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에 쪽빛 스카프 펄럭, 직접 만들어봤습니다

"촌음을 아끼지 말고 사세요"... 그 말을 따라 나선 길

등록 2026.08.28 09:18수정 2026.08.2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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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음을 아끼지 말고 사세요."

지난 7월, 김영춘 시인님의 강의를 듣고 몇몇 사람들과 점심을 함께했다. 점심 후 바로 위층 카페로 올라가 차 한잔을 할 때, 공교롭게도 나는 시인님 곁에 앉게 되었고,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내 나이를 말씀드렸다. 나이가 훈장도 아닐진대 나는 가끔 내 나이를 공개하는 일이 있어 때론 민망하다. 그때 시인님께서 조용히 건네신 한마디였다.


그날 이후 그 말은 내 마음속에 오래 머물렀다. 어느새 내 안에 저장되어 삶의 작은 지침이 되어 주었다. 어떤 날은 잠시 게으름을 피우며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있을 때면, 그 말이 불현듯 뇌리를 스치며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엊그제 몇몇 지인과 식사를 함께했다. 그중 한 분이 어느 단체의 회원이셨는데 , 다음 날 완주의 '대승 한지 마을' 체험을 간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함께 식사하던 다섯 분이 하나둘 신청하겠다고 했다. 순간 내 머릿속에는 시인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혼자서는 망설여지는 일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라면 즐거움이 된다. 그렇게 나도 기꺼이 한지 체험에 합류했다. 날씨는 여전히 더웠다. 하지만 잠시 쉬는 시간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싶은 마음에 녹차와 작은 차 도구를 가방에 챙겼다. 이 더운 날 굳이 차를 마셔야 하나 싶다가도, 자연 속에 마시는 차 한잔, 입안에 머무는 은은한 차향은 마음을 쉬게 하며 나만의 고요를 즐길 수 있게 해준다. 비록 짧은 순간이지만 그 향기는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는다. 차맛을 즐기는 나만의 취항일 것이다. 나는 그런 순간이 참 좋다.

버스를 타고 완주로 향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떠나는 길이라 그런지 차창 밖 풍경마저 정겹다. 8월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 들녘과 나무들을 숨을 죽인 듯 축 늘어져 있었지만, 우리들의 웃음소리는 버스 안을 가득 채웠다. '대승 한지 마을'에 도착하니 산골 속 기와집들이 정갈하게 모여 있었다.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가장 먼저 천연 쪽 염색 체험을 시작했다. 한지 재료가 일부 들어간 하얀 실크 스카프 한 장씩 받아 들고, 저마다 취향대로 천을 접고 구기며 무늬를 만들었다. 연한 하늘빛, 짙은 쪽빛, 그리고 자연스러운 얼룩무늬까지.

쪽 염색한 스카프 염색한 스카프를 빨랫줄에 널어놓은 풍경
▲쪽 염색한 스카프 염색한 스카프를 빨랫줄에 널어놓은 풍경 이숙자

연한 쪽 염색 연한 색으로 염색한 하늘빛 쪽 염색
▲연한 쪽 염색 연한 색으로 염색한 하늘빛 쪽 염색 이숙자

같은 흰 천이었지만 사람마다 전혀 다른 작품으로 태어났다. 염색한 스카프를 맑은 물에 헹구어 빨랫줄에 널자 파란 하늘 아래쪽 빛 스카프들이 바람에 펄럭였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모두 사진을 찍으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세상에 하나뿐인 자기 작품을 바라보는 얼굴마다 환한 웃음꽃이 피어났다. 점심은 체험장 가까이에 있는 화심순두부에서 먹었다. 넓은 식당은 손님들로 가득했지만, 예전 젊은 시절 가끔 찾던 맛집의 정겨운 맛은 그대로였다. 부드러운 순두부와 노릇한 빈대떡까지 흡족한 점심이었다.

식사를 마친 뒤 다시 체험장으로 돌아와 염색한 스카프를 식초 물에 담갔다. 색이 오래 남도록 하는 마지막 과정이었다. 다시 맑은 물에 헹구어 빨랫줄에 널어놓으니, 바람결에 나부끼는 스카프가 더욱 곱게 보였다. 무엇보다 내가 직접 염색한 작품이라 더욱 애정이 갔다.


 색종이를 붙여 만든 소원 등
▲ 색종이를 붙여 만든 소원 등 이숙자

이어서 한지 소원등 만들기 체험이 시작되었다. 모형 등에 알록달록한 한지를 정성껏 붙이고 마지막으로 소원을 적어 달았다. 나는 분홍빛 소원 등을 만들었다. 완성하고 나니 참 예뻤다. 내 옆자리 지인 선생님께 조심스레 선물로 드렸다. 마지막으로 녹차를 우려 곁에 계시는 선생님들께 차 한 잔을 드리니 너무 좋아하셨다. 차향이 입안에 머물고 있다는 말까지. 무겁게 차와 차 도구를 챙겨 온 보람이 있다.

한지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하루, 새로운 것을 배우며 웃었던 시간, 그리고 누군가에게 작은 선물을 건넬 수 있었던 마음까지.


"촌음을 아끼지 말고 사세요."

시인님의 그 한마디가 다시 가슴에 머문다. 남은 삶의 시간도 조급하지 않게, 사람들과 차 한잔 여유를 나누며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60대 이상 시민기자들의 사는이야기
#한지 #체험 #쪽 #염색 #스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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