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지 오웰 <1984>
민음사
조지 오웰의 <1984>는 안토니오 그람시가 개념화한 헤게모니(Hegemony)의 관점에서 읽을 때 가장 섬뜩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헤게모니란 단순한 물리적·강제적 지배를 넘어, 피지배층이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를 자발적으로 내면화하고 동의하도록 만드는 '문화적·사상적 지배력'을 의미한다.
그람시는 이탈리아 파시즘 정권에 의해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왜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서유럽 노동자들은 혁명을 일으키지 않고 체제에 순응하는가'라는 의문으로 연구를 시작하였다.
자본주의를 연구한 기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국가의 지배 방식인 '강제(Coercion)'에만 집중하였다. 하지만 그람시는 피지배계급(노동자)이 지배적 가치관을 자연스러운 것,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자발적 동의'를 보았다.
즉, 자본가 계급은 물리적 폭력 뿐만 아니라 지배에 대한 피지배자의 '자발적 동의'를 획득함으로써 지배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지배계급이 도덕적·지적 리더십을 발휘하여 피지배계급의 자발적 동의를 이끌어내고 사회적 리더십을 유지하는 상태를 그람시는 '헤게모니(Hegemony)'라고 정의하였다.
<1984>에서 지배 세력인 '당'은 이 헤게모니가 어디까지 극단화 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소설속 '빅 브라더'를 숭배하는 당의 지배 구조는 폭력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들은 언어, 역사, 그리고 인간적 유대감의 해체 라는 세 가지 축을 통해 지배를 정당화한다.
첫째, 당은 언어의 어휘를 줄임으로써 인간의 사고 자체를 제한한다. '반역'이나 '자유'를 표현할 단어 자체가 사라진 사회에서, 민중은 반역을 생각할 수조차 없게 된다. 둘째,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며,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라는 슬로건처럼, 당은 필요에 따라 과거의 기록을 끊임없이 수정한다.
대중은 일관성 없는 당의 발표를 받아들이도록 강요받고, 결국 이중사고를 통해 두 사실을 동시에 믿는 상태에 도달한다. 이는 자발적 동의를 넘어 사유 자체를 정지 시킴으로서 헤게모니는 당연시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셋째, 당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애정과 성욕을 억압하는 대신, 그 에너지를 2분 증오와 빅 브라더에 대한 애정으로 환원시킨다. 타인과의 연대는 파괴되고, 대중의 충성심은 오직 지배자에게만 향한다.
이러한 만행은 '프롤' 계급에게 자유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유지된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스스로 사고하지 못한다는 암묵적인 전재 아래 감시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프롤을 무시하는 태도보다 충격적인 대목은 '7년'이다.
오브라이언이 윈스턴에게 "당신을 7년 동안 감시해 왔다"고 말하는 장면은 가장 섬뜩한 설정이다. 당이 윈스턴을 발견 즉시 체포하지 않고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관찰하고 방치한 이유는 헤게모니의 극단을 보여 준다.
당의 목표는 단순한 처벌이 아닌 완벽한 개조에 있다. 반역자를 그대로 죽이면 그가 사상적 순교자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당은 윈스턴의 사상적 오염이 극에 달했을 때, 그의 영혼과 사상을 뿌리째 뽑아내고 그 자리에 당의 이데올로기로 채우려 했다. 윈스턴이 사상죄의 씨앗을 틔우고, 일기를 쓰고, 줄리아를 만나고, 형제단에 가입하는 모든 저항의 과정을 스스로 완성하도록 내버려둠으로써 그의 죄를 완벽하게 숙성시킨 것이다.
오브라이언에게 윈스턴은 인간의 정신, 기억, 감정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일종의 임상 실험 대상이었다. 결국 7년의 시간은 윈스턴을 단지 한 명의 사상범으로 처단하기 위함이 아니라, '당을 벗어난 자유의지란 존재할 수 없으며, 모든 저항조차 당의 통제 아래 있다'는 절대적 헤게모니를 완성하기 위한 당의 정교한 시나리오였다.
소름 끼치지만 어딘가에서 보거나 들은 듯한 이 시나리오는, 우리 사회 곳곳에 작거나 크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인공 윈스턴의 여정은 헤게모니에 대한 미약한 저항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잔혹하게 끝을 맺는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는 헤게모니의 완전한 승리를 선언하며 마침표이다. 물리적 굴복을 넘어 체제의 이데올로기를 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정당화하고 받아들인 순간, 윈스턴이라는 한 인간의 주체성은 완전히 소멸한다.
<1984>를 헤게모니의 눈으로 읽는 것은 소설이 쓰여진 지 7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중대한 시사점을 남긴다. 현대 사회 역시 특정 언어의 프레임이 존재하며 넘쳐나는 듯하지만 통제된 정보, 알고리즘이 형성하는 집단적 동의 속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둘러싼 지배가 물리적 강압이 아닌 당연하다고 믿는 상식과 동의의 형태로 다가올 때, 우리는 과연 윈스턴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우리가 '자발적 동의'라는 이름 아래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묻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미덕인 '좋은 게 좋은 거 아니야?'라는 생각은 스스로를 가둘지 모른다. 나서면 안 될 것 같은 유교 사상이 강한 한국에서, '왜 그래야 하는가' 혹은 '꼭 그래야 하는가'라는 생각은 씨앗이 될 수 있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우리의 사유는 계속 흘러야 하기 때문에.
1984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민음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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