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사 김정희 선생 증 초의선사 서간첩, 秋史金正喜先生贈草衣禪師書簡帖, 나가묵연, 那迦墨緣 김정희(金正喜, 1786-1856)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노시은 촬영
전시된 편지첩 <나가묵연>(那伽墨緣)의 안내문을 읽다 무릎을 탁 쳤습니다. 두 사람이 1786년생 동갑내기 절친이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거든요.
편지 속 추사는 제주도의 지독한 풍토병과 눅눅한 습기에 시달리며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바다 너머의 백파 스님과 서신으로 치열한 논쟁을 벌이면서도, 정작 속을 터놓고 진리를 논할 유일한 지음(知音)인 초의가 곁에 없어 못내 아쉬워 하는 절절한 고독이 배어 있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레 다인(茶人)들 사이에서 유명한 추사의 또 다른 편지, 일명 '걸명(乞茗·차를 구걸함)' 편지의 기억이 겹쳐졌습니다. "편지만 있고 차는 없구려. 나는 스님도, 편지도 보고 싶지 않소. 다만 두 해 동안 쌓인 차 빚을 몽땅 보내시오!"라며 빚쟁이처럼 다그치던 앙탈 말입니다.
온몸이 아프고 말이 통하는 이 하나 없는 끔찍한 유배지. 그 척박함 속에서 꼿꼿한 노학자가 유일하게 체면을 내려놓고 응석을 부릴 수 있었던 존재가 바로 동갑내기 벗 초의였고, 그가 보내주는 차(茶)는 단순한 기호품을 넘어 버티고 살아남기 위한 구원이었을 것입니다.
서화실을 찬찬히 둘러보면, 그가 결코 제주도에 갇힌 외롭고 불쌍한 유배객으로만 머물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추사는 조선을 넘어 19세기 동아시아의 지적 유행을 선도하던 트렌드 세터이자 거대한 뿌리였습니다.
특히 옛 비석과 청동기에 새겨진 글자를 연구하는 금석학(金石學)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젊은 시절 연행(燕行) 길에서 만난 옹방강(翁方綱)·완원(阮元) 같은 청나라 최고급 문인들과 오랫동안 편지를 나누며 최신 학문과 예술의 흐름을 주도했습니다. 편지를 주고받을 때도 그저 글씨만 덜렁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용에 걸맞은 근사한 그림을 동봉하여 마음을 전할 줄 아는 고도의 안목과 멋을 지닌 인물이었죠.
전시장에 걸린 수많은 작품들이 이를 증명합니다. 추사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제자들과 19세기 문인들의 서화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미학이 당시 지식인 사회에 얼마나 깊고 넓게 뿌리내리고 있었는지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벼루 열 개를 밑창 내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는 그의 치열함은 고립 속에서도 조선 예술계의 지형도를 바꾸고 있었습니다.
내 마음에 오래 눌러앉은 난초

▲ 김정희金正喜(1786-1856)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노시은 촬영
이번 전시 관람의 절정이자 제가 박물관으로 달려간 진짜 이유인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앞에 섰습니다.
대략 8년 전쯤이었을까요. 이 그림을 처음 마주하고 그 압도적인 기운에 완전히 반해버렸습니다. 그 시절, 전시 기간 내내 홀린 듯 몇 번이나 발걸음을 하여 그림 앞을 서성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토록 애정하던 작품을 오랜만에 다시 마주하니, 발끝부터 찌르르 전율이 올라왔습니다. 살아오며 크고 작은 난 그림을 숱하게 보아왔지만, 제 마음에 이렇게 오래 눌러앉은 난초는 이 한 점뿐이거든요.
'불이선란도'는 우리가 흔히 아는, 잎선이 유려하고 예쁘장한 난초 그림이 아닙니다. 물기 없는 마른 붓(갈필)으로 툭툭 거칠게 그어 내린 잎사귀는 마치 글씨를 쓰는 듯한 파격 그 자체입니다. 기존에 난초를 치는 모든 법도와 기교를 가차 없이 깨부수고, 오직 자신만의 꼿꼿하고 절대적인 경지(不二, 둘이 아닌 유일무이함)에 도달한 오묘함이 화폭을 뚫고 나옵니다.
여백을 빼곡하게 채운 글씨와 벼루 밑바닥까지 긁어모은 듯한 짙고 거친 먹선. 그 속에는 유배지의 지독한 고통, 벗을 향한 사무친 그리움, 그리고 그 모든 세속의 번뇌를 예술로 완벽하게 승화시킨 노학자의 서늘한 기백이 담겨 있습니다. 그 앞에 선 채, 다시 오래도록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 흑차 전용 자사호, 자스민육보차 5g, 좋아하는 스누피 머그, 호주에서 온 버터 쿠키 사이로 샌드된 부드러운 크림이 인상적인 비스킷, 찻자리를 함께해줄 차총쌍사자희주(???珠).
노시은

