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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수 막으려다...'성형미인' 돼 버린 한강

    [서울의 기억을 찾아서] 한강 변화의 방아쇠가 된 한 제방도로의 역사

    등록 2026.08.30 10:22수정 2026.08.30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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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을 펴고 땅을 다지며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 서울. 그 이면에 쌓인 시간과 욕망의 변주곡을 따라 잊힌 '서울의 기억'을 되짚어보고자 한다.[기자말]
    자연이 보낸 경고는 분명 실마리였다. 그 실마리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건 아닌지, 또한 그토록 빠르고 무지막지하게 전쟁 치르듯 막고 가두어 해치워야만 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1965년 7월 15일과 16일은 을축년(1925) 대홍수 이래 최대의 폭우였다. 시간당 112mm로, 제방도 변변치 못한 한강과 서울 시내 곳곳이 넘쳐 났다. 수십 명의 사망자와 실종자, 부상자는 물론 당시 4.4억 원의 재산 피해와 8.5만 명에 가까운 이재민이 발생했다. 침수 가옥만 1.1만여 동이다.


    이듬해 또 재발하였다. 장마와 폭우가 겹친다. 7월 15~26일까지 물 폭탄이 번갈아 쏟아진다. 서울시 교통이 두절되고 한강 본류와 지류, 청계천이 연달아 범람한다. 수십 명의 사망자와 실종자, 막대한 재산 피해가 발생한다. 9.4만여 이재민과 2.3만여 동의 가옥이 침수된다. 한강과 청계천 주변의, 제방이 없거나 있어도 홍수위가 낮은 곳은 피해가 막심했다.

    수해 현장(1966년 서부이촌동) 제방이 없던 서부이촌동의 1966년 모습. 홍수에 가옥들이 침수된 모습이 애처롭다.
    ▲수해 현장(1966년 서부이촌동) 제방이 없던 서부이촌동의 1966년 모습. 홍수에 가옥들이 침수된 모습이 애처롭다. 서울역사박물관

    1966년 기준 한강 제방은 무척 열악했다. 남안(南岸)은 노량진~영등포 구간에만 제방이 있었다. 북안(北岸)은 을축년 홍수로 용산역~왕십리에 제방이 쌓였고, 뚝섬에 허술한 제방이 있었다. 북안은 경원선이, 남안은 경부선이 제방 역할을 겸했다. 일종의 '제방철도'였다고 해야 하나?

    2개년 물난리로, 한강 제방이 화두였다. 물 관리를 위해 그때 이미 한강 상류에 댐을 공사 중이거나 착공이 임박해 있었다. 1962년 3월 착공한 의암댐이 완공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1966년 6월 착공한 팔당댐과 1967년 4월 착공 예정인 소양강 댐으로 홍수가 닥쳐도 한강 수위 조절은 무난하리라 여기고 있었다.

    더 높게, 더 빨리

    연이은 홍수로 혼쭐이 난 서울시가 제방 정비에 나선다. 1967년 2월 시장이 '한강을 따라 제1한강교~여의도 비행장 입구까지 스카이웨이를 개설하겠다. (중략) 이 제방도로는 김포가도와 경부선 국도에 각각 연결된다'라는 구상을 밝힌다. 왜 이곳이 먼저였을까?


    홍수 피해는 도시가 훨씬 심각하다. 남안에서 도시화한 곳은 노량진~영등포 사이뿐이다. 그러니 시급히 제방을 높여야 했다. 직전 두 번의 홍수 때, 선로가 낮은 노량진역~대방역 사이가 위태했다. 제방을 더 높게, 빨리 쌓아야 했다.

    강변 1로(1969) 활주로가 남아 있는 여의도 아래로 샛강이 보인다. 그 아래 강변1로(한강대교~서울교)와 경부선 철도가 나란하다. 강변 1로와 경부선 사이의 기다란 '유휴부지'를 확인할 수 있다.
    ▲강변 1로(1969) 활주로가 남아 있는 여의도 아래로 샛강이 보인다. 그 아래 강변1로(한강대교~서울교)와 경부선 철도가 나란하다. 강변 1로와 경부선 사이의 기다란 '유휴부지'를 확인할 수 있다. 국토정보플랫폼

    서울시가 바빠진다. 미국 유학파인 차일석 부시장이 아이디어를 낸다. 제방과 도로를 겸한 '제방도로'다. 그러나 뜻밖의 결과가, 의도치 않았던 도시 개발의 핵심 도구로 작동하였다. 결과적으로 이 제방도로의 우연이, 한강의 모습을 송두리째 뒤바꾼 기폭제였다. 이런 현상을 '경로 의존성'이라 하던가.


