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 활동가' 강제윤 시인이 37년만에 두 번째 시집 <바다도 숲의 안부를 궁금해하는데>(남해의봄날)를 펴냈다.
남해의봄날
이 시집을 관통하는 것은 '경계'에 대한 감각이다. 표제작부터 그렇다. 바다와 숲은 바람의 도움을 받아 하루에도 몇 번씩 서로의 안부를 묻고 또 묻는데, 정작 시인은 자문한다. 대체 나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이는 세상에 몇이나 될까. 안부를 주고받는 자연의 부지런함 앞에서 인간의 고립이 도드라진다.
<바다도 숲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데>
섬의 숲에서는 늘 파도 소리가 난다.
섬의 숲을 흔드는 바람에는 바다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바람은 숲의 전령이다.
바다와 숲은 바람의 도움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서로의 안부를 묻고 또 묻는다.
이 숲의 바람 소리를 들으며 문득 의문이 든다.
바다도 숲의 안부를 궁금해하는데
대체 나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이는 세상에 몇이나 될까.
<대문과 담장>은 더 명확하다. "섬에는 담장은 있어도 대문이 없다. / 담을 쌓고도 대문을 두지 않는 것은 / 경계를 나누되 경계 없이 살자는 공동체의 약속이다." 담장은 내 것과 네 것을 가르는 선이고, 대문은 그 경계선을 잠그는 장치다. 섬 사람들은 선을 긋되 잠그지는 않았다. 섬 사람들의 공동체에 관한 통찰이, 덜 것도 더할 것도 없이 세 줄의 문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땀 보듬고 가씨오>는 그 약속이 말로 튀어나온 장면이다. 마을 어르신 댁을 물었더니 "우리 집 땀 보듬고 가씨오"라는 답이 돌아왔다. '땀'은 담이다. 돌담을 돌아가라 하지 않고 보듬고 가라 한다. 그냥 돌아가면 정이 없을까 봐서다. 시인은 적는다. 보듬고 가는데 어찌 정이 들지 않겠느냐고. 처음 본 돌담에 정이 드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몇 걸음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왜 그토록 섬으로 갔을까. <속절없이 그리운 날에는 섬으로 갔다>가 답을 대신한다. "오갈 데 없는 날에도 섬으로 갔다. / 인생이 나를 저버린 날에도 섬으로 갔다. / 절망의 밑바닥에서 상현달처럼 다시 사랑이 차오르던 날에도 섬으로 갔다."
세 번 반복되는 '섬으로 갔다'가 각각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갈 곳이 없어서 간 섬, 버림받아서 간 섬, 그리고 다시 살아날 것 같아서 간 섬. 도피처와 요양처와 축제의 자리가 같은 곳이라는 뜻이다. 33일 단식과 20여 년의 유랑이 그 세 문장 안에 담겨 있다.
낭만만 있는 것도 아니다. <섬은 능구렁이 울면 비가 왔다>는 물놀이하는 사람들, 소나무 그늘에서 낮잠 자는 사람들, 조개 잡는 아이들을 차례로 세워놓고는 한 줄로 마무리한다. "찬 바람이 불고 다시 해변은 텅 비었다." 계절이 바뀌었다는 문장으로 읽히지만, 섬 인구가 어떻게 줄어왔는지를 아는 사람에게는 다르게 읽힌다. 소외된 섬 주민들의 기본권을 위해 30여 년을 싸워온 활동가가 굳이 '텅 빈 해변'에서 시를 멈춘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물론 섬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새벽 세시 고양이가 다리를 붙들고 늘어져 잠들지 못하는 노인의 이야기(<노인>), 우리는 모두 남의 목숨으로 연명하는 생의 도축자들이라는 서늘한 문장(<폭풍의 언덕>), 일산 호수와 낡은 자전거가 등장하는 도시의 연애(<일산 호수>, <자전거 도둑>)까지.
섬은 소재라기보다 그가 세상을 들여다보는 '렌즈'에 가깝다. 시집 곳곳에 시인이 직접 찍은 섬 사진이 함께 실려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가 어떤 풍경 앞에 오래 서 있었는지가 사진에 그대로 남아 있다. 강제윤에겐 글도 시고, 사진도 시다. 그가 가리키는 달을 보면 되지, 굳이 손가락을 쳐다보며 구분하고 경계를 그을 필요는 없다.
