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 미사 연령회의 장례 미사 모습. 돌아가신 뒤 셋째 날 이뤄지는 것으로 장례식장이나 성당에서 할 수 있다.
AI 변환 이미지
처음 연도를 접한 건 7년 전이었다. 빈소 한쪽에서 염불 같기도, 타령 같기도 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성당 자매들의 기도였다. 그 구성진 가락(
연도소리 들어보기)은, 서양에서 온 가톨릭 기도가 19세기 박해시대에 전통 민요와 만나 상엿소리처럼 메기고 받는 형식을 갖춘 것이었다. 죽은 이를 위한 기도는 어느 나라 교회에나 있지만, 전통 가락에 얹어, 산 사람들이 함께 메기고 받는 기도는 우리나라에만 있다.
구역 반장으로 다녀본 빈소는 어디나 비슷하다. 고인은 대개 모르는 분이라 1층 안내 전광판에서 처음 뵙는다. 빈소와 접객실은 벽으로 나뉘어 있어, 기도하는 동안 바깥 풍경은 보이지 않는다. 열 명 남짓한 구역 식구들이 바닥에 앉아 연도 예식서인 '상장예식'을 편다. 영정을 중심으로 오른쪽이 메기고 왼쪽이 받으며 연도가 시작된다. 한 시간 가까이 맨바닥에 앉아 바치는 기도라, 다리에 쥐가 나지 않도록 연신 자세를 고쳐야 한다.
처서가 지나도 폭염의 기세가 꺾일 줄 모르는 8월의 끝자락, 성당 부고 문자가 도착했다. 57세 형제의 부고를 알렸다. 이름과 세례명만 봐서는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분이었다. 그날 밤 구역 식구들과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그 형제는 자녀가 없었다. 남동생 한 분이 신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연도하는 이도, 조문객도 많지 않았다. 우리의 연도 소리가 빈소와 접객실에 쓸쓸히 울렸다. 적막한 빈소에 앉아 있으니 올해 초 만났던 장례식장이 생각났다.
한가로운 저녁, 한 형제님의 부고를 알리는 성당 문자가 도착했다. 아내인 자매님은 20년 넘게 성당에서 교리 교육을 비롯한 여러 봉사를 해 온, 교우들에게 잘 알려진 분이었다. 고인 또한 건설·설비업에 종사하며 저소득층 가정의 낡은 부엌을 고쳐주는 봉사를 해왔다. 그런 남편분이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이튿날 저녁,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1층 로비에 들어선 순간, 평소와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보통 연도는 구역장과 반장 등 봉사자들의 몫이다. 그런데 1층 로비에는 봉사자들뿐 아니라 일반 신자들, 특히 평소 연도 자리에서 보기 힘들었던 남성 신자들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구역 연도 시간인 오후 9시가 되어 3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복도 양옆으로 빽빽이 늘어선 근조화환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빈소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은 빈소와 접객실 사이의 문을 활짝 열어 두 공간이 하나로 이어진 대형 빈소였다.
성당 자매들은 아내분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위로하고 있었다. 영정 앞에는 연도하는 이들을 위해 의자가 놓여 있었고 의자 뒤에는 근조 꽃바구니가 빼곡해 빈소는 온통 꽃밭이었다.
나는 접객실과 빈소 경계에 앉게 되었다. 기도하러 온 교우들은 끊임없이 밀려들었다. 순식간에 빈소가 가득 차 신발장 턱까지 신자들이 들어앉자 고인의 가족들이 계속 의자를 날랐다. 여느 때 열 명 남짓이 바치던 연도가 그날은 수십 명이 함께 했다. 게다가 남성 신자들의 묵직한 저음이 더해져, 연도 가락은 풍성하고 깊어졌다.

▲화장연도 화장장에서 연도를 바치는 연령회 회원들
AI 변환이미지
연도를 바치는 중에도 조문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고인의 벗들과 친척들은 물론, 장성한 두 아들의 지인들까지 쉴 새 없이 빈소로 들어섰다. 고인과 유가족에게 예를 마친 이들이 접객실로 건너가 술잔을 기울이고 안부를 나누자, 그곳은 금세 잔칫집처럼 들썩였다.
두 공간의 경계에 앉아 고인이 참 복이 많은 분이라고 생각했다. 기도하러 온 신자들이 빈소를 가득 메웠고, 그가 일군 삶 속에서 맺어온 인연들이 접객실을 채웠다. 앞에서 울리는 구슬픈 연도 소리와 등 뒤에서 들려오는 생생한 삶의 소리. 처음 겪어보는 낯선 공존이었지만, 그 자리가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문득 나의 마지막을 그려보았다. 교우들의 구성진 연도 소리와 나를 기억하는 이들의 왁자한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잔칫집 같은 빈소. 내 마지막도 그랬으면 싶었다. 그 풍경 속에서라면 가벼이 이생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훗날 딸아이에게 유언으로 빈소에 의자를 넉넉히 두라고 말할 것이다. 나를 위해 연도하는 이들의 다리가 저려서는 안 되니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