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듣기
  • 청년들이 만든 무료 도시락, 밥만 주는 게 아니었다

    [요즘 자원봉사] 밥을 사이에 두고 오가는 이야기 - 나란히미식봉사단

    등록 2026.08.27 17:49수정 2026.08.31 11:27
    1
    익숙한 이미지 너머, 지금의 자원봉사를 들여다보는 시리즈. 변화하는 사회 속 현장의 이야기와 기록을 통해 자원봉사의 새로운 모습과 이어지는 가치를 살펴본다.[기자말]
    나란히미식봉사단(아래 나란히)은 청년들이 직접 만든 음식을 가지고 어르신들의 집을 찾아가 대화를 나누는 봉사단이다. 식재료를 고르고 음식을 만든 뒤 도시락을 전달하지만, 활동은 현관 앞에서 끝나지 않는다. 마주 앉아 음식과 조리법을 설명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까지가 활동이다.

     준비한 음식을 도시락에 담는 나란히미식봉사단원들
    ▲ 준비한 음식을 도시락에 담는 나란히미식봉사단원들 나란히미식봉사단

    나란히는 2022년 활동을 시작했다. 경기도 광명시를 중심으로 청년 봉사자들이 모였고, 직접 기획한 메뉴와 도시락을 통해 정기적으로 어르신들을 만나왔다. 이들은 누구나 좋은 음식과 새로운 맛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이를 '미식보편화'라고 부르며 도시락을 단순한 제공물로 보지 않는다. "서로 마주 앉기 위한 연결 다리"라고 설명한다. "이건 그냥 버섯이 아니라 참송이예요." "전복 버터구이인데 다시마에 쪘어요." 낯선 재료와 조리법을 설명하다 보면 음식은 자연스럽게 이야깃거리가 된다. 무엇을 먹는지 묻고 답하는 사이, 한 끼는 대화를 시작하는 매개가 된다.

     도시락 메뉴와 구성을 직접 구상하는 나란히미식봉사단
    ▲ 도시락 메뉴와 구성을 직접 구상하는 나란히미식봉사단 나란히미식봉사단

    나란히의 활동은 음식을 '얼마나 많이 전달했는가'보다 '한 끼가 어떤 만남을 만들었는가'에 조금 더 가까이 있다. 그래서 나란히는 '정서지원'보다 '정서교류'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관계보다, 한 끼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경험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남이 반복되면서 관계의 흔적도 남았다. 어르신이 그린 제철 과일 그림은 카드 달력이 되었고, 어떤 어르신은 다음 활동 날짜를 자신의 달력에 적어두었다. 봉사자에게 직접 뜬 가방을 건넨 기록도 있다. 시간이 쌓이며 서로를 기다리는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란히미식봉사단에서 만든 도시락
    ▲ 나란히미식봉사단에서 만든 도시락 나란히미식봉사단

    음식을 매개로 맺어진 관계

    한 끼를 건네는 일은 오랫동안 누군가의 삶을 돌보는 방식이었다. 생존을 위한 구호에서 일상을 살피는 만남까지, 음식과 함께 자원봉사의 역할도 달라져왔다. 그 변화의 장면을 자원봉사 아카이브에 남아 있는 기록을 따라 살펴본다.


    조선시대에는 흉년에 진제장(賑濟場)을 열어 굶주린 사람에게 죽을 나눴고, 6·25전쟁 피난민이 몰린 부산에는 무료급식소가 설치됐다. 이때 음식은 생존을 위한 지원이었다. 이러한 나눔은 이후 자원봉사에서도 이어졌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도시락과 반찬을 건네고 안부를 묻는 과정에서, 음식은 생존을 위한 지원을 넘어 서로의 일상을 살피고 관계를 맺는 매개가 되기도 했다.

    자원봉사 아카이브에서 서울교구 봉공회 10년(1988)을 살펴보면, 음식을 매개로 맺어진 관계의 기록을 볼 수 있다. 1984년, 원불교 서울교구 봉공회는 한국보육원생을 위한 정기적인 봉사 활동을 기획하면서 도시락 반찬을 만들어 전했다. 그 얼마 뒤에는 세탁과 청소, 바느질, 김장처럼 원생들의 일상을 돌보는 활동도 더해졌다. 밥을 계기로 지속적인 만남이 이뤄지면서 정이 쌓였다.


    자원봉사자의 발길은 가정으로도 이어졌다. 1987년 한국노인복지회가 시행한 '가정봉사원제' 이야기다. 당시는 급격한 산업화와 핵가족화로 인한 '노인 소외'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되던 때였다. 한국노인복지회를 통해 모집된 가정봉사원들은 매주 결연한 노인의 집을 찾아 취사와 청소, 세탁 등 집안일을 도왔다.

    그러나 '유휴여성인력의 가정봉사원 활동방안에 관한 연구'(1994)에 따르면, 이들의 활동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가사노동이 아닌 '말벗' 활동이었다. "어려움을 겪는 할머니를 정기적으로 방문, 딸 역할을 대신해 드리는 동안 할머니의 고독감과 외로움이 크게 해소된 것 같다"라는 1989년 한 가정봉사원의 인터뷰 내용처럼, 식사 등 집안일을 돕는 생활 지원은 말벗과 정서적 지지로 확장되었다.

