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6.08.28 10:00수정 2026.08.2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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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이 옅게 낀 하늘 아래 고즈넉하게 서 있는 서산 해미읍성 진남문
김지영
지난 27일, 낮의 무더위가 뿜어져 나오기 전 충남 서산시 해미읍성 진남문을 찾았다. 몇 날 며칠 흐리던 하늘이 드문드문 파란 빛을 내보이며 옅은 구름을 드리우고 있었다. 오전의 해미읍성은 조용하고 정갈했다. 넓게 펼쳐진 잔디밭 위로 바람이 부드럽게 지나갔고, 평평하게 잘 정돈된 흙길을 걸어 들어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 정갈하게 단장된 해미읍성 내부의 넓은 잔디밭과 산책로
김지영
동헌으로 향하는 길목 오른쪽에는 조선 시대 관아가 자리하고, 왼쪽으로는 옛 무기들이 호젓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600년 세월 동안 군사적 요충지이자 충청도 육군의 중심이었던 이곳은, 지금은 아이들이 달려 놀아도 좋을 만큼 평화로운 공원으로 남아 있다.

▲ 옛 관아로 향하는 길목에 전시된 공성 무기와 우거진 고목들
김지영
하지만 이 정적 속에는 차마 다 말로 옮기지 못할 수많은 사람의 숨소리와 통곡이 켜켜이 쌓여있다. 그 까닭을 찾아 성안 한가운데 굳건히 서 있는 고목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옥사 맞은편에서 수백 년의 세월과 아픈 역사를 증언하고 있는 해미읍성 회화나무
김지영
성안 한가운데 도달하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충청남도 지정기념물인 해미읍성 회화나무다. 족히 300년이 넘는 세월을 버텨온 이 고목은 옥사 바로 맞은편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줄기 곳곳에 세월의 상처가 아물어 붙은 흔적이 또렷했다. 조선 후기 병인박해 시절, 수많은 천주교 신자가 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고초를 겪었다.

▲ 회화나무 뒤편에 복원된 옛 옥사 모습. 천주교 신자들이 갇혀 고초를 겪었던 곳이다
김지영
회화나무 바로 뒤편에 재현된 옛 옥사 마당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곤장을 치던 틀과 엎드린 인형의 모습 뒤로, 쇠창살이 굳게 닫힌 옥사가 보인다. 나무는 수백 년 동안 이 자리에서 수많은 이들이 끌려오고 나가며 지지르는 비명과 기도를 묵묵히 들었을 것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아침 바람이 마치 그날의 숨소리를 나지막이 전하는 듯했다.
성벽을 넘어, 서문 밖 '순교 자리개 돌'을 향해

▲ 담쟁이덩굴이 성벽을 푸르게 덮고 있는 해미읍성 서문 밖 외곽 산책로
김지영
회화나무에 새겨진 아픈 기억을 뒤로하고 성벽을 따라 서문 밖으로 나섰다. 담쟁이덩굴이 빽빽하게 성벽을 덮어버린 외곽 길은 차분하고 푸르렀다. 성문 밖 길가에는 한적한 도로를 따라 차들이 지나다니고 있었지만, 그 길가 한편 잔디밭에는 시간을 멈춘 듯한 돌 하나가 놓여있었다.

▲ 해미읍성 서문 밖 수구위에 놓여있던 사행 도구, '순교 자리개 돌' 안내판과 옛 기록화
김지영
'서문 밖 순교지'이자 병인박해 당시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했던 '순교 자리개 돌'이 있던 자리였다. 안내판에는 짚을 묶어 곡식을 털듯, 신자들을 들어서 돌 위에 내리쳐 숨지게 했던 비극적인 사형 도구로서의 자리개 돌이 설명되어 있었다. 도로 개설로 인해 원본 돌은 생매장 순교성지(여숫골)로 옮겨졌지만, 이곳에는 여전히 그날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한 모조품과 순교현양비가 단정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병인박해 당시 신자들을 내리쳐 처형했던 장소에 조성된 순교 자리개 돌(모조품)
김지영
가까이 다가가 본 자리개 돌은 그저 널찍하고 납작한 평범한 돌판처럼 보였다. 만약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면, 그저 잠시 쉬어가라고 놓아둔 벤치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돌 위에서 수많은 이름 없는 민초들이 자신의 믿음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스러져갔다. 그들은 누군가의 아비였고, 누군가의 자식이자 이웃이었다.
우리는 흔히 견고하게 잘 쌓인 성벽이나 위엄 있는 문루를 보며 역사의 웅장함을 논한다. 하지만 진정한 역사의 무게는 성벽 그 자체보다, 그 성벽 그늘 아래서 삶을 딛고 서 있던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권력과 시대의 폭력 앞에 힘없이 스러져갔지만, 끝내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던 민초들의 삶. 그들이 흘린 피와 눈물이 있었기에 600년 성벽은 비로소 유물이 아닌 깊은 울림을 갖게 되는 것이다.
다시 아침의 길로 나서며
순교 현양비 옆 십자가 탑 위로 8월의 아침 햇살이 비쳐 들었다. 참혹했던 과거의 현장은 이제 푸른 잔디와 나무들이 우거진 안식의 공간으로 변해있었다.
우리가 오늘날 평화롭게 거니는 이 길은, 수많은 이들이 견뎌낸 고통과 희생 위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내 삶의 크고 작은 시련들이 이 묵직한 돌 앞에서 한없이 아득하고 소박해지는 순간이었다.
돌 위에 떨어진 나뭇잎 하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성벽을 따라 길을 걸었다. 어둠을 견뎌낸 나무와 돌이 그러했듯,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저마다의 시련을 견디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음 화에서는 해미읍성을 거닐며 바라본 아늑한 풍경과 그 길 위에서 만난 또 다른 이야기들을 담아내고자 한다.

▲ 서문 밖 성벽 아래 단정하게 서 있는 순교현양비와 자리개 돌 전경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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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만난 역사와 자연,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을 담백하게 기록합니다. 현장에서 발로 뛰며 느낀 생생한 시선과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누구나 편하게 공감하고 나눌 수 있는 솔직한 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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