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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디에 꼬옥 맞는 집이 있을까

    [시로 읽는 오늘] 천수호 '섬망'

    등록 2026.09.03 09:03수정 2026.09.03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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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에서 기획한 '시로 읽는 오늘'을 연재합니다. 시로 아침을 시작한다면, 수많은 갈등과 전쟁도 줄어들 것입니다. 독자들은 힘 있는 언어를 익혀 튼튼한 내면을 가꿀 수 있고, 다양한 시를 통해 새로운 시민의 감수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의 첨예한 문제를 시인의 예민한 감각으로 길어 올린 한국시를 매주 두 편씩 선정하여, 추천 글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기자말]
    섬망
    - 천수호

    손가락이 무얼 더듬는다 기억의 어디에 닿을까 거부하는 것과 거부당하는 것으로 이루어진 문에 이걸 꽂을 곳은 어디인가 거기 한 겹이 또 있었군 뚫리지 않은 허공을 증명하기 위해 아직 골목에 서 있다 어디에 꼬옥 맞는 집이 있을까 다정하게 들어가서 누울 수 있는 단 하나의 방, 숱한 골목들이 손을 잡아끌지만 만질 수 없는 작은 방, 구름이 걸리고 바람이 걸리고 지는 꽃이 걸리고 산보다 더 멀리 있는 뿌연 황홀이 걸리는 좁은 입구, 주소도 없고 두드릴 문짝도 없는 열쇠를 들고 밤과 낮을 지나 태아와 소녀를 지나 좁은 블라인드 틈을 지나 유리에 부딪치는 허망한 소원을 지나 계속 허공을 휘젓고만 있다 빈터에는 소리가 닿지 않은 풀이 자잘한 꽃들을 피우고 꽃보다 이름이 더 깊이 숨은 풀의 운명을 아무도 연구하는 자가 없다 그래도 바짝 말랐다가도 물을 주면 다시 주둥이가 살아 움직이는 열쇠


    출처_시집 <내일의 유리 예보>, 타이피스트, 2026
    시인_천수호: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아주 붉은 현기증> <우울은 허밍> <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 <내일의 유리 예보>가 있다.

     잊힌 자리마다 몸이 자꾸 헛디딘다.
    ▲ 잊힌 자리마다 몸이 자꾸 헛디딘다. 박유하 시인(디지털 포엠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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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한 신경의학자가 쓴 책을 읽고 있다. 뇌와 신경에 가해진 외부적 자극이 어떻게 한 사람의 성격과 인식과 정체감을 바꾸어 놓는지 떠올리면 아득해진다. 흄의 말대로 우리가 '무수하고 잡다한 감각의 집적'에 불과하다면, 그 집적물이 살짝만 흐트러져도 우리는 낯선 존재가 된다. 천수호 시인의 '섬망'에서는 자기 자신의 의식 안을 헤매는 이를 발견할 수 있다. 손가락은 열쇠를 쥐고도 맞는 문을 찾지 못한 채 무수한 골목을 헤맨다. 찾아갈 주소도 두드릴 문짝도 없이, 다만 "바짝 말랐다가도 물을 주면 다시 주둥이가 살아 움직이는 열쇠"만 쥐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헤맴이 꼭 병리적인 상태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아무 이상 없는 '정상'의 하루 속에서도 종종 뿌연 미로 속을 걷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외부의 소리가 닿지 않는 곳에서 때때로 꽃은 피어나고, 우리는 어디선가 그 꽃을 본 적 있는 듯 그리워한다. (연정모 시인)
    #천수호시인 #섬망 #내일의유리예보 #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
    댓글1

    (사)한국작가회의는 이 땅의 대표적인 문인단체로서 표현의 자유와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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