 있고 또 이 이론적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지역경제, 지역불균형발전, 수도권 일극 체제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시민사회단체 지역순환경제전국네트워크의 공동대표와 학술단체 한국지역순환경제학회의 회장을 맡으면서, 우리나라 수도권 일극 체제의 공간적 위계, 내부 식민지화를 극복하기 위해 대안으로서 지역의 '경제적 자기결정권'을 주창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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