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6.08.28 10:32수정 2026.08.28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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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골짜기의 삶도 바쁘게 돌아간다. 엊그제가 5일장인가 했는데, 오늘이 또 장이 서는 날이다. 장이라고 해야 시끌벅적한 것은 아니지만 있을 것은 다 있는 5일장이다. 새벽부터 오늘이 장날인지 알 수 있는 것은 곳곳에 포장을 치는 상인들의 모습이다. 어김없이 도장을 파는 아저씨, 아직도 도장이 필요한 모양이다. 양말을 파는 아저씨, 예쁜 꽃을 아내와 함께 파는 아저씨도 여전하다. 가을빛이 역력한 자그마한 골짜기의 모습은 바쁘게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시골이라 해서 다를 바가 없이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이다.
자연이 풍기는 가을의 맛은 뚜렷하다. 서늘함과 함께 거칠게 울어대던 매미 소리가 잦아들었고, 멀리서 들려오는 애잔한 소리만 남았다. 긴 세월을 버틴 삶이 서러운 듯 오늘도 길게 울어준다. 우선은 푸릇한 길가를 풍성하게 장식하던 강아지풀이 고개를 숙였다. 긴 여름을 이겨내고 가을을 알아챈 듯 씨가 영글어 고개를 숙인 것이다. 어떻게 오는 가을을 알았는지 들판에도 가을빛이 역력하다. 우선은 밭곡식들이 완연히 달라졌다.
자투리땅을 이용해 심은 수수의 모습, 길게 목을 늘여 푸릇하던 수수가 거무스름하게 익어간다. 고개를 축 늘어트린 모습은 익어가는 가을을 알려주고 있다. 널따란 들판을 차지하고 있는 벼의 모습도 이삭이 고개를 숙였고, 멀리 달려오는 바람에 몸을 흔들고 있다. 깨끗하게 풀을 깎아 놓은 논둑, 오래전에 두렁 콩을 심어 가을을 기다리곤 했다. 사람의 삶도 계절 따라 변해감은 길가에서도 만날 수 있다.

▲가을빛이 든 강아지 풀 골짜기에도 가을이 오고 있다. 고추가 익고, 수수가 익어가며 참깨를 터는 모습이 정겨운 골짜기다. 아침, 저녁으로 서늘함이 찾아온 골짜기, 여름내 초록으로 빛나던 강아지풀에도 가을이 내려오고 있다. 곡식이 익어가는 계절에 순순히 적응해 가는 사람돌도 서서히 가을을 준비하고 있다.
박희종
가을을 맞이하는 골짜기
길가 노점상엔 푸릇한 포도 상자가 등장했다. 여름내 옥수수를 쌓아놓고 팔던 노점상에 싱그러운 포도가 진열된 것이다. 여름 햇살을 먹고 자란 먹음직스러운 포도가 싱그럽다. 누런 호박도 빼놓을 수 없는데, 엊그제까지도 푸른 호박을 대신한 늙은 호박이다. 똬리 모양의 예쁘게 늙은 호박이 줄을 지어 손님을 기다린다. 시골 어르신들이 농산물을 길손들과 직거래하는 풍경이다.
번듯한 상점도 아니고, 시골스러운 포장 속에 진열되어 있는 농산물은 특별히 상점 주인도 없다. 가끔 주인이 돌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무인상점으로 꾸려나간다. 누가 특별히 훔쳐 갈 사람도 없고, 비싼 물건도 아니니 서로 믿고 사는 편안한 길가 상점이다.
여름이 지나고 찬바람이 찾아오면 시골은 시끄러워진다. 여름내 수북하게 자란 풀 깎는 소리다. 새벽부터 울려대는 예초기 소리는 끊임이 없는데, 추석 무렵 벌초가 끝나기까지 이어진다. 오래전에 낫으로 깎던 풀을 예초기가 대신한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오순도순 풀을 깎았지만, 이젠 전문가들이 예초기를 메고 풀을 깎는 시골 풍경은 노인들만 살아가는 시골의 서글픈 모습이기도 하다.
가을을 빛내주는 골짜기 풍경들
여름을 이겨낸 비탈밭엔 붉은 고추가 가득이다. 어떻게 저리도 많이 달리게 했을까? 포기마다 가지가 늘어지도록 달린 붉은 고추, 농부의 뛰어난 기술은 올해도 풍년을 기약한다. 모종을 심고 물을 주며, 열심히 일구어낸 가을날의 선물이다. 붉은 고추를 멍석에 말리고, 초가지붕 위에도 말리던 시절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고추를 따서 깨끗이 씻고, 건조하는 것까지 기계를 이용하는 편리한 세월이다. 고추를 따서 햇볕에 말리는 일은 가을 내내 이어지던 가을 풍경이었다. 비탈밭에는 고추 외에 고소함도 있다.

▲가을을 알려주는 수수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골짜기에 가을이 찾아왔다. 고추가 붉게 익고, 벼가 고개를 숙였으며 곳곳에서 참깨를 터는 풍경이 한가롭다. 서서히 가을이 오면서 여름내 몸집을 불린 수수가 고개를 숙인 모습이 아름답다.
박희종
여름내 익은 참깨를 터는 모습이다. 누가 저렇게 작은 깨를 알아냈고 재배할 줄 알아냈을까? 비탈밭에 포장을 깔고 참깨를 터는 모습이 정답다. 도리깨질하고, 멍석에 말려 기름을 짜던 시절이 있었다. 아직도 고소함은 포기할 수 없으니 어머님이 떠오르는 모습은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거대한 기계가 아닌 손으로 깨를 털고, 키질을 하는 산비탈 모습이 정겨운 시골이다. 서서히 산에도 오는 가을을 준비하고 있다.
진한 녹색이었던 산의 모습, 어느새 누렇게 변해가는 숲이 가을이다. 새벽이슬을 듬뿍 맞고 고개 숙인 강아지풀, 어느새 씨가 영글고 가을옷으로 갈아입었다. 가을이면 골짜기의 풍경을 예술품으로 만드는 이슬의 작품은 올해도 대단하다. 밤사이 이슬이 내렸고, 거미는 밤새 할 일을 했다.
가을이 익어가는 아침, 맑은 이슬이 거미줄에 내렸고 산을 넘은 햇살이 이슬에 떨어졌다. 순식간에 튀어 오른 햇살은 눈을 둘 곳이 없다.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은 가을 초입 골짜기에서나 만날 수 있다.
인간은 인간대로 가을을 준비하고, 자연은 자연대로 삶을 영글게 하는 골짜기 풍경이다. 가을이 더 깊어지면, 들판은 황금빛으로 물들며 오는 겨울을 준비할 것이다. 인간도 자연 속에서 가을을 준비하는 골짜기는 평온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언제나 봄일 줄 알았던 세월은 흐르고 흘러 여지없는 가을이 왔다. 나의 가을은 올 줄 몰랐던 삶, 이젠 몇 번의 가을을 맞이할 수 있을까? 가을이 물들어가는 골짜기엔 분주하게 계절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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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무렵의 늙어가는 청춘, 준비없는 은퇴 후에 전원에서 취미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가끔 색소폰연주와 수채화를 그리며 다양한 운동으로 몸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세월따라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이고 싶어 '늙어가는 청춘'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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