100개의 섬길, 그리고 다큐멘터리 <파시(波市)>

▲ 강제윤 시인은 최근 다큐 감독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은 사라진 바다 위의 생선 유랑시장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파시>(공동연출 강제윤·최현정)다. 1971년 흑산도 조기 파시 때는 3000여 척의 어선이 몰렸고, 술집이 200여 곳, '물새'라 불리던 작부가 60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 '황금시대'가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좇는 작업이다. 배우 류승룡이 무보수로 진행자 역할을 맡기로 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강제윤 페이스북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안다. 강제윤과 섬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그가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섬연구소는 2023년 전국에 흩어진 섬길 100개를 하나로 잇는 '백섬백길'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총길이 728.4km. 10년간 걷고 또 걸어 완성한 이 사업에 정부나 지자체 지원금은 한 푼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정부에서도 못한 일을 작은 민간연구소가 해낸" 것이다.
최근에는 다큐 감독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은 사라진 바다 위의 생선 유랑시장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파시>(공동연출 강제윤·최현정)다. 1971년 흑산도 조기 파시 때는 3000여 척의 어선이 몰렸고, 술집이 200여 곳, '물새'라 불리던 작부가 60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 '황금시대'가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좇는 작업이다. 배우 류승룡이 무보수로 진행자 역할을 맡기로 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류승룡은 이번 시집의 추천사도 썼다. "그는 길입니다. 홀로 외로운 섬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길입니다." 이주빈 시인의 추천사는 아프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민주주의에 영웅이 있으면 안 된다"는 말을 끌어와, 영웅이 있다는 건 누군가 대신 가혹한 희생을 치렀다는 뜻이라며 강제윤을 굳이 '따뜻한 영웅'이라고 불렀다. 영웅이라는 호칭이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를 함께 적었다.
물폭탄 맞은 <봄날의책방>, 그리고 8월 28일 동피랑 '북콘서트'

▲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안다. 강제윤과 섬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강제윤 페이스북
이 시집이 세상에 나온 사정도 예사롭지 않다. 강 시인의 시집을 펴낸 출판사 <남해의봄날>이 운영하는 <봄날의책방>은 지난 8월 15~17일 통영을 덮친 기록적 폭우로 큰 피해를 입었다. 사흘 동안 통영지역 누적 강수량은 778㎜, 1시간 최다 강수량은 97.4㎜를 기록했다. 기상청은 통영의 강수량을 "100년에 한 번 나타날 수준"이라고 했다.
강 시인은 신간 코너를 준비해야 할 시간에 물을 퍼내고 있던 <봄날의책방> 사람들을 위로하고, 수해 복구 기금 마련을 위한 '책꾸러미'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알렸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대표적인 사람이 그다. 다른 이의 시집은 출판사 사장처럼 홍보해주면서도 정작 본인이 펴낸 책은 가물에 콩나듯 소개한다. 그나마 페북에 "책방 재건을 돕기 위해서라도 시집을 많이 팔아줘야 할 텐데 재주가 없어서 걱정"이라고 적었다.
강제윤 시인의 시집 첫 북콘서트는 8월 28일 오후 7시, 통영 동피랑마을 '섬바다 음식학교'에서 열린다. 장소에도 사연이 있다. 철거 위기를 벽화로 넘긴 동피랑이 개발 압력에 다시 흔들리던 무렵, 그는 "쫓겨날 위기에 처하면 앞장서서 싸워달라"는 요청을 받고 '용병'으로 초청돼 그 마을에 정착했다. 그렇게 눌러앉은 세월이 통영에서 16년, 그 가운데 동피랑에서만 10년이다. 마을은 지금도 건재하다.
37년의 세월을 품고 있는 시집이다. 그런데도 '시인의 말'은 다섯 줄뿐이다. "시인은 시로 말한다"는 걸 그대로 보여준다.
"영원은 순간을 통해서만 그 실체를 드러낸다. / 순간을 살지만 순간이 아니다. / 영원을 사는 것이다. / 티끌 같은 시간, 티끌 같은 삶이 덧없으나 / 더없이 소중한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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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기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보다 더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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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만에 두 번째 시집' 강제윤 "진짜 시인은 섬 할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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