▲ 자스민 향을 세 번이나 입힌 육보차에서는 육보차 특유의 쿰쿰하고 쎄한 맛마저 부드럽게 녹아들어 자칫 너무 가벼울 수 있는 자스민향을 묵직하게 즐길 수 있도록 서로를 보완하는 맛이 났다. 가운데 보이는 미황색의 자스민 꽃잎이 보인다.
노시은
자스민 향을 세 번이나 입힌 육보차
벅찬 감동을 안고 박물관 밖의 일상으로 돌아와, 서둘러 찻자리를 세팅합니다. 오늘의 차는 '불이선란도'의 오묘함을 빼닮은 '자스민 육보차'입니다. 흑차의 일종인 묵직한 육보차에 맑은 자스민 꽃향기를 무려 세 번이나 입혀낸, 깊이와 화사함이 기막히게 공존하는 차죠.
자사호(차를 우리는 주전자의 일종)에 찻잎을 넣고 끓는 물을 붓습니다. 이내 벼루에 짙게 갈아낸 먹물처럼 검붉고 무거운 탕색이 우러납니다. 오랜 세월을 묵혀야만 비로소 깊은 단맛과 진향(陳香)을 내는 육보차. 이 거칠고 어두운 찻물은 척박한 유배지에서 추사가 홀로 삭여내야 했던 눅눅한 시간과 '불이선란도'의 짙은 먹선을 고스란히 닮아 있습니다.

▲ 커피 아니고 육보차.
노시은

▲ 진한 육보차에 크림이 가운데 발라진 버터 풍미 가득한 비스킷을 한 입 같이 먹으니 행복이 스르르 녹아들었다.
노시은
그런데 찻잔을 들어 올리는 순간, 그 묵직하고 검은 찻물 위로 은은하고 맑은 자스민 향이 훅 끼쳐 올라옵니다. 찻잎에 세 번이나 향을 입히는 수고로움 끝에 탄생한 이 향기는, 메마른 붓으로 투박하게 그어 내린 먹선 속에서도 결코 감출 수 없었던 고결한 난초의 향기처럼 공간을 채웁니다.
육체적 고통과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도, 동갑내기 벗이 잊지 않고 보내준 찻잎으로 마른 마음을 달래며 끝내 세속을 초월한 예술을 피워낸 추사 김정희. 저의 찻잔 속에서 200년 전 그가 그려낸 유일무이한 난초가 향기롭게 피어납니다.
'불이선란도'는 9월 13일까지만 볼 수 있다 하니 직접 눈으로 보고 감동을 느끼실 분들은 꼭 참고하셔서 다녀오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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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배낭 속의 영국 남자』, 『언제라도 티타임』, 『화요일의 티타임』의 저자. 세상 구경하고 차 마시며 글, 사진, 영상, 그림으로 삶을 기록합니다. 아직은 벌이가 시원찮은 유튜버지만 콘텐츠를 만드는 일에는 진심입니다. 좋은 기획과 재미있는 작업 제안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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