    서울교 부근(2026) 강변 1로(현 노들로) 서울교 부근. 서울교 밑으로 노들로가 이어져, 안양천의 양화교에서 공항대로와 연계한다. 오른쪽의 올림픽대로에 포함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서울교 부근(2026) 강변 1로(현 노들로) 서울교 부근. 서울교 밑으로 노들로가 이어져, 안양천의 양화교에서 공항대로와 연계한다. 오른쪽의 올림픽대로에 포함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이영천

    서울교 부근(2020) 강변 1로의 당시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이미지. 당시 유휴의 도시용지가, 도로와 경부선 사이에서 도시화한 모습을 여실히 볼 수 있다.
    ▲서울교 부근(2020) 강변 1로의 당시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이미지. 당시 유휴의 도시용지가, 도로와 경부선 사이에서 도시화한 모습을 여실히 볼 수 있다.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1967년 3월 13일 착공한다. 한강대교~서울교까지 3.72km의 스카이웨이가, 착공 189일 만인 그해 9월 23일 준공된다. 지금의 노들로다. 공사 과정에서 뜻밖의 현상이 드러난다. 강바닥이 드러낸 '유휴부지'다. 이로써 공사 중에 전혀 다른 계획이 입안된다.

    준공 하루 전인 9월 22일에 '한강개발3개년계획'이 발표된다. 총사업비 462.64억 원으로 폭 20m, 길이 74.35km의 강변도로와 인구 30만의 여의도 신도시, 제4 한강교(마포대교)를 건설하겠다는 내용이다. 계획의 고갱이는 여의도다. 이는 뜻밖에 생겨난 도시 용지라는, 스카이웨이가 부린 요술이었다.

    한강대교 부근(2024) 한강대교 남단 노량진 쪽의 모습. 교통체증을 완화할 목적으로 입체화한 노들로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강대교 부근(2024) 한강대교 남단 노량진 쪽의 모습. 교통체증을 완화할 목적으로 입체화한 노들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영천

    한강철교 부근(2020) 오른쪽 올림픽대로, 그 옆이 노들로, 왼쪽이 경부선이다. 아직 철거되지 않은 옛 수산시장과 새로 지은 현 수산시장이 같이 보인다. 이곳이 모두 강변 1로가 만들어 내 '유휴부지'다.
    ▲한강철교 부근(2020) 오른쪽 올림픽대로, 그 옆이 노들로, 왼쪽이 경부선이다. 아직 철거되지 않은 옛 수산시장과 새로 지은 현 수산시장이 같이 보인다. 이곳이 모두 강변 1로가 만들어 내 '유휴부지'다.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스카이웨이가 '강변1로'로 이름을 바꾼다. 74.35km는 강변1로~9로까지다. 현재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의 모체다. 강변도로는 이 계획에 딸려온 꾸러미에 불과했을까?

    우연과 필연

    곧고 높은 제방 위, 검은 아스콘 포장에 선명한 차선이 인상적이다. 폭 20m, 4차선에 가드레일까지 갖춘 멋쟁이 도로다. 강을 끼고 산뜻하게 이어진 15m 높이의 제방은, 한강 홍수위보다 2m가 높다.

    강변 1로 준공 직후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준공 당시는 유료도로였다. 4차선 양쪽으로 가드레일이 보인다. 배경의 한강철교로 보아 한강대교 부근이다.
    ▲강변 1로 준공 직후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준공 당시는 유료도로였다. 4차선 양쪽으로 가드레일이 보인다. 배경의 한강철교로 보아 한강대교 부근이다. 서울역사박물관

    유료도로로 준공했으나 1974년 폐지한다. 서울시 등록 차량이 2만 대인 시절의 유료도로다. 과감하다. 준공되자 언론은 칭찬 일색이다. 선진국 수준의 유료도로를 갖게 되어 '조국 근대화'가 당장 이뤄질 듯 찬미한다.

    강변1로가 새로운 땅 72만 700제곱미터(2.2만 평)를 만들어 냈다. 강바닥이 드러낸 유휴부지에 당시엔 관심이 낮았다. 그러나 서울시장은 달랐다. 이 땅을 보고 전혀 다른 생각을 한다. 이때부터 새로운 시각으로 한강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경부선에서 40∼230m를 여의도 쪽으로 내어 쌓은 결과다. 땅은 곧 돈이다. 이로써 '한강개발3개년계획'을 입안했다고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 핵심인 여의도 개발이 성공하자, 눈을 강변도로로 돌린다.

    결과론이나, '한강개발3개년계획'의 시의성을 논박할 근거는 여럿이다. 3개년 안에 달성해낸 건 여의도 제방(1968)과 마포대교(1970), 재정이 투입된 연장 21km의 강변1로~4로에 불과하다. 강변2로와 3로가 1968년, 4로가 1970년에 개통된다. 여의도 매립은 1973년까지 진행된다.

    한강건설사업계획도(1968) 1967년의 '한강개발3개년계획"의 확장(안)으로, 1968년 수립된 계획의 도면이다. 이 계획으로 1970년대 한강개발을 주도한다. 사진 속 목표에 '한강을 최대한 이용하고 지배한다' 라는 문구가 당시 상황을 총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강건설사업계획도(1968) 1967년의 '한강개발3개년계획"의 확장(안)으로, 1968년 수립된 계획의 도면이다. 이 계획으로 1970년대 한강개발을 주도한다. 사진 속 목표에 '한강을 최대한 이용하고 지배한다' 라는 문구가 당시 상황을 총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1967년 계획이 '한강건설사업계획(1968)'으로 확장된다. 핵심이 '강변도로(5로∼7로)' 건설이다. 재원 부족으로 민간의 공유수면매립에 의존한다. 영동지구와 반포, 압구정, 잠실, 구의지구 등이다. 대체로 1970년대 후반에 강변7로까지 개설이 이뤄진다.

