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1913년 태어난 작가. 부조리의 철학자이기도 하다. 1942년에 《이방인》을 썼고 1957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60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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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산문집을 통해서였다. <결혼> <여름> <안과 겉>. 사막 같았던 40대를 지나갈 무렵이었던 것 같다. '고립', '권태', '본원적인 행복', '냉철한 검박함' '온갖 해풍을 맞받아 내며 굳건히 서 있는 아몬드나무의 순백'. 다른 곳에서는 상투적으로 느껴질 단어들이 그의 산문집 안에서는 황홀하게 빛났다. 그 빛남은 어쩌면, 알제리라는 먼 나라, 우리와는 전혀 다른 기후와 풍토를 가진 해안가의 뜨거운 햇빛에서 온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다시 펼쳐 든 <안과 겉>의 서문에서 나는 이런 문장을 발견한다.
"예술가는 그처럼 저마다 마음속 깊이, 일생 동안 그의 됨됨이와 그가 말하는 것에 자양을 공급해 주는 유일한 원천을 갖고 있는 것이다......<중략>......나의 원천이 <안과 겉> 속에, 내가 오랫동안 몸담아 살아온 그 가난과 빛의 세계 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가난과 빛의 세계. 그래, 이것이었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누구나 자기 삶의 원천을 갖고 있다. 그것은 각자 다를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가문이, 어떤 이에게는 정신적 풍요가, 또 어떤 이에게는 사랑이.
문득 내가 자란 산동네가 떠올랐다.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남산이 지척으로 보이던 곳. 가난하지만 의연했던 가족들. 날품팔이, 바보, 무당, 지게꾼처럼 세상의 낮은 곳을 일찌감치 느끼게 해주었던 이웃들. 그곳에서의 유년 시절은 부러울 게 없었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아무런 장애도 없이 내게로 곧장 달려들었으니까.
죄 없는 아랍인을 쏘아죽인 룸펜 프랑스인. <이방인>에 대한 이런 정치적인 해석에 오랫동안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 해석에만 가둬두고 다시 읽지 않았던 것은, 나의 게으름 탓이다. 다시 펼쳐 든 <이방인>에서 어린 나를 본다. 과거의 미숙했던 나를, 너그러워진 현재의 내가 다시 만난다.
우리 안의 이방인을 바라볼 차례
바다(Mer)와 태양(Soleil)의 합성어 뫼르소(Mersault). 그는 바다와 태양의 아들이었다. 자연이 그렇듯이, 자신이 실제로 느낀 것만을 말하는 인간. 그는 정말로 어머니의 슬픔을 모르는 냉혈한이었을까?
늙고 가난한 이웃집 노인 살라마노가 평소에는 구박만 하던 피부병 난 개가 실종되고 난 뒤 우는 소리가 벽을 타고 들려올 때, 거기에 귀 기울이는 뫼르소에게 인간에 대한 연민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관습적인 감정의 표현과는 거리가 멀 뿐. 남들처럼 똑같이 느끼고 행동하라는 사회의 강요는 그에게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뫼르소처럼 출세도, 결혼도,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무관심한 젊은이는 이제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다.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라기보다는 환경과 삶의 조건에 의해서 그렇게 된 젊은이들. 이들은 기성세대가 중요시했던 삶의 지표들에 무관심하다. 이들이 잘못된 걸까?
카뮈는 <작가수첩>(제1권, 1937년 8월)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치적인 연설을 듣거나 우리 지도자들의 글을 읽을 때마다, 여러 해 전부터 인간적인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라곤 전혀 없다는 데 놀란다. 항상 똑같은 말로 항상 똑같은 거짓을 말하는 것이다."
뫼르소가 재판을 받는 사법 체계, 법의 세계 또한 그보다 나을 게 없었다. 뫼르소가 재판을 받는 과정은 엄정한 심판의 과정이 아니었다. 판사, 검사, 변호사, 그리고 이를 취재하는 기자와 회개를 강요하는 성직자까지 한편이 되어 한 사람의 불운한 사람을 완벽한 죄인으로 낙인찍는 과정이었다.
이방인이 된다는 것. 그것은 한 사회에서 배제된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이방인에게 세상은 자신의 치부를 활짝 열어 보인다. 프랑스인이지만, 알제리의 가난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알제리의 햇빛 속에서 자란 작가 카뮈. 그의 시선에 비친, 코미디에 가까운 프랑스인들의 재판정 모습처럼 말이다.
이제 우리 안의 이방인을 바라볼 차례다. 공사장, 건설 현장, 이삿짐센터, 음식점이나 카페에서 일하는 한국어가 서툴거나 눈 주위가 까만 이방인들, 그리고 명동, 광화문, 동대문, 강남 등에서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일자리를 찾아 거리를 헤매는 이방인들. 그들의 눈에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이 사회의 어떤 위선이 그들 눈에 보일까?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영화 <이방인> 루키노 비스콘티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3대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영화감독 중 영화 영상 예술과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펼치는 데에 최고에 달한 이들을 부르는 명칭인 이른바 시네아스트로 분류되는 감독. 1967년에 제작했다.
아트시네마
1967년 작,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이방인>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봤다. 선풍기나 에어컨 시설이 없는 재판정에서 사람들이 양복을 입고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흘리는 장면은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 제복의 윤리에 갇힌 인간들에 대한 희화화라고나 할까? <이방인>을 소재로 한 영화는 두 편 더 있다. 튀르키예 감독이 튀르키예를 배경으로 2001년에 만든 <운명>과 2025년 프랑스의 프랑수아 오종 감독이 만든 <이방인>. 두 영화를 비교하면서 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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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창작집 3권, 엔솔로지 2권을 냈다. 여성주의 논문을 썼다. 중학교에서 국어를, 대학에서 소설 창작을 가르쳤다. 지금은 전업 작가. 내가 생각하는 문학과 예술은? 아름다움, 새로움, 그리고 성찰. 궁극적으로는 보다 많은 이들이 향유하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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