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
김대성(Ai활용)
우리 부모 세대에게 교육비는 마지막까지 줄이지 않는 돈이었다. 살림이 어려워도 자식의 책값과 학비만큼은 아끼지 않았다. 논밭을 팔고 소를 팔아서라도 자식만큼은 배우게 하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교육은 당장 먹고사는 데 쓰는 소비가 아니라 다음 세대가 더 나은 삶을 살아가게 만드는 투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정부가 그 교육의 곳간을 다시 계산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2026년 8월 21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내국세 20.79% 자동연동 방식을 폐지하고, 전년도 교부금에 경상성장률과 학령인구 변화를 반영하는 새로운 산식을 적용하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학령인구 감소분의 35%만 반영하고 교부금 총액이 전년보다 줄면 차액을 보전하겠다고 설명한다. 현행 산식으로 확보되는 재원과 새 산식에 따른 교부금 사이의 차액은 미래대응기금 등을 통해 영유아·고등·평생교육 등에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표면적으로는 합리적으로 들린다. 학생은 줄고 있으니 초·중등교육에 들어가는 돈도 조정하고, 그 재원으로 대학과 영유아교육, 평생교육을 지원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은 학생 수를 생산량처럼 놓고 비용을 계산할 수 있는 산업이 아니다. 이번 개편의 핵심 문제는 당장 교육예산이 얼마 줄어드느냐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 1972년부터 55년 가까이 유지해 온 '교육재정의 안정적 확보'라는 국가적 원칙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55년을 지켜온 것은 돈이 아니라 국가의 약속이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은 1971년 제정돼 1972년 시행됐다. 법의 목적은 분명하다. 지역에 관계없이 교육기관을 운영할 재원을 국가가 보장해 '교육의 균형 있는 발전'을 이루자는 것이다. 현행법은 내국세 총액의 20.79%를 교부금의 주요 재원으로 정하고 있다.
교부율은 시대에 따라 조정돼 왔다. 국회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2001년 13.0%, 2005년 19.4%, 2008년 20.0%, 2010년 20.27%로 올라왔고, 지방소비세 조정 등에 따른 교육재정 감소분을 보전하면서 2019년 20.46%, 2020년 20.79%가 됐다. 단순히 교육청에 돈을 더 주기 위해 만들어진 숫자가 아니다. 국가가 맡긴 교육 책무와 세제 개편에 따른 재정 변화를 반영하면서 형성된 역사적 결과다.
대한민국은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장기불황을 여러 차례 겪었다. 그럼에도 유지해 온 중요한 원칙이 있다. 경제 상황에 따라 교육재정을 매년 국가의 임의적 예산 판단에 맡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육은 성과가 1년 뒤에 나타나는 사업이 아니다. 오늘 한 학급의 교사를 줄이고 기초학력 지원을 줄이며 노후시설 개선을 미룬 결과는 10년, 20년 뒤 사회 전체가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선진국이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에 꾸준히 투자한 나라가 선진국이 된다.
학생이 17% 줄었다고 학교도 17% 줄어드는가
정부 개편 논리의 가장 큰 전제는 학령인구 감소다. 학생이 줄었으니 교육재정도 학생 수에 맞춰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 현장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교육기본통계를 토대로 한 분석을 보면 2015년에서 2025년 사이 초·중·고 학생 수는 약 17% 감소했지만 전국 학급 수는 23만 4586개에서 23만 2126개로 겨우 약 1% 줄었다. 학교 수는 같은 기간 1만 1526개에서 1만 1871개로 오히려 증가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학생이 100명에서 80명이 됐다고 학교 건물의 20%를 철거할 수는 없다. 교장·교감·행정실과 급식실을 20%씩 줄일 수도 없다. 냉난방비와 전기료, 시설안전비 역시 학생 수에 정확히 비례해 감소하지 않는다. 농산어촌과 원도심의 작은 학교는 학생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없앨 수도 없다. 그 학교가 사라지면 지역 공동체 자체가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학교가 감당해야 할 교육수요는 복잡해지고 있다. 특수교육, 기초학력, 교육복지, 늘봄과 돌봄, 학교폭력 예방, 학생 마음건강, 다문화·이주배경학생 지원, AI·디지털교육, 노후학교 개선 등 과거보다 훨씬 많은 국가의 책임이 학교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특히 이주배경학생은 2015년 8만 2536명에서 2025년 20만 2208명으로 10년 동안 약 145% 증가했다.
학교에 와보면 더 분명하다. 여름철 냉방비를 걱정하고, 낡은 화장실과 창호를 고치며, 오래된 컴퓨터를 바꾸고, 기초학력이 부족한 아이 한 명에게 추가 프로그램을 붙이기 위해 예산을 맞추는 것이 학교의 현실이다. 특수학생 한 아이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해 교사와 보조인력을 배치하고,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아이에게 별도의 교육을 제공하는 것도 오늘의 공교육이다. 아이의 숫자는 줄고 있지만 아이 한 명을 제대로 교육하기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오히려 늘고 있다.
대학이 중요하다고 초·중등교육의 지붕을 뜯어서는 안 된다
고등교육 투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동의한다. 대학의 연구경쟁력을 높이고 지방대학을 살리며 AI 시대의 인재를 양성하는 일은 국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영유아교육과 평생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질문은 이것이다. 왜 그 재원을 초·중등교육의 안정적 재정기반을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마련해야 하는가.
고등교육이 국가적 과제라면 고등교육을 위한 국가재정을 별도로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영유아교육이 국가 책임이라면 그에 맞는 재원체계를 마련해야 하고, 평생교육이 중요하다면 평생교육 예산을 늘려야 한다. 한쪽의 교육재정을 떼어 다른 교육단계로 옮겨놓고 '생애주기 교육투자 확대'라고 부르는 것은 교육 전체에 대한 투자 확대와는 다르다.
