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에 맞서는 오디세우스처럼

[서평] <오디세이아>

등록 2026.08.27 14:32수정 2026.08.27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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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가 10년 동안 치렀던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10년에 걸친 모험의 서사를 담은 작품이다. 그러나 트로이 전쟁 이후 모험 서사가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잃은 오디세우스가 기억을 소환해 과거를 회상하며 역순차적으로 전개된다.

온갖 곡절 끝에 혼자 살아 남은 오디세우스는 한 섬에 표류한다. 이때 그에게 반한 요정 칼립소가 그의 기억을 지우고 7년간 섬에서 그를 데리고 산다. 그러나 신들이 사랑한 오디세우스를 독식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칼립소는 제우스의 명령으로 오디세우스의 기억을 되찾게 해주고 아내에게 돌려보낸다. 기원전 6세기경 쓰인 책임에도 작가 호메로스는 서술의 시간을 넘나드는 입체적 구성을 구축하는 획기적인 구상으로 책을 집필했다.


오디세우스의 시련

 책표지
책표지 아름다운 날

트로이 전쟁에 참전했던 오디세우스는 지략가로서 트로이 목마 작전을 펼치며 적의 심장부에 잠입해 공격한다. 그리고 이 전쟁을 종식 시킨다. 그럼에도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10년 동안 파란만장한 여정을 보내야 했다. 그건 포세이돈의 아들 폴리페모스가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먹고 죽이는 공포 속에서 자신들이 살기 위해 그의 눈을 멀게 했기 때문이다.

사실 오디세우스는 여러 섬을 모험 하며 부하들을 무사 귀환시키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신의 노여움을 사 실패한다. 부하들이 태양신 히페리온의 들소를 마구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어겨서는 안 될 금기가 어김없이 깨지고 이로 인해 재앙이 따르는 구조는 일종의 고전의 법칙이다. 당대 사회가 문학 작품을 통해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라'라는 교훈이 필요한 시대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고전의 주제는 그야말로 착한 사람 복 받고 악한 사람 벌받는 권선징악. 현대문학의 서사는 이런 것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진짜 인간 세상 그대로를 반영하고 있으니 고전은 너무 뻔하고 전형적이라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을 지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성숙하지 못한 사회에서는 이것을 기대하기가 힘들다.

오디세이아에서 찾은 실존적 철학


오디세우스가 20년간 집을 비우고 있는 동안 이타카 성안에는 청혼자들로 넘쳐났다. 이 당시 신의 법도이자 고대 그리스 사회의 가치가 손님 환대(크세니아, Xenia)에 예를 다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성안에 머무는 청혼자들을 대접하느라 재산이 축 나도 이들을 내쫓을 수 없었다. 이들의 구혼은 순수하게 페넬로페의 아름다움에 반해서였을 수도 있겠지만, 이타카의 통치권을 얻기 위한 야욕으로 보는 것이 좀 더 타당한 듯싶다. 페넬로페와의 결혼은 곧 왕국의 재산, 노예, 권력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님들은 왕국의 모든 것을 마구 소비하는 것도 모자라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까지 죽이려고 한다.


페넬로페가 구혼자들의 청혼을 받지 않은 것은 오디세우스에 대한 일편단심의 충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구혼자와 결혼하면 왕위가 그에게 넘어간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텔레마코스 또한 왕위를 물려받지 못하게 되니 시아버지 수의를 짠다는 핑계로 낮에는 수의를 짜고 밤에는 푸는 방식으로 시간을 벌었던 것이다.

진상 손님들 때문에 고통받았던 것은 텔레마코스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작품 전반에 걸쳐 텔레마코스가 자신의 재산을 탕진하는 손님들에 대한 불평불만이 넘쳐난다. 손님들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원치도 않은 그리고 꽤 부당한 것이지만 어쩔 수 없이 짊어지고 가는 '부조리'를 상징한다. 심지어 오디세우스는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선정했는데, 그를 상기하는 자가 아무도 남지 않았다. 덕망 있고 총명한 오디세우스조차 인생의 부조리를 피할 수 없었다.

세상이 부조리한 것에는 이유가 없다. 세상은 원래가 그런 것이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프랑스의 실존주의 소설가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부조리 극복 방법으로 '반항'을 제시한다. 산 정상으로 바위를 올려야 하는 시지프가 부조리한 형벌에 맞서 바위를 떠밀며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사는 모습에서 진정한 반항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알베르 카뮈는 '부조리와 행복은 같은 땅이 낳은 두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부조리 속에 있는 인간이 행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부조리에 반항하는 것에서부터 삶의 의미를 찾고 인간은 그렇게 행복에 닿게 될 수 있다.

부조리에 반항하는 오디세우스

고대 그리스에서 주인은 손님 환대 규율을 지켜야 하지만, 손님 역시 주인의 재산과 가정을 존중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구혼자들은 이를 어기고 오디세우스의 성을 침범하고 약탈했다. 오디세우스는 손님이라는 지위를 악용, 가족과 재산에 손해를 입힌 구혼자들을 응징한다. 이는 크세니아를 파괴 시킨 것이 아니라 그 기틀을 바로잡은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오디세우스는 이타카의 질서를 회복하는 방식으로 부조리에 반항했고 부조리를 극복했다.

오늘도 우리는 수많은 부조리와 함께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부조리에 반항하는 치열한 태도로 최선을 다해 현재를 살아낼 수도 있고, 부조리에 매몰되어 지옥 같은 현실을 살아갈 수도 있다. 이 작품은 어쩌면 오디세우스에게 닥친 숱한 고난과 위기를 보여주며 우리에게 명석한 의지를 통한 반항으로 부조리를 극복하라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전으로부터 어떤 의미와 해석을 갖다 붙인다 해도 현대는 과거로부터 너무 많이 멀어졌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오디세이아>의 교훈을 살려내 보자면, 현실의 부조리를 각성했다면 오디세우스처럼 반항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를 반항의 주체로서 행복에 이르게 해주리라는 것까지도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블로그, 조선에듀에도 실립니다.
#오디세이아 #오디세우스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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