    서로의 안부를 살피는 마음

    2020년, 전례 없는 전염병은 사람들을 고립시켰다. '2020 코로나19 대응 자원봉사활동 리포트'(2020)는 이러한 상황에서 도시락을 만들어 나른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무료급식소가 문을 닫자, 자원봉사자들은 취약계층 어르신의 가정과 복지시설로 끼니를 전했다. 보건소와 선별진료소에서 현장을 지키는 의료진에게는 도시락과 응원 카드를 전달했다. 한 자리에 둘러앉을 수는 없었지만, 도시락에는 서로의 안부를 살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2025년 영남권 산불 임시대피소(의성체육관)에 설치된 현장 밥차 배식 매뉴판. 이재민 중 요양병원 어르신들을 위한 죽이 준비되어 있다.
    ▲ 2025년 영남권 산불 임시대피소(의성체육관)에 설치된 현장 밥차 배식 매뉴판. 이재민 중 요양병원 어르신들을 위한 죽이 준비되어 있다. 자원봉사 아카이브

    2025년 3월 영남권을 덮친 산불 현장에서도 자원봉사자들은 제때 밥을 먹기 어려운 사람들을 살폈다. 밤낮 없이 화마와 싸우던 진화대원들,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은 밥차에서 음식을 만들고 도시락을 포장해 진화 현장과 대피소로 날랐다. 누군가는 밥을 짓고, 누군가는 반찬을 담고, 누군가는 필요한 곳까지 음식을 옮겼다. 그렇게 마련된 도시락은 재난을 견디는 사람들에게 힘을 보탰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음식을 나누는 방식은 달라졌지만, 그 곁에는 늘 다른 사람의 끼니를 마음에 두고 밥을 짓는 사람들이 있었다. 밥을 해서 먹이는 일은 그렇게 오래전부터 상대의 안부와 일상을 살피는 가장 직접적인 돌봄의 실천으로 이어져 왔다.

     2025년 산불로 인한 청송 임시대피소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도시락을 만들고 있다.
    ▲ 2025년 산불로 인한 청송 임시대피소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도시락을 만들고 있다. 자원봉사 아카이브
    요즘 자원봉사, 더 알고 싶다면?
    <요즘, 자원봉사>에서 소개한 이야기는 'THE POSSIBLE WORLD : 행동하는 사람들의 작전 기록' 전시로 이어진다. 현장 기록과 체험형 콘텐츠를 통해 지금 자원봉사가 어디에서, 어떻게 세상을 바꾸고 있는지 직접 만나볼 수 있다.

    THE POSSIBLE WORLD : 행동하는 사람들의 작전 기록
    일시 : 2026. 9. 21.(월) 12:00–18:00 / 9. 22.(화) 9:00–18:00
    장소 : 코엑스 Hall A, 제3회 대한민국 사회적가치 페스타 내 사회 ZONE
    관람료 : 무료
    관람 신청 : '제3회 대한민국 사회적가치 페스타' 사전등록
    주최 : (재)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덧붙이는 글 - 글 박서정(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최원정('THE POSSIBLE WORLD : 행동하는 사람들의 작전 기록' 전시 기획자)
    - 이 기사는 자원봉사 아카이브에도 실립니다.

    <참고자료>
    원불교서울교구 봉공회, 『서울교구 봉공회 10년』, 1988.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2020 코로나19 대응 자원봉사활동 리포트』, 2020.
    「피난민구호에 만전」, 『동아일보』, 1951. 1. 13.
    지영선, 「외로운 노인 6명과 결연 딸노릇 가정봉사원활동 허명자씨」, 『동아일보』, 1987. 11. 89.
    염정섭, 「진제장 운영과 환자 분급」,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2026. 7. 31. 접속.
    「식량증산 – 시기별 정책과 특징」, 국가기록원, 2026. 8. 5. 접속.
    #자원봉사 #자원봉사자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자원봉사아카이브 #행동하는사람들의작전기록
    댓글1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는 자원봉사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시민의 참여와 지역사회의 변화를 연결하는 기관입니다. 전국 자원봉사센터와 함께 정책·연구, 재난 대응, 지역활력 증진과 자원봉사 문화 확산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신입 환경미화원 월급 580만 원...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면 신입 환경미화원 월급 580만 원...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면
    2. 2 '유해진 북한상'이 표현의 자유라면 1923년 '조센징상'은? '유해진 북한상'이 표현의 자유라면 1923년 '조센징상'은?
    3. 3 한국 아파트가 무너지기 쉬운 이유... 충격적인 국토부 문서 한국 아파트가 무너지기 쉬운 이유... 충격적인 국토부 문서
    4. 4 이 대통령님, '대국민 사기극'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대통령님, '대국민 사기극'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5. 5 금메달 들고 웃으며 "군대 안 간다"는 선수들 욕하기 전에 금메달 들고 웃으며 "군대 안 간다"는 선수들 욕하기 전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