초·중등교육은 사실상 모든 국민이 거쳐 가는 보편교육이다. 대학은 선택의 영역이며 진학하지 않는 국민도 있다. 대학 재정의 상당 부분이 사립대학을 통해 집행되는 우리 구조에서는 대학지원 확대와 함께 재정투명성과 책무성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초·중등 보편교육의 안정적 재원을 약화시키면서 대학지원을 늘리는 방식은 또 다른 교육격차를 만들 수 있다. 교육재정은 초등학생의 몫과 대학생의 몫을 서로 빼앗는 제로섬 게임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필요하다면 국가가 교육 전체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
방만한 사업이 문제라면 사업을 고쳐야 한다
교육청 예산 가운데 모든 사업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일부 시도교육청의 현금성 지원이나 선심성 사업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다. 교육계 내부에서도 이런 사업들이 "교육청에는 돈이 남아돈다"는 인식을 키워 교부금 개편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렇다면 답은 명확하다. 불필요한 사업을 찾아 없애고 재정 집행 기준을 강화하면 된다. 교육부의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교육청의 예산편성 원칙을 바로 세우면 된다. 교육과 직접 관계없는 현금성·선심성 사업을 엄격하게 심사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일부 비효율이 있다고 55년간 유지해 온 교육재정 확보 구조 자체를 흔드는 것은 처방의 크기가 지나치다. 빈대를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태워서는 안 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교육 없는 교육재정 개편'이다
절차 역시 아쉽다. 이재명 대통령의 제안으로 7월 8일 기획예산처와 교육부 장관 등이 참여하는 공개토론회가 열렸지만, 이후 정작 교부금을 운영하는 전국 17개 시도교육감이 공식적인 정부 협상 과정에 충분히 참여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교원·학부모·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대응 단체도 크게 늘었지만 정부와 충분한 숙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교육감협의회는 정부 발표 뒤 학령인구가 감소해도 교직원 인건비와 학교운영비, 시설 안전·관리비 등이 같은 비율로 줄지 않으며 AI·디지털교육, 맞춤형교육, 기초학력 등 새로운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교총·전교조·교사노조 등 성향이 다른 주요 교원단체들이 비슷한 우려를 제기한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가 아니다. 학교를 실제로 운영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걱정하는 것은 교육재정의 예측 가능성이 약해지는 일이다.
정부는 교부금 총액이 전년보다 감소하지 않도록 법적으로 보장하겠다고 한다. 필요한 안전장치다. 그러나 명목액을 동결하는 것과 교육재정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다르다. 물가와 인건비, 공공요금, 시설공사비가 오르는 상황에서 예산이 전년과 같다면 실질적으로는 삭감이 될 수 있다. 학생 수가 줄어 학생 1인당 교부금이 늘었다는 통계 역시 총액이 정체된 상황에서는 착시가 될 수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제도의 지속가능성이다. 내국세 20.79%라는 법정 연동장치가 존재할 때 교육재정은 매년 다른 국가사업과 처음부터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 연결고리가 끊기면 향후 어느 정부든 경제위기나 재정난을 이유로 산식을 다시 바꾸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다. 올해 당장 줄지 않는다는 약속보다 중요한 것은 10년 뒤에도 교육재정을 쉽게 줄일 수 없도록 만들어 놓는 제도다.
자녀의 책값은 마지막에 줄이는 것이었다
정부는 재정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국가재정에 성역이 있을 수도 없고 교육재정 역시 엄격한 평가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효율화와 총량 축소는 전혀 다른 문제다.
아이들이 줄어드는 지금이 오히려 한 아이에게 더 잘 투자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고,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을 더 촘촘하게 지원하고, 특수교육과 다문화교육을 강화하며, 노후화된 학교를 안전하게 바꾸고, 교사가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투자해야 한다.
과거에는 한 교실에 50~60명을 앉혀 놓고 가르쳤다. 학생이 줄었다고 다시 그 시절의 교육비 수준으로 돌아갈 이유는 없다.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의료와 복지, 안전의 질을 높이듯 교육의 질도 높아져야 한다.
우리 부모들은 가난했지만 교육만큼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당장의 형편보다 자식의 내일을 먼저 생각했다. 그것이 전쟁의 폐허 속 대한민국을 오늘의 나라로 만든 가장 강력한 자본 가운데 하나였다.
정부가 미래대응기금을 만들고 AI와 첨단산업, 청년과 국가 성장동력에 투자하겠다는 취지는 이해한다. 모두 필요하다. 그러나 그 모든 '미래'의 출발점은 오늘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다. 미래에 투자한다면서 미래세대의 가장 기본적인 교육재정부터 흔드는 모순을 범해서는 안 된다.
이재명 정부가 정말 미래를 말하고 싶다면 교육재정을 다른 정책의 재원으로 바라보기 전에 학교부터 찾아야 한다. 교사와 학생을 만나고 학부모의 이야기를 듣고 교육감들과 머리를 맞대야 한다. 교육에 불필요한 돈이 있다면 무엇이 불필요한지 하나하나 밝혀 고치면 된다.
그러나 교육의 곳간 자체를 허무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다. 경제가 어려워도 자녀의 책값만큼은 마지막까지 줄이지 않았던 부모의 마음. 대한민국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그 정도의 책임감이다.
교육은 남는 돈으로 하는 일이 아니다. 가장 먼저 떼어 놓아야 할 미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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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중심 교육을 고민하는 초등학교 교감이자 교육 칼럼니스트. 교육청 장학사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정책과 학교 현실의 간극을 분석하며, 다양성 교육·교육활동 보호·공교육 회복을 주제로 미래교육의 방향을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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