    강변1로라는 우연이 당긴 방아쇠가, 여의도와 강변도로와 공유수면매립을 거쳐 1981년 강변8로에서 매듭된다. 강변9로는 1986년 올림픽대로에 포함되어 건설된다. 이 모든 게 1967년 계획만으로 가능했을까?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지는 자전거였다.

    그때도 지금도, 이게 발전인지 아닌지 결론짓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질적인 결과임에는 분명하다. 한적하던 한강이 풍경은 물론 형상까지 송두리째 뒤바뀐 상전벽해를, 나중 순리처럼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규격화된 한강

    강변도로가 틀을 잡자, 한강이 규격화한다. 강폭이 일정해질수록 백사장이 사라진다. 강이 매립된 곳곳에서 아파트가 솟아났다. 강변도로가 빨라질수록, 한강은 타자화한다. 1967년의 계획이 이때도 교과서였을까?

    1980년대 권력은 한강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봤다. 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세운다. 1970년대 관성을 이어받아 '한강종합개발사업'이라 했다. 최고 권력자의 비자금 등 각종 구설에 오른다.

    한강종합개발사업(1982) 1970년대 관성을 이어받아 한강을 개발하겠다는 1980년대 계획이다. 저수로(물길), 둔치, 올림픽대로, 수중보(잠실, 신곡), 하수처리장 건설 등이 주 내용이다. 올림픽대로 계획 노선이 안양천에서 끊겨 있다.
    ▲한강종합개발사업(1982) 1970년대 관성을 이어받아 한강을 개발하겠다는 1980년대 계획이다. 저수로(물길), 둔치, 올림픽대로, 수중보(잠실, 신곡), 하수처리장 건설 등이 주 내용이다. 올림픽대로 계획 노선이 안양천에서 끊겨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저수로 정비와 둔치의 공원화, 올림픽대로와 하수처리장, 잠실과 신곡수중보 건설로 요약된다. 한강 모래를 팔아먹었다는 의혹이 난무한다. 사업비의 20%를 모래 판매로 충당했기 때문이다. 1986년에 강변북로가 도시고속도로로 지정된다.

    이로써 한강이 인공의 성형미인으로 재탄생한다. 도시고속도로 속력만큼 강은 멀어져 가고, 둔치는 황막 해졌다. 보에 막힌 강물이 호수처럼 느려졌다. 대신, 홍수 때마다 위협적이던 강물이 한층 관리가 수월한 물로 누그러졌다.

    한강(1969) 노란색으로 표현된 백사장이 뚜렷하다. 한강의 물길도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
    ▲한강(1969) 노란색으로 표현된 백사장이 뚜렷하다. 한강의 물길도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 서울역사박물관

    한강(2024) 강폭이 일정해진 게 여실하다. 공유수면매립지가 노란색으로 표현되어, 1969년 모습과 대조된다.
    ▲한강(2024) 강폭이 일정해진 게 여실하다. 공유수면매립지가 노란색으로 표현되어, 1969년 모습과 대조된다. 서울역사박물관

    강변1로의 우연은 나비효과였다. 독재 권력이 밟은 가속 페달이자 수십 년 변화의 추동력이었다. 그 힘에 서울의 에너지와 비전이 몽땅 빨려 들어갔다. 그때는 예상치 못했던 도시 공간 구조마저 뒤틀렸다.

    그 관성이 1970년대를 지나 요란한 1980년대에서야 매듭지어졌다. 다행이라 해야 하나? 노들로는 올림픽대로에 편입되지 않고, 공항대로에 이어져 스카이웨이 구상의 절반은 완결(?)지었으니 말이다.

    회한이 남는다. 한강의 옛 너비를 따라 제방을 쌓았다면? 도로 없는 제방뿐이었다면? 너른 백사장을 그냥 뒀더라면? 천만이 사는 도시 한가운데로 흐르는 강을, 우린 너무 대상화한 건 아닌지. 보에 막히고 도로에 갇힌 한강을 생각한다. 강변1로가 뿌린 씨앗의 현재다.

    모래톱이 되살아나고 있다. 강의 복원력이다. 문제는 우리 시각이다. 그간의 태도로는 어림없다. 보부터 헐어 강답게 흐르게 하는 일, 이제 공론의 장에서 논의할 때다. 그 첫 단추가 무엇이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놔야 한다. 그다음은 한강에게 맡겨야 한다.
    덧붙이는 글 주요 참고 문헌 : <한강개발사> 이덕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강변1로 #한강개발3개년계획 #한강종합개발사업 #강변도로 #한강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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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삼스레 타인과 소통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소통하는 그런 일들을 찾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보다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서로 교감하면서,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풍성해지는 삶을 같이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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